0교시 달동네 밥상머리
동관 4층에 있는 ‘오모가리’ 김치찌개 전문점으로 갔습니다. 김치전골, 오징어 볶음, 삼치구이를 주문하였습니다. 식당에 있는 에어컨 한 대로는 테이블마다 나오는 찌개의 열기를 감당하지 못하네요. 땀을 뻘뻘 흘리며 먹는 찌개 맛, 한국 사람만 아는 맛이겠지요?
푸짐한 점심을 이종열 선생님께서 사주셨는데요,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알래스카 여행을 다녀오셔서, 어제, 오늘의 더위가 더 힘드실 듯 합니다.
야외 어린이용 수영장을 개장한 덕에 식당가는 피서 나온 가족들로 북적입니다.
다음 주 월요일 낮 12시 30분까지 문화센터 앞으로 오세요~♥
1교시: 제3강 시베리아 바이칼 역사와 문화, 제4강 한국인이 본 시베리아 바이칼
* 시베리아 횡단 철도
총 9,289 km. 1891-1892년 여러 곳에서 착공하여 1916년 전구간 개통한 무지무지 긴 철도 노선입니다. 전 여정은 7일 정도 걸립니다. 베이징에서 출발할 수도 있지만, 오늘 수업중 여행은 모스크바 야로슬라블 역에서 출발합니다. 출발하기 전 신의 선물이라는 차가버섯 차 한 잔 꼭 드시구요.
페름, 예카테린부르크, 옴스크, 노보시비리스크, 크라스노야르스크 도시를 지나 우스티쿠트에서 바이칼-아무르 지선을 갈아탑니다. 바이칼 호수를 보러 온 것이이니 이르쿠츠크에서 꼭 내려야 합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깊고, 맑은 바이칼 호수를 눈으로 확인하시며 심호흡해봅니다. 조선 공산당의 발생지역이기도 했던 이르쿠츠크에서 브리야트 공화국의 수도 울란우데로 향합니다. 치타, 아무르, 하바롭스크를 지나 종점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의선이 복원되어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연결되는 날이 올까요?
미래에 철도를 이용하여 중국, 러시아, 유럽 대륙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될지도 모르니 다음의 사항을 알아두면 좋겠습니다.
① 페름에는 《의사 지바고》 영감이 된 그리부슌 부호가 산 저택이 있다.
② 예카테린부르크에는 니콜라이 2세 일가를 유폐, 사살한 귀족의 집이 있었다.
③ 치타는 이광수가 머물며 독립 운동과 관련 맺었던 곳이다.
④ 서정적인 곡으로 <아무르 강의 잔물결>을 들어 보세요. 교수님이 사랑하는 노래!
⑤ 《데르수 우잘라》, 《시베리아의 이발사》 영화를 보며 시베리아 예술을 느껴보세요.
⑥ 푸시킨의 장편소설 《대위의 딸》을 읽으면 러시아 농민 반란 중 가장 큰 반란인 ‘푸가초프의 난(1773~1775)’을 이해하기 좋다.
⑦ 스텐카 라진의 난(1670년 ~ 1671년)
러시아 정부는 남쪽과 남동쪽 변경지대에 기마술에 능란한 전사들을 배치하여 국경을 방비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투르크계 유목민이 주를 이루었으나 뒤에는 러시아인이 많이 배치된다. 이들이 초기의 카자흐로, 투르크어로 '방랑자' '모험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15세기 중엽부터 농노제가 강화되면서 많은 농민들이 자유를 찾아 카자흐의 세계에 들어왔다. 그리하여 16세기가 되면, 전에 유목민들이 지배하던 드네프르 강과 돈 강의 하류, 볼가 강의 중 · 하류 등지에 막강한 카자흐 집단이 형성된다.
카자흐 집단에는 도망 농민 외에도 도망 노예, 범법자, 비러시아계 유목민들이 다양하게 섞여 있었다. 독립정신이 왕성한 카자흐들은 무엇보다도 자유를 중시했다. 카자흐가 모두 모이는 집회(크루크)에서 선거로 자신들의 수령(아타만)을 뽑았고, 자유를 찾아 도망 온 사람들을 관대히 받아들였으며, 교회 분열 후에는 분리파 정교를 승인했다.
이들은 처음에는 농사를 짓지 않고 수렵 · 어로 · 양봉 그리고 약탈행위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이들의 약탈행위는 유명하여, 강과 강에 가까운 평야지대는 물론 저 멀리 흑해와 카스피 해 건너편까지도 거친 카자흐들의 활동무대였다.
카자흐는 중앙정부에게는 골칫거리였다. 정부는 이들에게 자치를 허용하고 물자를 제공하는 등, 여러 가지 특권을 부여하는 대신으로 전투와 국가방위에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은 때때로 중앙정부에 반기를 들고 온 나라를 소용돌이에 빠뜨리곤 한다.
러시아 역사에서 카자흐는 중요한 몫을 담당했다. 시베리아 개척의 선두에 선 것도, 동란시대에 볼로트니코프 반란군의 주력부대가 된 것도, 우크라이나 독립전쟁의 주역도 모두 이들 카자흐였다. 그 뒤를 이어 카자흐 역사의 최대 영웅이 등장하니, 이가 곧 스테판 라진이다.
'스텐카'라는 애칭으로 우리 귀에 익숙한 스테판 라진은 돈 카자흐의 비교적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하층 카자흐나 가난한 농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이 겪는 고난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그가 반역을 결심한 것은 카자흐의 아타만이었던 형이 모스크바의 군사령관에게 처형당했을 때였다고 한다.
당시의 러시아는 농노제의 강화와 더불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빈곤과 물가고, 가혹한 세금징수가 반란과 폭동을 부채질했다. 1650년에는 프스코프와 노브고로트에서 커다란 폭동이 일어났다. 프스코프에서는 한때 민중들이 권력을 장악하기까지 했다. 1655년에는 전국에 페스트가 창궐하면서 각지에서 폭력이 난무했다.
1662년에는 은전 대신 동전을 주조하면서 고위층이 축재를 했다는 의혹이 일면서 모스크바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수도가 폭도들의 손에 떨어지고 차르가 목숨을 잃을 뻔했다. 폭동으로 7,000명이 처형당하고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각종 형벌에 처해졌다. 농민들의 대규모 탈주는 계속됐다. 이들은 줄기차게 변경으로 빠져나와 카자흐에 가담했다.
스텐카 라진의 반란은 농노, 하층 도시민, 가난한 카자흐, 억압당하던 소수민족들에게는 하나의 복음이었다. 민요와 서사시에 그 행적이 생생하게 기록되고, 때로는 과장되어 초자연적인 영웅으로까지 승화된 것은 이런 상황에서 연유한다.
라진은 1667년 봄에서 1669년 말까지 도망 농민들인 하층 카자흐를 이끌고 카스피 해로 대규모 원정을 다녔다. 이 원정은 카스피 해 연안의 부유한 페르시아인 정착지 약탈에서 절정을 이룬다.
막대한 전리품을 싣고 돌아오던 라진은 길을 막는 차르의 관리와 군대들을 내쳐버린다. 그는 순식간에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며 돈과 볼가 지방의 카자흐 지도자로 떠오른다. 그의 주위에 카자흐와 농민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이제 그의 생각은 페르시아의 부귀영화로부터 러시아인의 형제애로 바뀌었다. 평범한 카자흐의 모험이 카자흐와 농노를 억압하는 자들에 대한 투쟁으로 변한 것이다.
1670년 라진은 2만의 군대를 이끌고 모스크바로 향했다. 그가 행동을 개시하자 농민과 하층 도시민이 그에게 모여들었고 수비대 병사들도 그의 편이 됐다. 라진은 돈 강을 거슬러 올라가 차리친(볼고그라드)을 손에 넣은 뒤 그것에 본영을 설치했다.
스텐카 라진은 사람들에게 "귀족들에게 살해당한 알렉세이 왕자가 실은 죽지 않고 우리 곁에 있다. 모두 일어나서 그 귀족 배반자들과 지방관리들을 쓸어버리자"고 호소했다. 그와 더불어, 전 러시아에 '카자흐의 자유'를 실현하겠다고 선언했다. 라진의 밀사가 그에 앞서 전국을 누비면서 그의 뜻을 전파했다. 전국이 술렁거렸다.
볼가 하구의 아스트라한은 그가 도착하기도 전에 그의 것이 돼 있었다. 이어 사라토프와 사마라가 이 카자흐 영웅에게 성문을 열어주었다. 러시아의 지배자들에게 자기네 땅을 빼앗긴 바슈키르, 추바슈, 마리, 모르드바 등의 소수민족들도 그에 호응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러시아 중앙부터 오카 강 유역에서도 학살과 약탈이 광범하게 행해졌다. 저 멀리 백해 연안의 솔로베츠키 수도원도 호응했다. 차르가 통치하는 전 지역에 반란의 불길이 타오른 것이다.
라진은 볼가 중류의 심비르스크(울리야노프)를 포위했다. 그의 부대들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모스크바를 향해 진격해 들어갔다.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 그들의 앞길을 예비했다. 그러나 당시 20만에 이른 반란군은 돈 카자흐 부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오합지졸이었다. 그에 반해 정부군은 좋은 무기와 잘 훈련된 부대들을 갖고 있었다. 정부군의 반격이 시작됐다. 니주니 노브고로트가 반란군에서 정부군으로 넘어왔다. 정부군은 카잔을 거쳐 심비르스크로 공격해왔다. 라진의 군대는 참패를 당하고 차리친의 본영으로 철수했다. 이윽고 상층 카자흐의 배신으로 1671년 4월 그는 체포당했다.
라진은 그의 아우 프롤과 함께 모스크바로 압송돼 붉은 광장에 던져졌다. 그는 뼈를 하나하나 부러뜨리는 가혹한 고문을 당당하게 견뎌냈다. 끔찍한 고문이 진행되는 동안 그는 신음소리 한 번 내지 않았고 끝까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마침내 사지를 찢기고 죽었다.
스텐카 라진은 죽은 후에 더 위대한 영웅이 됐다. 그를 소재로 한 민요가 만들어져 러시아 전역에서 애송되고,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그는 전설 속의 인물로 추켜올려져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영웅으로 윤색됐다. 러시아 민중들은 그가 살아 돌아와 자기들을 구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라진은 반란의 지도자였을 뿐 혁명가는 되지 못했다. 그에게는 지배자에 대한 강한 분노와 사람들을 떨쳐 일어나게 하는 호소력은 있었으나, 미래에 대한 청사진도, 자신이 직접 통치자가 되겠다는 야심도 없었다. 결국 러시아의 차르를 타도하기 위해서는 미래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들의 출현을 기다려야 했다.
-러시아역사 다이제스트 100-
* 을사늑약 반대를 하며 자결한 민영환의 <<해천추범>>을 꼭 읽어보고, 수필의 소재로 써보세요. ‘해천추범’은 민영환 일행(윤치호, 김득련, 김도일, 러시아공사관 서기관 스테인과 함께)이 러시아 제국의 황제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참석하고 돌아온 과정을 기술한 책이다. 특사일행은, 1896년 4월1일 제물포에서 러시아군함(크레마지 호)으로 출발하여 상하이~나가사키~요코하마~밴쿠버~뉴욕~런던~베를린~바르샤바 등을 거쳐 모스크바에 도착한 뒤 짜르를 알현한다. 이르쿠츠크~바이칼호~블라디보스토크~부산~인천을 거쳐 그해 10월21일 서울로 돌아왔다. 여행기간은 6개월20일, 거쳐간 나라만 11개국에 달했다.
*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지은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은 필독서다.
1894년 63세 때 조선에 도착, 4년 동안 4차례나 중국과 조선을 오가며 고종 황제와 민비를 알현하고 동학농민전쟁과 청일전쟁을 겪기도 했다. 남장을 하고 다니며 조선의 모든 것을 관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쓴 ‘조선과 이웃 나라들’이라는 책은 한국인의 어떤 기록보다 섬세하고 치밀하다. 따라서 수필을 쓰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 봐야 한다.
* 이광수의 시베리아 여행부터 다음 주에 수업합니다.
2교시 수필반
*조수근 님의 <달빛에 마르는 빨래>, <눈물>
?*양경자 님의 <다섯 살 아이의 눈>
?*김형도 님의 <움직이는 서재에서> 네 편의 글을 합평하였습니다.
-주제의식을 갖고 쓰세요. 경험이나 정황을 서술하고 끝나면 안됩니다. 작가가 의도한 내용이나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가 살아있는 글을 쓰세요.
-우리가 써서 내는 수필은 작품입니다. 단순 기록하는 메모가 아닙니다.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글 한 편을 쉽게 쓰려고 하지 마세요.
-글에 등장하는 인물은 독자가 읽고 나서 궁금증이 생기지 않도록 다 풀어 써야 합니다.
-정보와 재미있는 글을 쓰세요
-등단한 분, 잘 쓰는 분들의 글 합평이 센 것은 다 아시지요? 그런데 잘 쓴다고 생각하는 분들, 등단하신지 오래 되신 분들은 지적된 사항을 수용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계속적인 발전을 위하여 지적된 사항들을 고쳐보세요. 작품의 수준이 한 단계씩 올라갈 것입니다.
*작가 살펴보기
문인수 시인, 문정희 시인, 김윤선 수필가 작품을 살펴보았습니다.
-글재주가 없으면 fact로 충격을 주는 방법이 있습니다.
-문학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문인수 시인의 <식당의자>는 미당문학상 수상작입니다.
-문정희 시인의 <꽃이 질 때>처럼 연상법으로 글을 쓰세요.
-문정희 시인의 <떠돌이 풀>처럼 fact를 쓰고 해석, 재해석, 재재해석...으로 이어지도록 글을 쓰면 깊이 있는 수필이 됩니다.
-《시애틀문학》2010 제3집에 있는 김윤선 수필가의 <얼룩>을 읽으세요. 주제에서 어긋나지 않는 치밀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8월 18일 오후 1시 30분에는 손홍규 소설가의 특강이 있습니다.
꼭 참석하셔서 작가와의 특별한 만남을 가져보세요~
3교시 티타임
지난 주에 이어 파스쿠치 커피샵에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모이셔서 두 그룹으로 나뉘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신선숙 선생님께서 쏘신 커피와 차로 이야기 꽃은 점점 커졌습니다. 예쁘게 활짝 핀 대화의 분위기는 샘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혼사 치루시고 오신 양경자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독특한 샘만의 문체로 독자들을 사로잡고 계시니 결석하시면 안 되옵니다.
계속 이야기 하고픈 마음을 접고 5시 신데렐라가 되어, 헤어지는 눈빛 속에 아쉬움이 반짝합니다.
한 주 건강하게 잘 보내시고 담 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