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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와 <유정> 그리고 바이칼....    
글쓴이 : 노정애    14-08-08 20:51    조회 : 5,052
금요반 오늘은
임옥진반장님의 외손자가 드디어 돌이 되었습니다. 간식으로 돌떡인 수수떡과 무지개떡이 입안에서 살살 녹았답니다. 축하드립니다. 건강하게 총명하게 바른 심성으로 잘 자라길 바라며 맛나게 먹었답니다. 감사합니다.
 
바이칼로 여행가시는 분들을 위해 이광수의 삶과 유정을 공부했습니다.
 
이광수에게 유정은 질량과 부피가 엄청나다는 송교수님의 말씀.
수업시간에 듣기만 했습니다. 컴 여기저기를 뒤져서 비교적 교수님 말씀과 가까웠던 것들을 찾았습니다. 비록 송교수님의 강의에는 못 따라가지만 오늘 후기는 이렇게 공부하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참고로 합평글 공부는 다음으로 미뤘답니다.)
 
 
이광수의 아명은 이보경(寶鏡), 호는 고주(孤州춘원(春園장백산인(長白山人). 익명은 노아자·닷뫼·당백·경서학인(京西學人) 등이다. 평안북도 정주 출생. 아버지는 종원(鍾元), 어머니는 충주 김씨이다. 1910년 백혜순(白惠順)과 혼인하였으나 1918년 이혼 후 여의사 허영숙(許英肅)과 재혼하였다.
*활동사항
11세 때인 1902년 콜레라로 부모를 여의었다. 이듬해 동학에 입도, 천도교의 박찬명 대령 집에 기숙하며 서기일을 맡아보다가 1905년 일진회(一進會)의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으로 건너가 대성중학에 입학하였으나 그해 11월 귀국, 이듬해 다시 건너가 메이지학원(明治學院) 중학부 3학년에 편입하여 학업을 계속하였다. 이 무렵 안창호(安昌浩)에게 크게 감명받았고, 메이지학원의 분위기에 따라 기독교생활을 결심하기도 하였다. 1910년 중학 5학년을 마치고 귀국하여 정주 오산학교(五山學校)의 교원이 되었다. 191311월 세계여행을 목적으로 중국 상해에 들렀다가 1914년 미국에서 발간되던 신한민보(新韓民報)의 주필로 내정되어 도미하려고 하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으로 귀국하였다. 이듬해 9월 재차 도일하여 와세다대학 고등예과에 편입, 이듬해 9월 철학과에 입학하여 많은 독서를 하였다. 191811월 윌슨 미국대통령의 14원칙에 의거한 파리평화회의가 열리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하였다가, 다음달에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청년독립단에 가담, 2·8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뒤 상해로 탈출하였다. 상해에서 그를 만나 그의 민족운동에 크게 공명하여 그를 보좌하면서 독립신문의 사장 겸 편집국장에 취임하고 애국적 계몽의 논설을 많이 썼다. 이광수는 가운이 기울어짐에 따라 가난을 체험하면서 청일전쟁을 겪었고, 부모를 잃은 뒤 동학당 일을 본 탓으로 일본헌병에 쫓겨 고향을 떠났을 때가 노일전쟁 중이었다. 그는 오산학교 교원시절에는 경술국치의 설움을 겪었다. 그후 방랑시절 시베리아에서 1차세계대전의 발발을 들었으며, 3·1운동의 소식을 상해에서 들었는가 하면, 중일전쟁시에는 수양동우회사건(修養同友會事件)으로 옥에 갇혔고, 광복 후에는 일제말엽 훼절로 친일파라는 심판을 받고 수난을 당하였으며, 6·25 중에는 젊은 시절부터 고생한 병고에 시달리면서 공산당에 납치되어 생사불명의 불귀객이 되었다. 그는 민족근대사의 수난을 순교자처럼 받았고, 그것을 민감하게 소설·논설·시가·수필·기행문 형식으로 원고매수 8만매로 추량할 정도의 방대한 양으로 표현하였다.
*문학사적 위치
1910대한흥학보(大韓興學報)·소년·청춘등에 단편 <무정>·<헌신자>·<김경(金鏡)>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1918년 한국 근대 최초의 장편소설인 <무정>을 단행본으로 발간하여, 폭발적인 인기와 비난을 한꺼번에 받았다. 최남선(崔南善)과 협력하여 소년·청춘등의 편집과 집필에 참가하면서 언문일치 등 신문학운동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해왔으며, 초기의 신체시인으로서 또한 최초의 근대소설 작가로서 현대문학의 실질적인 기초를 확립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문학적 특성은 대중 본위의 작품을 썼다는 점과, 작품을 통한 선동 내지 혁명정신을 정립하려 한 민족주의적 경향을 띤다는 점, 그리고 작품을 통하여 일반대중에게 이상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한 계몽주의적 혹은 이상주의적 작품을 썼다는 점, 그 결과 지나친 계몽정신에 의해 설교적인 요소가 강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초기에 강렬하게 보여준 민족주의 내지 계몽주의적 요소는 그가 당면한 사회적 갈등에 철저히 대응하기보다는 이상적인 설교로 힘을 무산시켰다는 부정적 측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후기의 친일적 행위로 그 개성을 상실하기는 했으나, 문학 업적상으로 볼 때는 신문학의 초기를 점철한 개척자로서의 공헌이 컸다. 주요작품으로는 단편 <무정>·<무명(無明)>·<난제오(亂啼嗚)>·<가실(嘉實)> 40여 편과 장편 <개척자>·<재생>·<무정>·<유정>·<>·<>·<사랑>·<원효대사>·<이차돈의 사()>·<단종애사>·<이순신> 등이 있으며, 그외 시가(詩歌)와 수필, 논설 등도 다수가 있다.
 
소설 <유정>의 무대
 
이광수의 소설 <유정(有情)>은 바이칼에서 시작해서 바이칼에서 끝난다. 일제강점기, 지금으로부터 80년 전인 1933년에 쓴 소설인데 그 시절 바이칼, 이르쿠츠크 등 시베리아를 주요 무대로 소설을 썼다는 것이 경이롭다. 작가가 어느 정도 체험하지 않고는 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겨울의 시베리아를 경험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터인데 하물며 모든 여건이 어려웠을 그 시절에야 말할 것도 없다.
 
우리나라 현대소설의 개척자로 불리는 춘원 이광수(1892-1950)20대 초 젊은 시절 시베리아 지방을 여행하였다. 1913-14년 사이이니 그의 나이 21세에서 22세 무렵이다. 춘원은 바이칼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것 같다. 이때의 경험이 <유정>에 녹아있다.
 
<유정>은 남편(최석)이 중국에서 데려와 자식처럼 키운, 죽은 남편 친구의 딸(남정임)과 남편 사이를 불륜으로 오해한 부인의 사실상의 난동으로 인해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는 내용이다. 남편은 부인이 퍼뜨린 소문 때문에 교장직에서 물러나고 여론의 뭇매를 맞는 사태를 맞아 결국 집을 나와 시베리아로 간다. 세상을 등지기 위해서다. 그러나 가족들이 친구 N에게 보낸 그의 편지를 통해 뒤늦게 진실을 알게 된다. 일본에서 서울에 온 남정임이 병중임에도 최석의 딸 순임과 함께 그를 찾아 시베리아로 떠나지만 최석은 남정임이 도착하기 직전 세상을 떠난다는 비극적인 스토리이다.
 
물론 소설 속에서 최석과 성장한 남정임 사이에는 나름 사랑의 물결이 일렁이지만 그것은 정신적인 선을 넘지 않는다. 서울과 일본, 만주, 시베리아, 바이칼 등을 무대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소설은 이렇게 최석의 친구 N의 설명으로 시작된다.
****************************************************
최석으로부터 최후의 편지가 온 지가 벌써 일 년이 지났다.
 
그는 바이칼 호수에 몸을 던져 버렸는가. 또는 시베리아 어느 으슥한 곳에 숨어서 세상을 잊고 있는가. 또 최석의 뒤를 따라 간다고 북으로 한정 없이 가 버린 남정임도 어찌 되었는지, 이 글을 쓰기 시작할 이때까지에는 아직 소식이 없다.
 
나는 이 두 사람의 일을 알아보려고 하얼빈, 치치하얼, 치타, 이르쿠츠크에 있는 친구들한테 편지를 부쳐 탐문도 해 보았으나 그 회답은 다 모른다.’라는 것뿐이었다. 모스크바에도 두어 번 편지를 띄워 보았으나 역시 마찬가지로 모른다는 회답뿐이었다.”
 
 
이어 N씨는 친구 최석과 남정임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최석으로부터 온 편지 사연을 공개하노라고 밝힌다. 소설은 그렇게 편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최석이 편지를 쓴 곳은 바이칼 호수 변, 어느 부랴트 족의 민가다. 다음은 편지의 서두이다.
 
믿는 벗 N!
 
나는 바이칼 호의 가을 물결을 바라보면서 이 글을 쓰오. 나의 고국 조선은 아직도 처서 더위로 땀을 흘리리라고 생각하지마는 고국서 칠천 리 이 바이칼 호 서편 언덕에는 벌써 가을이 온 지 오래요.
 
이 지방의 유일한 과일인 야그드의 핏빛조차 벌써 서리를 맞아 검붉은 빛을 띠게 되었소. 호숫가의 나불나불한 풀들은 벌써 누렇게 생명을 잃었고 그 속에 울던 벌레, 웃던 가을꽃까지도 이제는 다 죽어 버려서, 보이고 들리는 것이 오직 성내어 날뛰는 바이칼 호의 물과 광막한 메마른 풀판뿐이오. 아니 어떻게나 쓸쓸한 광경인고.
 
남북 만 리를 날아다닌다는 기러기도 아니 오는 시베리아가 아니오, 소무나 왕소군이 잡혀 왔더란 선우의 땅도 여기서 보면 삼천리나 남쪽이어든······. 당나라 시인이야 이러한 곳을 상상인들 해 보았겠소?
 
이러한 곳에 나는 지금 잠시 생명을 붙이고 있소. 연일 풍랑이 높은 바이칼 호를 바라보면서 고국에 남긴 오직 하나의 벗인 형에게 나의 마지막 편지를 쓰고 있소.
 
지금은 밤중. 부랴트 족인 주인 노파는 벌써 잠이 들고 석유 등잔의 불이 가끔 창틈으로 들이쏘는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소. 우루루 탕하고 달빛을 실은 바이칼의 물결이 바로 이 어촌 앞의 바위를 때리고 있소. 어떻게나 처참한 광경이오······.
 
최석의 목적지는 바이칼 호수
 
그는 출렁이는 바이칼 호수가 보이는 곳에서 서울에 있는 자신의 유일한 벗 N에게 그간의 진실을 밝히는 편지를 쓴다.
 
그 바이칼은 조선에서 7천리 즉 28백킬로미터나 떨어진 아득하게 먼 곳이다. 묵고 있는 민가가 있는 곳이 바이칼 서편 언덕이라고 하니 이르쿠츠크와 가까운 곳이면 리스트비얀카나 그 인근 쯤 되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최석은 소무나 왕소군이 잡혀 왔더란 선우의 땅도 여기서 보면 삼천리나 남쪽이어든---”이라고 했다. 선우는 흉노의 우두머리. 선우의 땅이란 흉노의 땅이니 지금의 몽골을 포함, 만리장성 이북의 광범위한 지역을 일컫는다 하겠다.
 
소무는 중국 전한(前漢) 때의 명신으로 선우에게 붙잡혀 복종할 것을 강요당했으나 이에 굴하지 않아 북해(바이칼) 부근에 19년간 유폐되었던 인물이다.
 
왕소군은 서한 원제(元帝)때 흉노와의 친화정책을 위해 흉노의 왕 호한야 선우에게 시집간 궁녀인데 중국 4대 미인의 하나로 일컬어지고 있는 인물이다. 미인임에도 불구하고 궁정의 화공에게 뇌물을 주지 않아 추하게 그려지는 바람에 흉노에게 보내지게 되었다. 황제가 그림을 보고 그 중 미색이 빠지는 궁녀를 보내기로 했던 모양이다. 원제는 왕소군을 보내기로 결정한 후에야 그녀의 뛰어난 미모를 알게 되었다. 그녀가 떠난 뒤 화공들은 원제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전해진다. 물론 전설같은 이야기다.
 
(: 위 소설의 문장 중에 이 지방의 유일한 과일인 야그드란 대목이 있다. 그런데 야그드는 과일인가? 야그드는 시베리아 산야에서 여름철에 나는 작은 야생 식용 열매의 총칭이다. 직경 5-6밀리 정도 되는 빨강 또는 감청색을 띄는 작은 열매인데 8월 중순께부터 나온다. 그냥 먹으면 신맛이 나며 대개 훝어 모아서 잼을 만들어 먹는다.)
바이칼은 그렇게 선우의 땅보다도 삼천리나 먼 북쪽에 있건마는 최석은 평소에도 바이칼 호를 그리워했다. 소설 속의 최석은 그곳에 갔던 적은 없다. 바이칼호를 그리워한 소설속의 최석은 젊어서 이 지역을 여행했던 저자 이광수다.
 
서울을 떠난 최석은 아라사(러시아)로 들어가기 위해 하얼빈의 아는 이 R을 찾아간다. 그런데 하얼빈에서 조선 사람들이 조선 사람인 것을 숨기는 모습을 보고 일제 식민지하에서의 조선민족의 비참한 처지에 새삼 비통함을 느낀다.
 
나는 하얼빈에 그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오. 그 사람을 찾아야 아라사에 들어갈 여행권을 얻을 것이오, 여행권을 얻어야 내가 평소에 이상하게도 그리워하던 바이칼 호를 볼 것이오.
 
하얼빈에 내린 것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이었소.
 
나는 안중근이 이등박문(伊藤博文, 이토 히로부미)을 쏜 곳이 어딘가 하고 벌판과 같이 넓은 플랫폼에 내렸소. 과연 국제도시라 서양 사람, 중국 사람, 일본 사람이 각기 제 말로 지껄이오. 아아, 조선 사람도 있을 것이오마는 다들 양복을 입거나 청복을 입거나 하고 또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말도 잘하지 아니하여 아무쪼록 조선 사람인 것을 표시하지 아니하는 판이라 그 골격과 표정을 살피기 전에는 어느 것이 조선 사람인지 알 길이 없소.
 
아마 허름하게 차리고 기운 없이, 비창한 빛을 띠고 사람의 눈을 슬슬 피하는 저 순하게 생긴 사람들이 조선 사람이겠지요. 언제나 한 번 가는 곳마다 동양이든지 서양이든지 나는 조선 사람이오!’ 하고 뽐내고 다닐 날이 있을까 하면 눈물이 나오. 더구나 하얼빈과 같은 각색 인종이 모여서 생존 경쟁을 하는 마당에 서서 이런 비감이 간절하오.
 
아아, 이 불쌍한 유랑의 무리 중에 나도 하나를 더 보태는가 하면 눈물을 씻지 아니할 수 없었소.
 
최석은 R로부터 여행권과 소개장을 얻었다. R에게는 바이칼로 가려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고 말한다.
 
나는 피곤한 몸을 좀 정양하고 싶다. 나는 내가 평소에 즐겨하는 바이칼 호반에서 눈과 얼음의 한겨울을 지내고 싶다.’는 것을 여행의 이유로 삼았소.
 
R는 나의 초췌한 모양을 짐작하고 내 핑계를 그럴듯하게 아는 모양이었소. 그리고 나더러, ‘이왕 정양하려거든 카프카 지방으로 가거라. 거기는 기후 풍경도 좋고 또 요양원의 설비도 있다.’는 것을 말하였소.
 
나는 톨스토이의 소설에서, 기타의 여행기 등 속에서 이 지방에 관한 말을 못 들은 것이 아니나 지금 내 처지에는 그런 따뜻하고 경치 좋은 지방을 가릴 여유도 없고 또 그러한 지방보다도 눈과 얼음과 바람의 시베리아의 겨울이 합당한 듯하였소.
 
그가 열차를 타고 하얼빈에서 서쪽으로 시베리아를 향해 가면서 본 북만주 광야를 묘사한 대목은 탁월하다. 당대 최고의 소설가다운 유려한 문장이다.
 
가도 가도 벌판. 서리 맞은 마른 풀 바다. 실개천 하나도 없는 메마른 사막. 어디를 보아도 산 하나 없으니 하늘과 땅이 착 달라붙은 듯한 천지. 구름 한 점 없건만도 그 큰 태양 가지고도 미처 다 비추지 못하여 지평선 호를 그린 지평선 위에는 항상 황혼이 떠도는 듯한 세계.
 
이 속으로 내가 몸을 담은 열차는 서쪽으로 서쪽으로 해가 가는 걸음을 따라서 달리고 있소. 열차가 달리는 바퀴 소리도 반향할 곳이 없어 힘없는 한숨같이 스러지고 마오.
 
기쁨 가진 사람이 지루해서 못 견딜 이 풍경은 나같이 수심 가진 사람에게는 가장 공상의 말을 달리기에 합당한 곳이오.
 
그리고 마침내 바이칼 호숫가에 도착하여 어느 부랴트 족의 집에 머물면서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소설 속의 편지는 바이칼 촌에서 초가을에서 초겨울 사이에 쓰여졌다. 편지의 서두에 처서무렵이라고 나온다. 처서면 대략 양력 8월 하순. (처서는 24절기 중 14번째에 해당하는 절기로 음력 715, 양력 823일 무렵이다. 더위가 그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 우리나라는 아직 더울 때지만 시베리아는 이미 가을에 접어 든 선선한 시기다.
 
이 편지를 쓰기 시작할 때에는 바이칼에 물결이 흉용하더니, 이 편지를 끝내는 지금에는 가의 가까운 물에는 얼음이 얼었소. 그리고 저 멀리 푸른 물이 늠실늠실 하얗게 눈 덮인 산 빛과 어울리게 되었소.
사흘이나 이어서 오던 눈이 밤새에 개고 오늘 아침에는 칼날 같은 바람이 눈을 날리고 있소.
나는 이 얼음 위로 걸어서 저 푸른 물 있는 곳까지 가고 싶은 유혹을 금할 수 없소. 더구나 이 편지도 다 쓰고 나니, 인제는 내가 이 세상에서 할 마지막 일까지 다한 것 같소.
 
내가 이 앞에 어디로 가서 어찌 될지는 나도 모르지만 희미한 소원을 말하면 눈 덮인 시베리아의 인적없는 삼림 지대로 한정없이 헤매다가 기운 진하는 곳에서 이 목숨을 마치고 싶소.
 
그리고는 끝으로 꿈 이야기를 덧붙인다. 시베리아에서도 최석의 머릿속은 온통 정임 생각뿐임을 드러내는 이야기다.
 
꿈 속에서 사슴떼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 뒤에 흰 옷을 입은 정임이 미끄러지듯 다가오는 것 같더니 그를 잠깐 보고는 미끄러지듯 그에게서 멀어져간다. 정임을 붙잡으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그녀는 시베리아의 눈보라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최석은 미칠 듯이 정임을 찾고 부르다가 잠에서 깨었다. 그리고 이렇게 창밖으로 본 바이칼 호수의 정경을 전한다.
 
꿈을 깨어서 창밖을 바라보니 얼음과 눈에 덮인 바이칼 호 위에는 새벽의 겨울 달이 비치어 있었소. 저 멀리 검푸르게 보이는 것이 채 얼어붙지 아니한 물이겠지요. 오늘밤에 바람이 없고 기온이 내리면 그것마저 얼어붙을는지 모르지요. 벌써 살얼음이 잡혔는지도 모르지요.
아아. 그 속은 얼마나 깊을까. 나는 바이칼의 물속이 관심이 되어서 못 견디겠소.
 
그리고는 마지막 작별 인사를 전하면서 편지를 마친다.
 
인제 바이칼의 석양이 비치었소. 눈을 인 나지막한 산들이 지는 햇빛에 자줏빛을 발하고 있소. 극히 깨끗하고 싸늘한 광경이요. 아듀!
 
이 편지를 우편에 부치고는 나는 최후의 방랑의 길을 떠나오. 찾을 수도 없고, 편지 받을 수도 없는 곳으로,.
 
부디 평안히 계시오. 일 많이 하시오. 부인께 문안 드리오.
 
내 가족과 정임의 일을 맡기오, 아듀!
 
이것으로 최석 군의 편지는 끝났다.
 
나는 이 편지를 받고 울었다.
 
한편, 남정임과 최석의 딸 순임은 가족들과 N에게도 말하지 않고 최석을 찾아 시베리아로 떠난다. 한겨울이다. 흥안령을 지날 때 플랫폼의 온도계는 영하 23도를 가리키고 있다.
**************************************************************
 
이렇게 후기를 끝냅니다.
 
사랑하는 금반님들 다음주는 광복절입니다. 한 주 쉬시고 22일에 뵙겠습니다. 22일이 여름학기 종강일입니다. 모두 한국산문8월호 가지고 꼭 오셔야합니다.
바이칼로 여행가시는 분들 잘 다녀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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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화   14-08-08 22:19
    
제 인생의 방황기였던 여고시절, 유일하게 나를 지탱시켜 준 것이 책이었습니다.
 주로 세계문학전집을 읽었는데 사람들에게 ‘세계문학전집 다 읽었다’는 자랑을 하기위해
재미없는 것도 억지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문학은 당연히 시시하게 생각되었고
한국작가들 또한 외국 작가들에 비해 열등하게 생각되었지요.
역으로,
미국에 몇 년 사는 동안 한국문학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구나를 뼈저리게 느끼며 한국작품들만 찾아 읽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그 때도 <<유정>>,  <<무정>> 등 천재작가인 이광수를 지나쳤으니,
오늘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그를 만나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니 아찔합니다.

바이칼 여행하는 분들을 위해 이광수를 공부한다는 말씀을 하시길래 의아해 했지요.
저의 시대와는 조금 먼저 살다간 작가여서 그랬는지 먼 역사 속 인물로만 생각했었는데
오늘 이광수를 공부하는 내내 그를 사랑하고 싶어 몸이 달았습니다.
바이칼 호수!
세계 여느 이름 난 관광지인 나이아가라, 그랜드 캐년, 만리장성 등 그 나열된 중 하나 일  뿐
별다르리라고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그런데
이광수가 다녀간, 오늘부터
그의 혼이 녹아 있을, 그 푸르고 차가운 물에 사뭇 경의가 표해집니다.
.
 방대하고도 장엄한(?) 후기를 읽고나니 오자마자 주문한 이광수 작품이 더욱 기다려집니다.
본 요리 나오기 전 훌륭한 에프타이저가 식욕을 한껏 돋운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훌륭한 후기 감사합니다.
     
조병옥   14-08-09 00:31
    
와아, 오늘 후기 읽다가 숨 넘어갈 것 같다.

      총무님, 오줌 누러 갔다 와도 돼요?


    보답하는 의미루다가 이광수의 부인 이력 쪼까 놓고 가요.

      1920년대 화동 동아일보 시절, 춘원 이광수가 몸이 불편해 출근을 못하고 있을 때 당시 송진우 사장이 학예부에 있던 허영숙을 불렀습니다.

 “춘원 좀 어떻습니까?”

 “웬일인지 어제 오늘 열이 더해요.”

 “엉? 그거! 저 저 허영숙씨를 춘원한테서 격리를 시켜야해. 격리!”

 순간 편집국은 웃음바다가 됐습니다. 사장이 농으로 던진 말이지만, 그만큼 춘원과 허영숙의 로맨스는 동아일보 사내에서 뿐아니라 경성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습니다. 두사람의 만남과 열애는 당시 경성을 뒤흔든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서울의 부잣집 딸이었던 허영숙은 당시 양반집안의 규수들만 다닐 수 있었던 귀족여학교(진명소학교, 경기여중)를 거쳐 도쿄 여자의학전문학교(일명 우시고메 여의전)에 입학, 1918년 조선총독부가 시행한 의사시험에 조선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합격했습니다. 공부에만 열중하며 의사가 되기를 꿈꾸던 허영숙은 학교 부속병원으로 실습을 나가있던 어느날 각혈로 병원을 찾아온 조선 청년을 만나 운명처럼 사랑에 빠졌고, 그가 바로 춘원 이광수였습니다. 그때 나이 춘원은 스물여섯, 허영숙은 갓 스무 살이었습니다.


  허영숙은 1920년 5월 서울 서대문에 조선 최초의 산부인과 병원 ‘영혜의원’을 개업해 의사로서 크게 명성을 얻었습니다. 남편의 주치의이자, 후견인 역할까지 했던 허영숙은 동아일보 학예부장 춘원이 병으로 눕게 되자 대신 원고정리를 해줄 요량으로 신문사에 나갔다 신문기자가 됐습니다.  1925년 12월에는 남편으로 부터 동아일보 학예부장 자리를 이어받는 진기록을 세웠고 신문 사상 첫 여성 부장으로 기록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강수화   14-08-09 16:03
    
결혼을 한 후 시댁에 간 어느 명절, 저녁을 먹고 다 같이 티브이 앞에 앉았는데 남편이 날더러 등이 가렵다고 좀 긁어 달라 하였습니다. 어른 들 앞이라 선뜻 남편 등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사이 옆에 앉아 계시던 시어머니께서 남편 등으로 손을 쑥 들이 밀더니 쓱싹쓱싹 긁어주셨답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남편의 런닝을 들추고 몸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워따워따 많이 말랐다’ 하시며 무척 안타까운 표정을 짓더라구요. 남편 몸에 시어머니의 손길이 닿으니 참으로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몸에서 나온 몸인데 왜 징그러운 생각이 들었을까요, 그런데다 말랐다며 나를 째려보시는 눈길이 얼마나 섬뜩한지 괜히 죄 지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몸둘바를 몰랐지요.
 서울로 올라오는 날 아침 나를 뒤 안으로 살짝 부르더니 유학 떠날 때까지 각방을 쓰라고 은근한 협박을 하셨답니다.
아마 어머니께서는 제가 순한 양처럼 시키면 다 할 것 같이 보이셨나 봅니다.
탱크(tank)인 줄을 모르셨던 모양이예요.ㅎㅎ
 가끔 그 때를 생각하며 아들 장가보내면 그 몸뚱아리는 며느리 것이 되는  만큼 각별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답니다.

허영숙과 이광수의 사랑이 어떠하였을지 짐작이 가는군요.
안명자   14-08-08 22:48
    
이리도 반을 위해 노력과 최선을 다  하시는 노 총무님!
아무래도 금반은 노총무님이 계셔서 금반인가 합니다.
오늘 교수님 강의 100% 다 올려 주셨슴다. 거기에 더 많은 것을 알려 준
우리 총무님. 온 종일 봉사 하시느라 바쁘신데 눈으로, 머리로 찾아서
손으로 올리시느라 손가락이 아프실듯.
예언컨데 침해는 노총무님 일생엔 없을듯 합니다.
오늘 뵈오니 여위신 모습이 더 예뻐 보였는데 후기 올리느라 서너근은 더 빠지셨을 듯 하네요.
다 다음주 뵈올 땐 몰라 볼 수도 있으니 꼭 자기 소개 부탁 드립니당.
외손주 돐을 맞아 친히 돐 떡을 나눠주신 임샘. 떡이 아주 맛있었어요. 팥단지가 입에 착착 감기더군요.
아기가 건강하고, 총명하게, 부모님과 모든 사람에게서 사랑과,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고 잘 자라기를
 기도 합니다. 문학기행 건강히 잘들 다녀 오시구요, 원예샘 힘 내세요. 홧팅!
윤정샘 많이 보고픕니다. 아직도 이 주는 기다려야 되나요.
살랑살랑 아침 저녁으로 부는 선선한 바람이 좋은 일들을 불러 드릴 것을 기대해 봅니다.
 문우님들 건강하시고 다 담주까지 샬롬!
정지민   14-08-08 23:09
    
총무님 후기도 그렇고 위 두 분 선생님의 댓글까지, 어찌 말로 표현하기가 부끄럽네요.
참으로 진실된 모습입니다. 저는 탄복의 제스츄어나 남기고 서둘러 물러갑니다.
     
한희자   14-08-08 23:23
    
느림보로 찍고나니 내 댓글조차 지민씨것의 표절이 되고 말앗구료.
그대의 섬세한 가슴에 담아올 바이칼의 언어가 얼마나 우리를 황홀하게할까....
안명자   14-08-08 23:16
    
아~~춘원! 눈물 없이는 못 읽을 친구에게 보낸 가슴시린 편지.
그가 갈구하는 사랑!
해무와 운무가 어우러진 맑고도 푸른 바이칼.
 수풀속 처럼 짙게 드리운 외로움.
아주 오래 전 에 읽었지만 희미 했던 기억들이
교수님 강의와 총무님 후기로 어렴풋이 떠 오릅니다.
한희자   14-08-08 23:17
    
후기도, 댓글도 너무훌륭해서 주눅들어 못살겠당
꽉찬 교실, 수업열기에 에어콘 팍팍 올렸삼.
눈을 반짝이며 열공중인 모습들 교수님도 흐뭇하셨을겁니다.
공부하는 재미가 솔솔, 모두 얼마나 즐거워 하시는지 한주일 쉬는것
무척 아쉬워 하신답니다.
여행가시는 분들 가을 바람 한아름 담아오소서
오윤정   14-08-09 00:01
    
한국산문은 은하계(galaxy)

그리워 바라 본 압구정 하늘엔 별이 총총
misty 별 상향희 선생님
소공녀 별 김옥남 선생님
peacock 별 양혜종 선생님
관세음 별 조순향 선생님
여왕(queen)별 일초 선생님 
wit별 한희자 선생님
사임당 별 송경순 선생님
콩쥐 별 안명자 선생님
탄산수 별 소지연 선생님
아씨 별 서청자 선생님
신호등 별 임옥진 반장님
겨울 나그네 별 황경원 선생님
살로메 별 정지민 선생님
코코넛(coconut)별 이원예 선생님
탤런트(talent)별 노 총무님
탱크(tank) 별 강수화 샘

???별 스승님

3주를 결석하니 많이 그립고 궁금합니다.
이토록 훌륭한 강의 후기로나마 볼 수 있음을 감사드리며
22일 수업때 뵙겠습니다.
소지연   14-08-09 14:46
    
그 은하계에서  은은하게 스파클링하는 딱 알맞은 사이즈의 별,
님은 바로 그런 '선녀'같은 별입니다.
지성과 감성를 모두 갖춘 윤정님을 볼때마다 경이로움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퓨전 염라대왕' 같은 우리 스승님을 살짝 따돌린 이 댓글방에서 또 다른 행복을 맛봅니다.
일러주기 없기예요, 여기까지 들어오심 우리 키보드 다 덜덜 떨려요...
이원예   14-08-09 17:01
    
어쩌면 이렇게 다 말씀을 잘하시는지 공연히 주눅이 듭니다. 저는 댓글방에 오면 할말이 없어서 님들 말씀만 보고 혀만 내 두를 뿐 도무지 말이 안나와요. 그래서 그냥 눈으로만 인사하고 서둘러 빠져 나오곤 했는데요. 아 정말 부럽습니다.
     
노정애   14-08-11 17:05
    
원예님 주눅든다에 저도 한표.
저도 엄청 주눅들어 있답니다.
많이 부럽고...
안명자   14-08-09 20:33
    
후후~~ 윤정샘, 은하계의 이름들을 어찌그리 잘 지었는지요.
스승님과 본인의 별만 빼고서.
재치있는 탄산수별 지연샘이 지어 준 '선녀' 별 윤정샘.
지연샘, 한발 앞서 오샘별 이름 붙여서  감사합네다.
스승님의 아우라에 감히...어떤 별이 이름표를 달아 드릴지.
용감한 자 누구십니까?  노총무님? 수화샘?  아니 재치 만점이신 희자샘?
아님 우리의 퀸 일초샘?
일초샘의 춘원과 허영숙과의 사랑을 현실감있게 적어 주시어  그들의 사랑이 괜스리 부럽삼나이다.
김진   14-08-11 08:33
    
오윤정님.  나는 무슨별...?        금반 문우님들. 안녕하시죠,  저도. 잘 있습니다.
     
임옥진   14-08-12 23:25
    
김진샘 약오르지롱!!
눈앞에 보여야 한다니까요.
떡도 별도 없구만요.
노정애   14-08-11 17:10
    
별천지 금요반님들
왜이리도 댓글이 좋은지요.
명문이라는 울 교수님의 말에 좀 읽어 주실려나 했더니 설명만 하시기에
여기저기 뒤지다가 올렸는데
명문이라는 글들을 찾아서...
후기가 넘 길어졌습니다.
숨넘어가게 긴 후기 읽으신다고 고생하셨을 금요반 님들
엄청 감사합니다.
후편으로 쏟아지는 일초샘의 깨알같은 정보도 재미있고 감사합니다.
강수화님의 이야기에 ㅎㅎㅎ
예쁜 별 이름을 지어주신 오윤정님의 센스에 놀라고
많은 분들의 댓글에 즐거워합니다. 
김진샘은 무명별 되시기 전에 빨리 오세요.
그럼 근사한 이름으로 생각해 볼께요.
울 교수님은 '대장별' ?
임옥진   14-08-12 23:23
    
차~아, 못말리는 금반님들입니다.
모두 모두 목말라 하는 님들이라니....
저도 공부 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근데 조게 몇 시간이나 머리 속에 있을라나요.
윤정님 일이 머무 길어지는 것 같습니다.
보고 싶으니 어서 나오셈.
임옥진   14-08-12 23:31
    
<<알립니다>>
자유게시판의 알립니다를 확인하세요.
청송문학관에서 있을 세미나 건에 대한 것입니다.
조병옥   14-08-13 10:33
    
오늘(13일) 조간신문 한 면이
  심하게 꿈틀거렸다.
  <싱크탣크 광장>에 웬 미남이...
  출연한 세 남자 중 유일하게 배 안 나오고 자알 생긴 청년 하나
  이럴 수가..  그의 포즈는 교수가 아닌 오페라 가수였다.
  우리들의  임교수님이었다.
  <기사; 청일전쟁 120주년에 맞는 '갑오년 8.15' 좌담 - 한겨레>
김진   14-08-15 14:36
    
총무님  후기. 잘. 읽었습니다.  수고했어요.
    김진의 별은. 아인슈타인  별?  가고 싶어도. 못가는. 금반?
이원예   14-08-18 07:43
    
오늘 바이칼로 떠나는 반장님 지민님 잘 댕겨 오세요~ 즐거운 여행 되시길.
문우님들 다 평안하시죠? 일줄 안봣다고 벌써 그리워, ㅠㅠㅠ 부산내려가면 보고싶어 우짤꼬나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