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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리 나기빈 단편집』 중에서 <메아리>, <백발 급구>- 유리 나기빈 (명작읽기반)    
글쓴이 : 전효택    23-02-08 13:39    조회 : 2,029

유리 나기빈(1920-1994):

저는 192043일 모스크바의 사무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8살 때 부모님은 이혼하였고 그해 어머니는 작가인 야코프 리카체프와 결혼하였습니다.”

나기빈은 계부 야코프로부터 좋은 책을 읽는 법과 읽은 책에 대해 생각하는 법, 즉 문학작품을 대하는 법을 배움. 계부를 만나러 집에 자주 드나들었던 작가 안드레이 플라토노프(Andrei Platonov, 1899-1951)는 나기빈의 작가 생활에 야코프와 나란히 큰 영향을 미친 제2의 문학 스승임. 나기빈은 1938(18) 모스크바의과대학에 입학했으나 적응하지 못함. 한 학기를 겨우 마치고 러시아영화대학 시나리오학과에 다시 들어감. 1940(20) 첫 단편 <이중의 실수>로 등단함.

단편소설과 중편소설들이 나의 진정한 전기다.” 

전후 소비에트의 대표적인 단편 작가이며 1960-70년대 현대 러시아 문학사에서 반드시 언급되는 작가. 그의 문학적 재능이나 러시아 문학사에서의 그의 위치(최고의 단편소설 작가)에 비해 국내에 널리 알려진 작가는 아님. 수업 후기 작성자도 러시아문학을 공부하기 전에는 전혀 몰랐던 작가임. 현재 국내에 출간된 번역본은 유리 나기빈 단편집(2016), 겨울 떡갈나무(2013), 금발의 장모(2009), 메아리(2000) 등이 있음..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도 활동. 그의 명성은 대부분 소설이지만 그 외에도 에세이, 여행기 그의 소설에 토대를 둔 30여 편의 시나리오를 썼다.

첫 작품집 전선에서 온 사람(1943)부터 사후에 발표된 금발의 장모(1994)에까지 작가 자신의 체험과 추억이 소재임. 일상적 인간의 본성 문제, 인간의 내부 심리적인 문제에 대한 예리한 분석과 통찰이 자주 나타남. 그의 작품 세계는 공통되는 주제, 주인공, 화자로 묶을 수 있는 여러 서클들, 전쟁’, ‘사냥’, ‘자서전적’, ‘역사적 전기서클로 나누어 짐. 그의 작품에서 가장 넓은 테마는 사랑. 

19804월 그의 60번째 생일을 기념하여 러시아에서는 그의 작품 전집이 출간됨. 그의 단편들은 모두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에 의한 소재의 설정, 표현되는 에피소드들의 엄격한 상호 연관성, 간결한 구조, 깊이 있는 주제성을 특징으로 함. 그의 문체적 특성은 사실적 묘사의 정확성과 주변 세계의 묘사에 대한 손에 잡힐 것 같은 형상성인데 그의 이러한 문체적 특징은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벌어지는 시건에 대한 간접적 리얼리티를 전해줌. 

그는 다섯 번 이혼하고 여섯 번 결혼함. 마지막 아내인 알라 그리고리에브나와는 1968(48) 결혼해서 1994(74) 생을 마감할 때까지 26년을 함께 삶.

인터뷰에서 여인을 선택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지위도 성공도 아니며 자기 자신을 찾아내고 인식하는 것이다.” 

1994년 나기빈 사후에 자신의 첫사랑을 소재로 했던 <다프니스와 흘로야. 개인숭배, 주의, 정체의 시대>, 어머니에 대한 회고와 그 시대상을 그렸던 <터널 끝의 어둠>, 장모와의 사랑을 다루었던 <금발의 장모> 등이 발표되자 기절할 성 묘사와 반윤리적 파격에 놀란 러시아 문단과 사회에 일대 파란이 일어났다.

이 작품들보다 더 폭탄적인 소용돌이를 몰고 온 것은 <일기(Dnevnik)>였다. 이 기록은 그의 극단적인 치밀성의 소산으로 1942년부터 1986년까지 무려 44년간 러시아 사회를 관통하면서 계속해온 동시대 인간들에 대한 나기빈의 극사실적인 관찰과 비평이다. 2권으로 묶여 나기빈 사망 직후 출판된 이 기록물에서 그는 격동적 러시아 사회를 살아가는 유명인들의 언행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까뒤집는 예리한 통찰, 가차 없는 악담과 비판을 소나기처럼 퍼붓고 있다. 이 세상에서 예외는 단지 3- 마지막 아내 알라와 하녀, 1952년에 불우하게 세상을 떠난 문학 스승 플라토노프-을 뺀 모든 인간이 그의 표적인데, 나기빈은 죽음을 앞둔 열흘 전까지 이 방대한 기록을 출판하는데 마지막 기력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메아리>(1960)의 줄거리 일부.

이 작품은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 인생을 이야기하고 삶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줌과 동시에 삶에 대한 성찰, 사색이라는 과제를 독자들에게 던져 줌.

작가의 자전적 소설로 보이는 이 작품은 주인공이 모스크바에서 방학을 보내러 간 시네고리야의 해변에서 있었던 30년 전 회고담이다. 해변가에서 돌을 수집하던 소년 세료자는 알몸으로 수영을 하고 있던 깡마른 작은 소녀 비티카와 만난다. 그녀를 따라 기암절벽을 함께 올라서 소녀가 수집한 갖가지 신기한 메아리를 듣고 매료된 소년은 단번에 소녀와 친해진다.

버스가 시네고리야의 경계인 목조다리를 지날 때 다급해진 비티카는 말 대신 동전을 꺼내 던진다. 그곳에 동전을 던지면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믿으며 세료자는 자기도 떠날 때 동전을 던져 비티카와 만날 것을 기대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인지 한 달 후 그곳을 떠날 때 소년은 동전던지기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백발 급구>(1968) 줄거리 일부

한 중년 남자가 페테르부르크의 유명한 영화제작사 렌필름(Lenfilm) 건물 입구에 서 있다. 마침 게시판에 나붙은 <백발 급구> 벽보를 본 그는 놀라 아찔해진다. 자기의 강철빛 백발도 그렇지만 언뜻 오슈비엥침(폴란드 명 Oshpitizin, 아우슈비츠)과 전쟁의 환영들이 연상되어 기분이 나쁘다. 그때 남자의 표정을 옆에서 본 젊은 멋쟁이 여자가 웃음을 터뜨리며 걱정말라고 놀린다. 이 소설의 주인공 두 사람이 우연히 마주치는 첫 장면이다. 남자는 모스크바에서 출장 온 사출 분야 엔지니어로 아내와 딸이 있는 45세의 세르게이 구신이고, 여자는 레닌그라드에 사는 자칭 2류 여배우로 미혼인 나타샤 프로스쿠로바다.

연령만 아니라 외양, 취미까지 판이하게 다른 이 두 남녀를 잇는 화제는 러시아의 과거와 현재가 얽힌 레닌그라드의 건물들이다. 구신은 생활에 찌든 무능한 가장으로 낙인찍힌 가정생활로 자신을 속박하며 살아왔지만 단 하나의 출구가 있었다. 레닌그라드의 모든 빼어난 건물의 역사뿐 아니라 그 건물을 만든 건축가의 화집을 모으고 줄기차게 연구하고 흠모해온 그의 취미는 곧 페테르부르크의 화려한 과거, 그 영광 자체와 맞닿아 있다. 날마다 그 유서 깊은 거리를 지나다니면서도 피상적인 지식밖에 없었던 나타샤는 환호하는 구신에게 저절로 귀를 기울인다. 페테르부르크에서 돌아온 그는 전보다 이상하게 살아갔다. 그가 늘 애지중지하던 아름다운 건물 사진들도 무관심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그것은 더 이상 위안이 되지 않았다. 어디서나 나타샤의 얼굴을 보게 되는 구신은 모든 것을 나타샤를 통해서 바라보게 되었다.

남편의 변화를 눈치 챈 아내는 늘 하는 밤 외출도 접고 집요하게 구신의 삶을 주시한다. 나쁜 감정보다 선한 호기심으로 채워진 듯한 질투의 시선을 받아 내야 하는 구신은 힘에 겨워 나타샤에게 전보를 보낸다.

아직도 백발 구합니까?” 그녀의 대답은 ,,, 급구.” 였다.

구신은 나타샤의 진심을 확인하자 더 강해졌다. 결정을 내리고 나니 얼마나 간단해지던가! 그는 이전의 모든 것, 소지품과 낡은 가방, 책들까지 버리고 집을 나선다. 두 시간만 지나면 나타샤와 함께일 것이고 지참금으로 레닌그라드 전체를 받을 생각을 하면서. 

2023년도 읽기 교재와 저자

32<두 여자 사랑하기> 빌헬름 게나찌노

46<시장과 전장> 박경리

54<조이 럭 클럽> 에이미 탄

61<추락> 존 쿳시

76<()> 히가시야마 아키라

83<프랑스적인 삶> 장 폴 뒤부아

97<모순> 양귀자

105<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곰이 산을 넘어오다> 엘리스 먼로

112<인생> 위화

127<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1, 2> 이민진 또는 <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정진희   23-02-08 17:50
    
수업 복습을 확실하게 시켜주시는
전효택교수님..고맙습니다.
소설가이며 에세이스트, 평론가, 시나리오작가였던
만능 창작인에다 출중한 외모에 여섯번이나 결혼한 전력까지~
이야기 거리가 풍성한 작가 유리 나기빈의 삶과 문학세계,
그의 작품들을 공부한 시간이었습니다.
새로오신 이진성선생님~ 반갑고요..
커피타임까지 수업후기를 함께 해주시는 고경숙선생님~
인기 짱!이십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3월에 빌헬름 게나찌노로 뵈어요~~^^
주기영   23-02-11 13:15
    
고경숙 선생님,
오랜만에 뵙고 강의도 들었네요.
세세한 자료와 강의 모두 감사했습니다.
<두 여자 사랑하기>도 기대됩니다.

전효택 선생님
꼼꼼 후기, 감사드립니다.
늘 방대한 자료도 제공해 주시고, 이렇게 후기까지 먹여주시네요.  ^^

숙제였던 <메아리>와 <백발급구>에서 멈추려던 눈이
<타인의 심장> 과 <성공의 절정> 까지 갔지요.
메아리에서의 섬세한 묘사에 이끌려서였던 것 같아요.
네 편 모두 새롭게 알게된 나기빈 이란 작가를 엄지척 하게 했습니다.
한국에 번역판이 많이 없다니, 다른 소설들도 번역되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후 출판 되었다는 <일기>는 당시 파장이 어떠했을지 짐작도 되질 않네요.
털어서 먼지 하나 없는 사람은 없을텐데,
이렇게 치밀하게 터뜨리고 사라지면 쫌~~ 무서울 것 같아요. ㅎㅎ.

봄에 뵙지요.
-노란바다 출~렁
봉혜선   23-02-15 09:25
    
자료가 얼마 없어 번역기까지 대셨다는 고경숙 선생님 말씀에 아찔했습니다. 두어 번 숙제처럼 읽고 간 학생 반성합니다. 2번째, 3번째 모습 찍어 올려주는 지니 총무님 고맙습니다.  이같이 컨트럴 C, 컨트럴 V 하는 강의 후기는, 게다가 강의 전기까지 수고해주시는 전효택 선생님 고맙습니다.  고마운 분들이 모인 명작반  고맙습니다.
정진희 고문님. 윤오영 문학상 수상 진심으로 충심으로 마음을 다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