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혜샘의 <배움과 여유>는 기행 수필입니다.
거제포로수용소를 방문하기 위해 통영을 비롯한 주위 섬들을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악천후 중에도 로나 번의 <수호천사>라는 책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지만
막상 그 책에 대한 언급은 더 이상 없습니다.
책을 소개했으면 반드시 읽은 내용을 써야 합니다.
읽었건 안 읽었건 말이죠.
우리는 왜 여행을 갈까요?
제도적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해방감을 맛보고자 떠납니다.
외국 여행이라도 떠나면 우리는 일상을 깡그리 잊게 됩니다.
글에는 성격이 있어야 합니다.
인터넷을 보면 다 나오는 정보 또는 누구나 다 아는 정보는 불필요한 정보입니다.
내 얘기와 느낌을 써야 합니다.
여행의 즐거움은 일탈이며
내면적 욕망이 드러남에 죄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이문열의 소설 <익명의 섬>은 안성기 주연의 영화 <안개마을>로 유명해졌습니다.
사람의 내면 속에는 성적 일탈 욕구가 있다는 주제를 다룬 소설입니다.
미풍양속 때문에 두렵고 억압, 단죄가 무서워서
현실화하지 못하는 인간의 속성을 보여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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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숙샘의 <산비둘기>는 좀 더 차분한 문장으로 다듬어야 합니다.
최소한 다섯 번의 퇴고는 기본입니다.
문장 하나한 찬찬히 보면서 어색함 부분을 고치고 불필요한 부분은 빼야 합니다.
외울 정도로 볼 수 있다면 더 좋구요.
대화체는 실제 현장에서 쓸 수 있는 언어로 써야 합니다.
실감나게 말이지요.
서툰 대화체는 아이돌 가수가 연기하는 것을 보는 것처럼 어색합니다.
‘엉성한 둥지’라는 표현은 잘못되었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여름 태풍에도 쓰러지지 않는 것이 새둥지일 정도로 튼튼하니까요.
건축학도의 연구대상일 정도로 튼튼한지요.
제주도의 돌담도 ‘틈’이 있기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맑은 물엔 고기가 살고 있지 않듯이 틈 즉 허물이 있는 사람에게 인간미가 있습니다.
완벽한 사람은 남을 단죄하기에 사람이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남의 허물도 용서할 줄 알아야 합니다.
큰 산일수록 골이 깊고 여러 수종의 나무들이 살아갑니다.
원효대사는 <<화엄경>>에서 절대 선은 절대 악과 같다고 했습니다.
선만 가득한 세상이 행복할 것 같지만 악인 때문에 먹고 사는 사람이 많이 있고
필요악이 존재해야 할 이유도 있지요.
박래순샘의 <표적>은 제목 좀 지어달라는 공개 모집에
진미경샘이 장고 끝에 <중동에서 온 전화>가 어떻겠냐는 의견을 주었지요.
스승님의 흔쾌한 동의가 잇따랐습니다.
같은 말이 반복되는 곳이 몇 군데 있었습니다.
군더더기를 색출하는데 늘 촉각을 세워야함을 배웠습니다.
역시 대화체 수정이 필요하다는 말씀과
필요 이상으로 ‘의“가 많이 들어가므로 쓰지 말아야한다는 주의사항도 있었지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피드백 구성인데 끝날 때는 처음으로 돌아가서 현재로 끝을 맺어야 합니다.
윤정미샘의 <맹그로브>는 핀트가 잘 맞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소재 또는 내용에 유사성이 있어야만 엮을 수 있습니다.
언제나 글쓰기 전에는 계산이 필요합니다.
<맹그로브 마을을 살린 특별한 나무>를 일고 느낀 점을 구체적으로 쓰고
자신의 생활을 반성하며 성찰하는 형식이 필요합니다.
맹그로브 나무를 심은 사토 박사에 비견될만한 인물을 주변에서 찾아 글을 써야 합니다.
<울지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나
거지 공동체의 윤구병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지요.
김화순샘의 <스마트폰 시대>는
시라기 보다는 설명문에 가깝습니다.
시적인 표현은 일상적 어법을 따르면 안됩니다.
일상 언어에 폭력을 가해야 합니다.
즉 이미지, 비유, 상징, 역설 등의 구성요소를 총동원해야 합니다.
무섭고 황홀한 여자/ 이재무
그녀가 운다 그녀가 울면 그 울음의 내막
경청해야 한다 관능의 입술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의 거품들 술집 마담의 잔잔한 미소처럼
그녀의 울음은 매번 나를 달뜨게 한다 그러나
술집 나설 때에야 미소에 깜박 속았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경청 이후에야 그녀의 간절한 울음
절박한 사연과 무연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랑을 증오로 갚고 떠나는 연인처럼 언젠가
그녀가 돌변하여 비루하나 치명적인 생의 비밀
속속들이 누설할는지 모른다 자지러지게 울며
주목 끌지만 막상 그녀가 전해주는 사연이란
추수 끝난 벌판의 검불 같은 것이 태반이다
하지만 충동에 빠진 환자처럼 그녀의 비명
외면할 힘이 내게는 없다 나는 이미 그녀에게
길들여진 애완동물 그녀가 울지 않으면
외려 내가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불행하고 처량한 일이지만 그녀가 들려주는
세상 소음으로부터 나는 나날의 일용할 양식
구해왔음으로 사는 동안 재앙이자 구원인 소음에
의무와 책임 다해야 한다 아아, 종일 내내
침묵하던 그녀가 마침내 호들갑스럽게 울어댄다
마음보다 먼저 손 반가워 달려나간다
폰팅광고다
그녀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녀 또한 세상의 노리개일 뿐이다
내 마흔 이후의 생을 경영하는 여자
그녀가 지배하는 시간이 무섭고 황홀하다
중요한 내용이 없어도 우리는 이미 휴대폰에 중독되었습니다.
휴대폰을 무서우면서도 황홀한 여자로 의인화하고 비유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휴대폰에 내장된 비밀이 공개된다면.....
아마 이혼율이 급상승하지 않을까요?
한시라도 내 곁에 없으면 불안하지만
또한 나의 시간을 빼앗아가고 나를 노예로 전락시킨
양면성을 가진 휴대폰의 속성이 재미있게 묘사되었습니다.
미끄럼틀을 열심히 타고 있는 놀이터의 꼬마들.
계단을 힘들게 오르지만 내려오는 것은 순간입니다.
어른들은 계산을 하며 무모한 짓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힘이 들어도 마냥 즐기며 미끄럼을 탑니다.
무보상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은 순수합니다.
계산을 하지 않기에 아이들의 놀이는 아름답습니다.
예술에 보상이 주어지면 영혼이 쉬이 타락합니다.
그래서 아마추어가 더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프로가 아니라서 안타까우신가요?
여유와 순수함을 즐기는 것도 아마추어이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