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1)>
두 번에 걸쳐 다루기로 한 정지아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첫 번째 강의록 제목은 <조문객으로 엮은 시트콤 현대사>입니다. 소설의 주제를 담고 있는 압도적인 첫 문장을 중심으로 소설의 공간적, 시간적 배경과 소설속 내용이 어떻게 구성되고 전개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분석은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가장 인상적인 장면 한 대목씩 말하면서 마무리 했습니다.
지난해 가을 출간된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지금껏 베스트셀러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텐데요, 빨치산 출신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을 맞닥뜨린 주인공 고아리 화자가 아버지 장례식을 치르며 삼 일 동안 겪고 느끼는 이야기가 무겁지 않게 때론 해학적으로 펼쳐집니다. 장편소설이지만 책을 펼쳐드는 순간 끝까지 몰입해서 읽게 할 만큼 흡입력이 대단한 소설 같습니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소설 첫 문장에서 까뮈의 <이방인> 첫 문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가 떠오릅니다. 13쪽에서 주인공이 고등학생일 때 <이방인>을 읽고 있던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교수님께서 이야기 전체를 이끌어가는 ’계기적 사건‘으로 갖는 첫 문장의 예로서 두 작품을 비교 분석해주셨습니다.
죽음으로 무겁게 다가올 것 같은 소설이 전봇대에 아버지를 투영함으로써 유머스럽게 시작합니다. 해방 전후 지리산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빨치산 출신 아버지로 인해 가족과 친지들이 겪는 비극적 삶이 상상이 안 될 정도로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젊은 날 사 년간 빨치산으로 활동했지만 그 후 아버지는 고향 구례에서 가난한 농부로 평범하게 삶을 일구어 나갑니다. 주인공이 어렸을 때 딸 바보였던 아버지가 감옥에 재수감된 이후 아버지와의 관계가 멀어진 듯 보입니다. 빨치산의 딸로서 아버지를 많이 원망도 했을 법 하지요. 그건 어쩌면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할 몫인데 살아가며 감당하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장례식 조문객으로 등장하는 아버지와 관련된 다양한 인물들을 통하여 아리는 아버지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마침내 빨치산이 아닌 내 아버지로 받아들입니다.
플라톤의 <파이돈>에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을 앞둔 소크라테스가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대목이 있는데요, 제자들이 스승의 죽음을 몹시 안타까워하는 가운데 소크라테스는 오히려 죽음은 몸으로부터 영혼이 풀려나고 분리되어 해방되는 것으로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육체는 죽어 없어지지만 영혼은 불멸하다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믿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뼛속까지 유물론자인 아버지의 죽음 앞에 “죽음이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것”(198쪽)이라고 작가도 말합니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라고 니체가 말했던 기억도 납니다. 삶과 죽음 앞에 하고픈 이야기들이 갑자기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세상을 살아왔다는 방증일까요.
이십년 전 겨울 거짓말처럼 갑자기 떠나버린 제 아버지도 내내 생각나 마음 아팠지만 흐르는 세월 속에 조금씩 옅어지고 흐려져 다시 이 세상을 살아갈 힘을 한 권의 책속에서 얻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