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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울음터는 안녕하신가(20230117 평론반 강의 후기)    
글쓴이 : 김숙    23-01-17 19:03    조회 : 2,818

설날을 앞두고 설레는 맘들이 모였다. 오늘 진행은 2가지 합평으로 중국문학기행은 쉬었다. 신작 합평작은 7(월평 1. 저자와 함께 1, 신작 5)이었다. 제출작가는 박옥희/이기식/신현순/민용희/민경숙/김숙/정아였다.

한국산문 1월호 합평은 5으로 신현순/곽미옥/ 신선숙/ 설영신/ 임길순 작가가 발제하였다. 선정된 작품은 최화경, 나비 목걸이. 김정희, 반려伴侶와 반려返戾, 신영애, 무량사에 들다. 한카타리나, . 안병용쉴 때 뭐하요?로 열띤 토의가 이루어졌다. 

오늘의 압권은 산문로散文路에서에 수록된 임헌영 교수님의 통곡의 철학이었다. 의례적인 수업만으로 끝날뻔했는데 신현순 작가의 긴급동의 같은 발언으로 공감의 시간을 가졌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작가님의 울음터는 안녕하신지 여쭈며 다시 함께 일독하고자 한다.

통곡의 철학

임헌영

 속이 뒤틀려서 한바탕 목 놓아 통곡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도 그걸 참느라 끙끙댈 때가 적지 않다. 누군들 호모 돌로리스Homo Doloris의 존재가 아닌가. 그럴 때면 나는 직업인 문학평론가답게 명문 속에 나타난 통곡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찾곤 하는데, 그중 으뜸이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도강록이다.

“78일 갑신일. 날이 맑았다로 서두를 떼고는 삼류하三流河를 건너 냉정冷井에서 아침 식사 하고 길을 떠난 일행은 보이지도 않는 백탑白塔이 가깝다는 예고를 들으며 산기슭을 돌자 광야가 시선을 확 터주는 데서 그는 이마에 손을 대고 한바탕 울 자리로구나!(號哭場 可以哭矣)”라고 선언하며 통곡의 인체생리학을 이렇게 풀어준다.

옛날부터 영웅은 잘 울고 미인은 눈물이 많다지만 불과 두어 줄기 소리 없는 눈물이 옷깃을 적실뿐이요, 아직까지 그 울음소리가 쇠나 돌에서 짜나온 듯하고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찰 만한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거든! 사람들은 다만 안다는 것이 칠정 가운데 슬픈 감정만이 울음을 자아내는 줄만 알았지, 칠정이 모두 울음을 자아내는 줄은 모르고 있다네. 까짓것 기쁘면 울 수 있고, 까짓것 골이 나면 울 수 있고, 까짓것 즐거우면 울 수 있고, 까짓것 사랑하면 울 수 있고, 까짓것 미우면 울 수 있고, 까짓것 하고 싶으면 울 수 있으니, 맺힌 감정을 한번 활짝 푸는 데는 소리쳐 우는 것처럼 더 빠른 방법이 없네. (千古英雄善 泣 美人多淚 然不過數行無聲 眼水轉落襟前 未聞聲滿天地 若出金石. 人但知七情之中 惟哀發哭 不知七情 都可以哭. 喜極則可以哭矣 怒極則可以哭矣 樂極則可以哭矣 愛極則可以哭矣 惡極則可以哭矣 欲極則可以哭矣 宣暢壹鬱, 莫疾於聲.)

 예로부터 철인이나 의사들이 웃음은 만복의 근원이라며 건강증진에 최고의 보약이라고들 꼬드기지만 그건 인간의 복합구조적인 심층심리를 꿰뚫지 못한 게 아닐까 한다. 웃음에 뒤지지 않게 울음 역시 트라우마의 명치유법임을 필시 연암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어찌 영웅과 미녀에게만 울 권리를 양도할 수 있겠는가! 나도 살아오면서 통곡하고 싶었을 때가 있었으나 여태껏 한 번도 그러질 못했다. 통곡을 목소리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다리와 팔로는 땅을 벌주듯이 쿵쾅 짓밟으며 하늘을 저주하듯이 허공을 향해 성난 주먹을 휘두르고 온 몸통은 늙은 소나무처럼 뒤틀어대며, 얼굴에는 오욕칠정五慾七情을 한껏 발산시켜 발광하듯이 천둥 치고 지진이 일듯이 사자와 호랑이처럼 포효하는 게 통곡의 종합예술일 터이다.

그러나 아무리 헌법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내 집에서 벽에 못 하나만 박아도 항의를 받는 처지라 대체 어디서 그런 발광을 맘 놓고 할 수 있겠는가!

이런저런 잡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연암이 어찌 내 마음을 미리 알았던지 그렇게 통곡하기 좋은 장소를 삼빡하게 추천해준다.

이렇게 곡할만한 장소로는 비로봉 꼭대기에서 동해바다를 굽어보는 곳에 한바탕 통곡할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요, 장연의 금모래톱에 가서 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요, 오늘 요동벌에 다다라 이로부터 산해관까지 12백여 리 어간은 사면에 한 점 산도 볼 수 없고 하늘가와 땅 끝은 풀로 붙인 듯, 한 줄로 기운 듯 비바람 천만 년이 이 속에서 창망할 뿐이니, 또 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야.”

(박지원, 리상호 옮김, 열하일기, 보리, 2004, 110-112, 원문은 572).

딱히 요동벌인지 만주벌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통곡을 하고팠던 한 사나이가 또 있었다.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광야)고 절규한 건 이육사.

내가 세계 여행 중 발견한 통곡하기 좋은 벌판은 한두 곳이 아니다. 그중 러시아의 드넓은 밀밭 들판은 그냥 차를 세워두고 한나절 머무르며 발광하고 싶을 정도였다.

어디 벌판뿐이랴.

융프라우의 설경이 주는 적막에 하염없이 황홀경에 빠졌다가 불현듯 연암과 육사가 떠올랐다. 나에게 무한한 권력이 있다면 그 산정을 텅텅 비우게 한 뒤 혼자 남아 내 통곡소리에 눈사태가 일어날 정도로 목 놓아 소리 지르고 싶어졌다. 연암이나 육사의 혼령이라도 온다면 내 비록 가난하지만 그곳에 갈 여비는 대줄 용의가 있다.

눈밭이라면 그 기개나 규모가 확 떨어지긴 하지만 박목월의 이별의 노래도 한몫한다.

고교 시절 내 애창곡이었던 이 노래 중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 촛불을 밝혀 두고 홀로 울리라 / 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라는 대목에 필이 꽂혀 눈 내린 밤에 몰래 뒷산 골짜기로 찾아가 한바탕 울려고 접어들자 겁이 나서 살그머니 잠자리로 되돌아갔던 부끄러운 사연이 숨겨진 대목이다.

통곡의 장소가 어디 그곳뿐이랴!

모하비 사막도 추천할 만하다. 더 광활한 사막이 많지만 나는 모래밭이라고는 고작 그곳밖에 못 봤다.

이렇게 쓰고 보니 언제부터 나 같은 초라한 존재가 기껏 우는 데 뭐가 그리 호들갑 떨며 멋진 곳만 거론하는 눈꼴 시린 족속으로 타락했느냐는 분노의 통곡이 내 귓전을 방망이질한다. 애간장을 태우며 창자가 끊어지듯 분노와 울분과 슬픔으로 당장이라도 울음판을 벌여야 할 판인데 언제 통곡의 자리를 찾아가느냐는 꾸짖음이 쏟아지는 듯하다.

그래, 당장 내 슬픔이나 분노와는 비교도 안 되는 어머니가 떠올랐다. 어머니가 나 몰래 아내에게만 했던 곡절은 , 내가 서러버서 울고 싶을 때 어얬는지 아나? 밤중에 외양깐으로 가 소 목을 끌어안고 울었데이. 그라믄 소도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그 대가리로 내 뺨때기를 막 문질러 준데이.”

아내가 이 사연을 내게 전해주면서 자신의 통곡의 비밀 아지트도 밝혔다.

내가 억울하고 서러울 땐 어떻게 한 줄 아세요? 몰래 화장실에서 물 틀어놓고 엉엉 울곤 했어요.”

, 내 글 나부랭이가 이런 사정도 모르고 엉뚱하게 남의 다리만 긁어댔구나!


곽미옥   23-01-17 19:48
    
김숙 선생님~ 후기 쓰시느라 수고하셨어요.저도 교수님의 <통곡의 철학> 을 읽으며 어디 가 실컷 울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그냥..아파서..서러워서.. 누군들 한이 없을까요?  다시 또 읽으니 오늘 수업의 잔상이 떠올라
마음이 아프네요.  몰래 담 밑으로라도 숨어들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김숙   23-01-17 20:10
    
맞아요. 총무님
댓글 주셔서 고맙습니다. 울고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라구요? 근데 막상 울려고하면 무엇에 지는 것 같고, 참아야할 것 같죠. 사실 울 용기가 없는지도 모르겠고요.  근데 교수님의 글을 읽고 울 일이 있으면 맘놓고 울어라고 하신 것 같아 속이 다 후련했습니다. ㅎㅎ 울어봐야 그 끝에 웃음이 있다는 것도 알 것 같고요. 감사합니다.^^
     
신현순   23-01-18 12:41
    
미옥샘~ 울고 싶을 때 우는 건 웃는 것과 같은 효과라니 우는 걸 참지 말아도 될 것 같아요.
울음의 미학을 배운 거 같아요. 울고 싶을 때 울어 보기로 해요~
김숙   23-01-17 20:05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자기 교수님 글 전문을 올렸다고 누가 항의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독하고나면 그 맘이 사라지지 않을까. 이런 글을 요약 정리한다는 것도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아 제가 좋아서 다 올렸습니다.
그리고 제 울음터도 한번 챙겨볼 요량입니다.
감사합니다.^^
오정주   23-01-18 00:38
    
부지런한 김숙 선생님, 후기에 올라온 보너스!
    성찬을 차리셨네요.
    울고싶은데 아닌 척하고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은 사부님 글....
    외양간에서... 몰래 화장실에서 수돗물 틀고 울었다는  대목에
    울컥해집니다.  속 시원히 울지 못한 그 슬픔에 완전 공감이 갑니다.
  이 세상엔  정말 슬픔투성이,
    통곡할 일이 참 많기도 합니다.
    모하비 사막에도 못 가고 융프라우도 못 갈때는
    글쓰기로 통곡을 대신해볼까요.   
  많이 많이  속 시원히 써보자고요. 으허으허어부바비부가나다라마바사!
     
신현순   23-01-18 12:30
    
이래저래 통곡할 장소 제대로 찾지 못할 땐 글쓰기로 대신!
반장님 아이디어 굿굿요~
     
김숙   23-01-27 20:48
    
ㅎㅎ 설 쇠느라고 이 방에 통 못들어왔는데 저 모르게 많은 소통이 있으셨네요.
맞아요. 반장님. 우리 " 모하비 사막에도 못 가고 융프라우도 못 갈때는 글쓰기로 통곡을 대신해"봐요.
감사합니다.^^
박진희   23-01-18 11:37
    
임헌영 교수님의 어머님이 '소와 함께 흘린 눈물'에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소가 통곡하는 주인을 위로하는 모습이 상상이 되어 울지 않고는 견딜 수 없네요 ㅠㅠ
남이 알아차리지 않게 성급히 울어버릴 장소가 화장실이라는 것에 공감하구요.
'통곡의 자리'로 스케일이 크거나 작거나 간에 스승님의 솔직한 가르침과 수필이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신현순   23-01-18 12:21
    
진희샘~ 반가워요~~
저는 외양간 대목에서 멈춰서 눈물 바람을 하고 다음을 읽게 되더라구요.
수도물 틀어 놓고 울었던 적은 좀 있지 않나요?
저는 그런 적 있어요. 억울하고 분하고 서러울 때 나만의 울음 장소... ㅎㅎ
교수님 글이기도 하고 너무 감동적이라 긴급 제의해서 언급했는데
끝나고 나서 다른 선생들은 불편하지 않으셨는지 살짝 염려됐어요.
공감 해 주셔서 고마워요 진희샘^^
     
김숙   23-01-27 20:59
    
<통곡의 철학>을 저까지 올려서 선생님을 다시 울게 했나봐요.
통곡의 장소를, 기회를 못 찾아서 남 몰래 흘린 눈물도 많죠. 화장실도 공감되구요.
더 꼼꼼한 장소로 외양간은 참 기가 막히죠?
언제나 좋은 의견 주시고 공감해 주시는 진희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신현순   23-01-18 12:10
    
김숙 선생님 덕분에 임교수님의 글을 다시 보네요.
산을 비워 놓고 산사태가 날 정도로 통곡을 하고 싶은 장면과
외양간에서 소 목를 잡고 서러움을 토해내는 어머니의 울음이 대조적이라 더 감동으로 다가온 것 같아요.
거기다 소까지 머리로 어머니의 뺨을 문질러 주는 장면은 정말 감동의 압권이었요.
어쩌면 소는 어머니의 설움을 다 알고 있기라도 하듯...
감동을 다시 전해주셔서 감사해요.
후기 쓰느라 수고하셨어요~
설 명절 잘 보내세요~~
     
김숙   23-01-27 20:51
    
선생님이 주신 후기가 압권입니다. 저는 감히 어떻게 말 해야할지 엄두가 안 나서 ㅎㅎ
그냥 한 번 더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울 일 있으면 교수님의 이 글만 생각해도 웬만큼 풀릴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문영일   23-01-18 14:03
    
뭐 하나만 여쭈어 봅시다. 통곡,이 원문을 어떻게  옮기셨나요?
어디 원문 파일이 있으신지?  이 긴 글을 재 타자  하지는 않으셨을테고...
컴을 찰 몰라서요.

 "눈물 젔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과는 상종을 마라."라는 말을 들었던거 같이요.
웃음은  머리를  씼어 주지만, 통곡은 가슴을 씼어주는  게 아닌지..지금 막 그런 생각이 드네요.
淑 선생님,  수고하셨어요.
     
김숙   23-01-27 20:54
    
선생님, 원문은요. 가끔 제가 월평 쓸 때 이해가 잘 안 되면 전문을 필사하는 것처럼 컴퓨터에 옮겨 쳐 봅니다. 그럼 훨씬 빨리, 잘, ㅎㅎ 이해될 때가 있어요. 이 글 옮긴 방법은 기회되면 개인적으로 알려드릴게요.
수고하셨다고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