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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연명의 전원문학 (평론반)    
글쓴이 : 곽미옥    23-03-21 23:27    조회 : 2,686

봄의 길목이지만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한 공기이니 모두 건강에 유의하셔요.

이젠, 대중교통도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됐어요. 그래도 교수님께서는 아직은 더 조심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사람에 따라 증상이 다르게 나타나기에 더욱 자신의 건강을 잘 관리하라고 당부하셨어요.

제1부. 중국기행 (도연명의 전원문학)

* 도연명은 세계사에서 당대에 나타난 최고의 전원시인이다.

* 작가의 작품시대 보려면 반드시 그 시대를 알아야한다.

* 역사적 배경 -위(魏) 세력 중 사마의(司馬懿, 仲達)의 아들 사마소(昭)가 촉 정복(263), 그 아들 사마염(炎, 나중 晉 武帝)이 위나라 찬탈하여 진(晉) 세움(265). 진이 약화되자 5호(五胡) 침입, 서진(西晉) 멸망(316)하자 사마예(司馬睿)가 건업(建業, 현 南京)에서 동진(東晋, 316-419) 일으킴. 혼란 속에서 동진의 유유(劉裕)장군이 동진의 선양(禪讓)으로 유송(劉宋) 나라 세움(420-479). 도연명은 유유장군의 송을 인정하지 않았음.

‣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생애

* 동진(東晉) 애제(哀帝) 때 출생. 동진에서 유송(劉宋)까지의 전원시인. 자(字) 연명 또는 원량(元亮). 이름 잠(潛). 오류(五柳) 선생. 노장(老莊) 사상에 입각한 낙천적 시풍.

* 당대명사 외조부의 영향 받음.

* 393(28세) 강주 좨주(江州祭酒) 임명. 며칠 만에 사임. 주부(主簿)로 임명되었으나 사임.

이 무렵 고향 시상(柴桑)의 상경리(上京里) 거주.

* 394(29세) 부인 작고(영양 불량). 아들 하나. 그 이듬해나 다음해에 적씨(翟氏)와 재혼. 적부인은 교육 받은 여인으로 아들 넷 낳음.

* 399(34세) 강주 자사(刺史) 환현(桓玄)으로부터 관리로 임명받다.

* 404(39세) 2월, 유유(劉裕) 등 군대 동원해 환현 토벌.

* 유유(363-422) 동진(東晉) 말 내란 일으킨 환현(桓玄) 토벌 후 계속 무력으로 지배세력 확장, 황제 폐위, 진(晉) 공제(恭帝) 선위(禪位)로 왕위(419) 차지. 3년 만에 사망.

* 평택현의 현령 부임 405(40세) 8월, 팽택령(彭澤令, 팽택현령) 되다. 일설에는 숙부(陶逵介)가 조카 고생해서 추천했다고 함. 11월, 누이 사망으로 관직 사직, 귀향. 현령(縣令)을 사임한 후 다시는 관계에 나가지 않았다.

* 406(41세) 퇴관 성명서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귀거래혜사(歸去來兮辭)>. 앞에 서문 있고 뒤에 시 나와.

* 서문 일부 -及少日眷然有归與之情. 何则质(質)性自然, 非矫厉(矯勵)所得. 饥(飢)冻虽(雖)切, 违(違)己交病.(급소일권연유귀여지정. 하즉질성자연, 비교려소득. 기동수절, 위기교병)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집이 그리워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생겨났다. 왜냐하면 나의 본성이 자연스러움을 좋아하여 억지로 꾸밀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배고프고 추위에 떠는 것이 비록 절박하지만 본심을 어기는 것은 더욱 고통스러웠다. (배고픈 게 낫지 고개 숙이기 싫다)....중략

정씨에게 시집갔던 누이동생이 무창에서 죽으니, 급히 장례에 가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 관직을 그만두고 떠났다. 음력 8월에서 겨울에 이르기까지 관직에 있은 지 80여 일 되었다. 이 일로 인해 본심을 따르게 되어, 글을 지어 이름붙이길 <귀거래혜>라 하였다. 을사년 11월에 서문을 쓴다.

* 正文 일부 - 세계 전원문학의 명문.

歸去來兮(귀거래혜) 돌아가자.

田園將蕪胡不歸(전원장무호부귀) 전원이 바야흐로 황폐해지려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

으리오. ......(중략)

* 도연명이 좋아한 것 - 국화, 버드나무, 소나무

* 408(43세) 집 불타다. 한동안 배 위에서 생활.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며 구걸도 함.

* 416(51세) 안연지(顔延之)가 강주 자사 유류(劉柳)의 후군공조(後軍工曹) 가 되어 심양에서 살자 자주 왕래. 안연지(顔延之, 384-456). 자 연년(延年). 시호 헌자(憲子). 산둥성(山東省) 린이(臨沂) 출생. 과격, 술 즐겨 귀족적인 조심성이 적어 비난도 들었으나 검소. 유불(儒佛) 통달. 자제 훈계 글 <정고(庭誥)>가 유명. 서사시 <추호시(秋湖詩)>가 대표작.

* 420(55세) 6월, 유유(劉裕)가 진(晉) 찬탈, 송(宋)으로 국호. 도연명은 송을 부인. 구왕조 연호를 그대로 쓰다. 유유 집권 후 도연명은 극빈과 암울.

* <도화원기병시> - 이 무렵 <도화원기병시(桃花源記幷詩)> 쓰다. <도화원기(桃花源記)>는 산문형식으로 개설이고, <도화원시(桃花源詩)>는 5언으로 구성되어 있다.

* <도화원시(桃花源詩)> - 어디에도 없는 유토피아 문학의 모범, 유럽 문학에도 없다.

童孺纵行歌, 班白欢(歡)游诣.(동유종행가 반백환유예). 아이들은 마음껏 다니면서

노래 부르고 노인들은 즐겁게 놀라 다니네.

草荣识(識)节(節)和, 木衰知风厉(厲).(초영식절화 목쇠지풍려). 초목이 무성하면

봄이 온 걸 알고 나무가 시들면 바람이 매서움을 아노라.... (중략)

* 가난과 질병으로 고생 - 강주자사(江州刺史) 왕홍은 도연명에게 친절. 그의 초청연회에 맨발의 허술한 차림으로 참석.

* 427(62세) 11월, 거지처럼 더돌다 병사. 두 아내에게서 5 아들.

<나의 죽음을 애도하는시(輓歌詩)>, 죽어 염하는 장면, 발인, 안장 장면을 묘사.

<나의 제문(自祭文)>- 스스로 쓴 제문, 강소성 자락에 묻혀있다.

* 영향 및 평가 - 4언체(四言體) 9편과 그때에 유행하던 5언체(五言體) 47편 등 시 126수, 사부(辭賦) 3편, 산문 10편. 귀족 중심에서 평민적인 삶. 현언시(玄言詩) 풍미하던 시대에 이노장사상을 바탕한 인생의 철리 강조. 현언시란 현리(玄理) 논하며 도덕론 등 강조.

* 전원시의 의미 - 산수시(山水詩) 성행 시대에 전원시(田園詩)로 대치. 산수풍경은 삶의 현장 떠난 풍경 위주. 안빈낙도(安貧樂道)를 극복.

* 구양수(歐陽脩)는 “진(晉)에는 문장이 없는데, 있다면 도잠의 ‘귀거래사’뿐이다”고 함. 당대에는 평가 못 받다가 송대에 일급으로 평가.

제2부. 합평

문영일/ 김대원/ 박진희/ 오정주(월평포함)/ 하광호 (존칭생략)

다음 시간에는 <당의 역사와 문학>을 강의하십니다.

갈수록 중국문학 기행이 흥미진진해 지네요.

선생님들 환절기에 건강유의하시고 다음 주에 반갑게 봬올게요 ~^^


주기영   23-03-22 00:31
    
곽미옥쌤
오늘도, 후기 고맙습니다.
긴 호흡을 담아내느라 애쓰셨어요. 짱!

田園將蕪胡不歸(전원장무호부귀)
전원이 바야흐로 황폐해지려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오.
- 강의를 듣지 않으면,
이것이 관리를 하다 보니 내 꼬라지(?)가 한심해 지고,
그래서 내 마음이 황폐 하다는 것을 의미함을 어찌 알까요.

3월이 내내 추우려나 했는데, 절기는 속일 수가 없네요.
유난히 따숩다 했더니, 얼음을 꺼내 쓰기 시작한다는 '춘분'이었습니다.

봄은, 참 짧아요.
-노란바다 출~렁
     
곽미옥   23-03-26 19:25
    
주기영 선생님~ 후기 답글에 감사드려요~^^ 저도 도잠의 전원문학을 상세히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소로의 <월든>을 대하는 듯  그의 문학세계는 지금의 우리에게 가깝게 와 닿네요.
    무릉도원의 삶이겠지요?
신현순   23-03-22 09:09
    
미옥샘~
늦게까지 긴 후기 쓰느라 애쓰셨어요.
배 고프고 추운 것 보다  본심을 어기는 것이 더 고통스러워 귀거래혜(돌아가자)를 선택했다는
도연명의 정신세계를 후기를 통해 다시 인식하네요
약동의 계절 봄이네요. 미옥샘도 함께 꽃으로 피어나길 바라며...
수고하셨어요~~
     
곽미옥   23-03-26 19:26
    
네~ 제가 게을러 이제야 답글을 달아요. ㅠㅠ 샘도 꽃처럼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시길 바래요.
    감사드려요~^^
박진희   23-03-22 10:43
    
불의와 타협해서 황폐해지기 보다는 가난하더라도 자연과 더불어 곧게 살고자 했던 도연명은 대단한 위인이에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해서 쓴 自祭文에 그의 눈물이 보여요 ㅠㅠ 차가운 공기가 외로움을 더했겠죠.
그의 당당한 고독을 존경하는 문예인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마음이 피폐해질 때마다 도연명을 읽어볼게요. 미옥샘, 후기 고마워요!
     
곽미옥   23-03-26 19:34
    
진희샘~ 저도 도연명을 다시 생각하게되었어요.  도연명의< 귀거래사> 첫 문장을 읽으며  결핍이 명문장을
    만들었구나를 생각해보았어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 늘 충만한 마음을 갖게하겠지요.
    봄날이네요~ 먼 곳에서도 늘 행복하셔요.
오길순   23-03-23 19:47
    
곽미옥선생님, 어려운 내용들을 찬찬히 써주시어
복습에 유익했습니다.
오래만에 들어온 길이라 허둥거립니다.^^

도연명의 무릉도원이 새삼 상상되는 강의, 문득 갈대 숲 우거진 어느 아름다운 게천 속으로
똑딱배를 타고 빨려들어가는 기쁨을 맛보았달까요?
 
요약정리 감사하와요~~
     
곽미옥   23-03-26 19:36
    
어머나!! 선생님께서 제 글에 댓글을 달아주셨네요.  고맙습니다.
    가까이 계셔도 뵙지도 못하고.. 죄송해요.  더 따뜻한 봄날에 자연과 벗하며 산책하고 싶어요.
    곧 봽기를 고대할게요.~^^
오정주   23-03-23 23:54
    
저의 졸작 한 부분으로 후기에 감사인사를 합니다.
( 6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 전, 도연명은 자신의 제문(自際文)을 썼다. 이승에서의 삶을 기우(寄寓)라 하여 남의 집에 잠시 의탁하여 사는 것으로 보고 이승을 떠나는 것을 역려지관(逆旅之館)이라 하여 잠시 머물던 여관으로 묘사했다. 술과 시와 거문고를 벗 삼아 안빈낙도 하면서 인간 삶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자연에 순응하며 자유롭게 살았지만, 이승의 삶이 너무나 고달팠기에 ‘사후에도 그러면 어쩌나?’ 염려하는 제문의 끝 문장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흔흔향영 중에서
     
곽미옥   23-03-26 19:39
    
오~ 반장님! 술과 시와 거문고를 벗삼아 안빈낙도의 삶.. 도연명이 가능했겠지요?
    반장님의 작품에서도 읽었지요... 센스쟁이 반장님 ~ 요 댓글에 흔흔향영을...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