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게나치노(Wilhelm Theodor Genazino, 1943-2018)의 생애와 문학
1 .그의 생애
빌헬름 테오도르 게나치노는 1943년 1월22일, 도이치 남부의 고도 만하임(Mannheim)의 이탈리아 혈통인 노동자 가정에서 출생했다. 최악의 전쟁 참화를 견디며 노동과 근검절약으로 겨우 생계를 잇는 부모 밑에서 세 명의 형제와 함께 유. 소년 시절을 보낸 그는 만하임에서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녔지만, 졸업도 못한 채 취업부터 해야 했다. 처음에는 프리랜서로, 그 다음에는 하이델베르크와 만하임의 <라인 네카어 자이퉁(Rhein-Neckar-Zeitung)>지의 자원봉사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라디오, 신문과 잡지의 프리랜서 기자, <레제짜이헨(Lesezeichen)>의 편집인 등을 거치면서 1971년(28세)까지 프랑크프루트의 전설적인 풍자 월간지 <파르동(Pardon)>에서 져널리스트로 활동했다. 게나치노는 2018년 12월 12일,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의 웨스트엔드에 있는 자택에서 75세에 폐암으로 사망했다. 두 명의 자녀와 함께 살던 자택에는 세 개의 서재가 있었지만 컴퓨터도 자동차도 TV도 없었다. 그는 프랑크푸르트의 묘지(Frankfurt main cemetery)에 묻혔다.
2. 독일 문단에서의 위치와 문학적 특징
22세 때 쓴 소설 <라슬린 거리 (Laslin strasse)>가 발표되면서 독일 문단에 명함을 내민 게나치노가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34세 때부터 3년에 걸쳐 집필한 3부작 장편소설 <압샤펠(Abschaffel)>(1977), <불안의 근절(Die Vernichtung der Sorgen)>(1978>, <거짓된 세월(Falsche Jahre)>(1979) 이후였다. 소설 <얼룩, 재킷, 방, 고통(The mark, the jacket, the room, the pain)>(1989)으로 1990년 브레멘 시 문학상(Bremer Literaturpreis)을 수상하면서 현대사회에서 소외된 존재들을 다양하게 그려내는 그에게 평론가들은 ‘하찮을 만큼 작은 사물들의 변호사’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는 이 별명에 걸맞게 평생을 통해 작가적 열정을 소시민의 삶에 쏟아 부었는데, 왕성한 작품활동으로 상복도 많았다. 1995년의 졸로투르너 문학상, 1996년의 베를린 문학상, 1998년의 바이에른 예술 아카데미 문학대상, 2001년의 크라니히슈타이너 문학상을 연달아 수상한다. 2001년(58세)에 발표한 <이 날을 위한 우산(Ein Regenschirm für diesen Tag)>으로 2004년(61세)에 마침내 도이치 최고의 문학상으로 알려진 게오르그 뷔히너 상(Georg Büchner Prize)을 수상했다. 이 상을 수여한 도이치 어문학 아카데미는 “빌헬름 게나치노는 시대를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섬세하고 고집스럽게, 그리고 아름다운 음악과 같은 산문을 통해 눈에 띄지 않는 개개인의 일상에 우리 시대를 비춘다.”고 수상자 선정 이유를 밝혔다.
독일 문단은 현대문학의 주요 작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게나치노가 문학과 유머로 대중이 가슴에 품은 일상의 슬픔에 탈출구를 제공했다고 평가한다. 결코 요란하지 않은 펀치로 현대사회의 아픈 곳을 까발리는 중량급 작가이면서도 게나치노는 문학 서사에 유머를 도입한 친절한 작가적 입지를 고수한다. 그가 게오르그 뷔히너 상 수상연설에서 보여준 선언이다.
"친애하는 편집장, 프로그램 책임자, TV 감독, 이벤트 사상가, 백화점 책임자, 존경받는 테마파크 기획자, 사랑 퍼레이드 및 박람회 및 기타 모든 헛소리. 우리의 지루함에서 손을 떼라! 우리를 당신과 친숙하게 만들지 마라! 더 이상 우리가 원하는 것을 말하지 말고,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가만히 서 있는 것은 자유이기 때문이다.“
"두 여자 사랑하기' 라는 제목이 흥미진진했던 작품으로 수업을 했습니다.
고경숙선생님의 따뜻하고 친절하고 섬세한 강의와 우리들의 수다가 어우러진 열린 수업~
여행 다녀오신 신선숙선생님께서 한아름의 간식과 커피 후원으로 더 풍성했던 시간,
유병숙명예회장님의 넉넉한 후원금은 keep~ ^^
다음 수업은 박경리의 <<시장과 전장>> 입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다음달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