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강의실 >  한국산문마당
  전통적인 플롯 (소설반 23.1.10.)    
글쓴이 : 김성은    23-01-15 19:43    조회 : 2,575

올 겨울 들어 가장 따뜻한 날이었어요. 지난 시간에 이어 다양한 플롯을 공부해 보았습니다.  


전통적인 플롯 : 죽음과 결혼

그러나 대부분의 소설은 여기서 실패한다. 논리가 피와 살에서 지배권을 이양 받으면 이런 비참한 침체가 생긴다. 죽음과 결혼이 없었다면 일반 작가가 어떻게 결론을 맺었을까 싶다. 죽음과 결혼이 인물과 플롯을 연결시켜 주는 유일한 방법이 되어 있고 또 이런 것들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 일어나는 경우 독자들은 이 마지막 부분에서 작가와 만나 이런 일들을 대강 훑어보려고 한다. 가련하게도 작가는 어떻게든 끝맺음을 해야 하고 다른 사람처럼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망치 소리와 나사못 조이는 소리만이 들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일반적으로 말해 이것이 소설의 근본적인 결함이다. 소설은 끝에 가서 짜임새 없이 무너진다.(포스터)

: 죽음이라는 것이야말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시작 중간 결말에서 결말에 가장 잘 어울린다. 앞에는 뭐가 있지만 그 뒤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이다. 옛날이야기들에서는 어떤 사람이 어떤 역경을 헤치고 사랑하는 사람과 혹은 아니면 전리품처럼 여자를 얻어가지고 결혼을 했다. 그래서 둘이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 이게 가장 일반적이고 가장 보편적인 건데 결혼이라는 게 결국엔 뒤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되게 의미심장하다. 결혼이 하나의 죽음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혼하기까지만이 모험이 가능한 시기인 거고 결혼하고 나면 모험이 사라져버리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특히나 여성한테는 결혼은 무덤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죽음과 결혼이라는 것은 뒤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전통적인 플롯이다. 

여기에 인용은 안 했지만 출산으로 끝나는 플롯도 있다. 20세기에 새로 등장한다. 누군가 죽거나 결혼하거나 그런 식으로 끝나지 않고 그들 사이에서 어떤 새로운 생명 후대 그러니까 어떤 영속성을 상징하기 위해서 아이가 태어나는 것으로 끝나는 소설들이 등장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존 스타인백의 <분노의 포도>이다. 전통적인 플롯을 약간 변형시켰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단순히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 아니고 거기에 후대들이 태어남으로써 어떤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 죽음이야말로 완벽한 마무리가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의미 이런 게 이제 덧붙여졌다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21세기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그건 역시 하나의 전통적인 플롯이 되었다고 할 만큼 낯익고 또 어떤 면에서는 진부해진 플롯이라고 할 수 있다.


죽음이 이야기꾼에게 그가 이야기하는 모든 것을 비준한다.(발터 벤야민)

: 다른 관점에서 얘기를 하자면 이 플롯이 오랜 세월 동안 전해져 내려오고 반복해서 사용된 까닭은 그것이 실제 인간의 삶을 규정하고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가장 어떤 핵심적인 문제였기 때문이다. 플롯이라는 것도 시대마다 조금씩 달라질 수밖에 없는 까닭이 그 시대 사람들의 어떤 삶의 양상들, 그 시대 사람들의 세계관,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보는가의 관점들 이런 것들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