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시론 강의는 사유의 방식 중 하나인 상상력으로 시작했습니다.
상상력은 일단 논리를 초월한 어떤 주관적 사고로 정의됩니다.
상상력이 부족하면 일기 형태의 글이 됩니다.
우리는 왜 실생활에서는 거짓말을 수시로 하면서도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면 사실만을 쓰려할까요?
반대가 되어야지요.
실생활에서는 거짓없이 살고, 글을 쓸 때는 약간의 거짓말과 과장을 해야 합니다.
“꽃밭에는 장미 한 그루가 등불을 밝히고 있어요.”
우리는 여기서 햇살이 플러그 역할을 한다는 상상력을 엿봅니다.
이런 시적 표현이 들어가야 수필도 아름다운 글이 됩니다.
역설적 표현은 무조건 상상력에 해당됩니다.
정호승은 역설적 표현에 탁월한 시인입니다.
“사랑은 아프고 아름답다.”
“사랑은 황홀한 재앙이다.”
“사랑은 1%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 99%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말을 뒷받침하는 역설적인 표현들입니다.
훌륭한 상상력은 이같은 모순 속에서 심오한 진리를 지닌 사유입니다.
여기서 모순은 형용 모순을 말하며 이는 모순되게 꾸민다는 뜻입니다.
선운사 동구(洞口) / 서정주
선운사 골짜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육자배기의 청각이 떨어진 작년의 동백꽃인 시각으로 변한 공감각이 잘 나타난 시로
연상의 대표적인 시입니다.
너무 일찍 찾아간 선운사에 동백꽃은 아직이고
섭섭함에 찾아간 선술집에선 작부가 육자배기를 부릅니다.
슬프고도 구성진 그 노래 소리에 파란만장한 그녀의 삶이 느껴집니다.
화려한 꽃잎일수록 떨어지면 처절하고 썩으면 냄새가 진동합니다.
육자배기에서 작년에 떨어진 동백꽃을 연상한 것이 이 시의 키포인트입니다.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와 헤어지며 여우가 말합니다.
“노란 밀밭에서 언제나 너를 생각할거야.”
노란 밀밭은 어린 왕자의 금발을 연상시키는 것이지요.
연상은 망각된 기억의 유사성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다른 사물들로 전이되는 사유체계입니다.
산 2 / 김광림
한여름에 들린
가야산
독경 소리
오늘은
철 늦은 서설이 내려
비로소 벙그는
매화 봉우리
눈 맞는
해인사
열두 암자를
오늘은
두루 한겨울
면벽한 노승 눈매에
미소가 돌아
눈 속에 핀 꽃은 시련을 극복한 꽃입니다.
선구자는 시련을 겪습니다.
면벽한 노승의 미소는 득도를 의미합니다.
매화가 추위를 이기고 꽃을 피웠듯이
성취를 위해서는 고통을 이겨내야 합니다.
이 시 역시 매화에서 노승의 득도를 연상한 시입니다.
시는 사람이 살아가는 원리를
사물 현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등나무는 서로를 꼬아서 그늘을 만들고 여러 가지 색깔의 꽃을 피웁니다.
부부 역시 각자의 몸이지만 한 몸이 되고 자식에게 그늘을 줍니다.
가령 내가 그렇게 살지 않더라도 가상으로 꿈꾸어 보는 것이 시 쓰기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나무가 따로 자라다가 가지가 맞닿아 하나로 합쳐지는 연리지도
글쓰기의 좋은 소재가 될 수 있지요.
인생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불가합니다.
이성과 논리로 설명이 안되는 것은 비유, 이미지로 설명해야 합니다.
사람마다 인생은 다르게 표현됩니다.
즐거운 노동이란 말이 있습니다.
노동을 억지로 하면 힘이 들듯이 글쓰기 또한 노동이 되면 안되겠지요.
물론 글쓰기는 원래 괴로운 작업이고 작가는 영원한 현역입니다.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시지프스처럼
좋은 글을 썼다 하더라도 다시 아래로 내려와 즉
초심으로 다시 올라가듯이 글을 써야 합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 글을 쓴 베테랑도 원고 청탁을 받으면
습작 시절로 돌아가 어렵게 글을 씁니다.
이것이 예술가의 속성입니다.
그래서 다른 직업에서 볼 수 없는 희열을 느낍니다.
여기에 무보상의 중독이 있습니다.
위험과 죽음을 무릅쓰고 보상도 없이 빙벽을 오르는 사람들처럼
노력에 비해 적은 보상을 받는 예술가들은
문화 예술의 중독성에서 빠져 나오지 못합니다.
이 또한 예술적 모순입니다.
지난 주는 임시 휴강을 한 관계로 한 주 건 너뛰고
벗들을 만나니 반가움이 배가되었지요.
습관은 무서운지라 매주 강의를 듣고 서로 얼굴을 보아야만
한 주를 잘 보내는 것 같습니다.
새로 오신 이은심님도 정말 반갑습니다.
결석을 하신 공인영샘, 김화순샘, 박진숙샘,이은숙샘도
다음 주에는 꼭 뵙길 바랍니다.
새해 첫 달이 이렇게 흘러가고 2월에 만나게 되는군요.
봄이 저만치서 고개를 빼꼼이 내밀고 있으니 2월이 오는 것도 반갑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