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중국 문학기행의 대장정을 계속하였습니다. 오늘은 우선. '신유학'이라는 용어가 생소했습니다. 중국을 지배했던 오랜 전통의 통치철학인 유학은, 왕의 부패와 권력남용이 점점 심해지면서 민중들은 유교를 외면하며 도교와 불교에 더 관심을 두는 형국에 이르렀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학문이라도 지배의 이데올로기가 되려면 끊임없이 반성하고 깊이를 더해가야 하는데 한과 당은 이를 소홀히 한 것입니다. 바로 신유학이 탄생하게 된 배경입니다.
28강. 송의 신유학 사상
1. 유학에서 신유학으로
유학(儒學)은 춘추전국시대의 공자-맹자-순자로 이어진 사상이 역사적인 발전 과정에 따라 변천해 온 중국 지배계급의 통치철학에 대한 통칭이다.
유학 형성 이전의 중국 고대사에서 귀족이나 유식자를 선비로 통칭하면서 그들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6덕(六德. 智, 信, 诚, 仁, 义, 忠), 6행(六行. 孝, 友, 睦(9족간의 화목), 姻(인척 간의 화목), 任(친구 간의 화목), 恤(가난한 사람들을 긍휼히), 6예(六艺. 礼, 乐, 射, 御, 书, 数)라는 교양과 처세 통치술을 익히는 게 인생의 가치관으로 굳어졌다。6덕과 6행은 지도자의 통치철학이라면 6예는 통치계급이 지켜야할 음악, 말 타기, 말 몰기, 수학 등 통치계급이 지켜야할 예다.
이런 전통문화의 바탕에서 춘추시대 말기의 공자와, 전국시대의 맹자와 순자를 잇는 사상체계를 국가 통치의 근본이념으로 자리 잡힌 건 전한(前汉, 기원전 202~기원후 8)의 무제 때였다. 이로써 중국대륙에서는 어떤 나라나 왕조가 들어서든 유학이 통치이념의 기본으로 굳어져버려 서양사에서 기독교와 비슷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유학자인 동중서(董仲舒, 기원전176년?~104)는 무제의 총애 아래 교육을 통하여 유학을 통치이데올로기로 확립시켰는데, 그의 사상적 핵심은 음양오행설을 공맹사상에 접합시켜 천인감응(天人感应; 왕의 권리는 신으로 부터 온다.)과 군권신수(君权神授; 하늘과 인간은 함께 느낀다.)를 주장한 것이다. 이런 사상이 국가공권력과 결탁하면서 막강해진 유학은 재야사상이었던 노장이나 불교사상의 만연에도 불구하고 지배계급의 신분 수호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한 시대의 학문과 사상은 그 시대의 상황을 담아낸다. 당나라는 민중들 사이에 도교와 불교가 성행하였음에도 이를 비판하고 유교를 숭앙하며 유학으로 제국을 형성했으나 부패와 타락으로 일대 혼란기를 맞는다. 당 제국은 비록 관료제도는 유학적인 기풍을 따랐으나 유학에 대한 신뢰와 권위가 추락하는 틈새로 도교와 불교사상이 널리 퍼졌다. 따라서 그 뒤를 이은 이미 민심은 도교와 불교사상이 성행하여 황실에 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러나 당 제국 역시 부패와 타락으로 혼란기를 맞아 중화민족이 아닌 다른 민족이 강성해짐으로써 소멸, 그 혼란과 위기 속에서 출현한 송나라는 계속 침탈의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이런 정치사회적인 위기 속에서 도교나 불교적인 신앙만으로는 국가의 기틀이나 외세 침탈 위협에 대처할만한 한족 주체의 사상적인 기반을 다질 수 없었다. 이런 시대적인 절박성이 낳은 것이 바로 신유학이었다.
전통적인 유학에다 형이상학적인 사유를 도입하여 성리학의 초석을 다진 이 사상은 그 이전의 유학과는 사뭇 다른 일대 혁명적인 사상이었다. 전통유학이 지배계층의 인격도야와 덕치에 초점을 맞췄던 유학을 인간존재의 근원부터 우주와 세계 운행 질서로까지 탐구의 지평을 확대하게 된 배경에는 이런 시대적인 변화가 작용했던 것이다.
2. 주돈이의 우주론과 인간론
유학사에서 형이상학적인 사유를 도입하여 일대 혁신을 일으킨 주돈이(周敦頤1017~1073)는 성리학의 초석을 다졌다. 그는 외삼촌의 주선으로 지방의 그리 높지 않은 공직을 얻어 몇몇 지역으로 옮겨가며 성실하게 민의를 보살펴서 나름대로의 명성을 얻었다. 이렇게 지방 근무 중 정향(程珦)이란 관리가 주돈이에게 자기의 두 아들 (정호, 정이)의 스승이 되어 달라고 해서 그의 가르침으로 두 형제 신유학자가 나왔다.
주돈이의 인간됨을 나타낸 명문 <애련설(爱莲说, On the Love of the Lotus)>중에서
予獨愛蓮之出於泥而不染(여독애련지출어니이불염), 나는 유독 연꽃이 진흙에서 나왔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But I especially love the lotus, for it rises from the mud unstained),
濯淸漣而不妖, 中通外直(탁청련이불요 중통외직), 맑고 잔잔한 물에 씻으나 요염하지 않으며, 줄기의 속은 비고 겉은 곧으며(cleansed in rippling water, appealing, yet not seductive, the center of the stem is unobstructed and clear, outside, it is straight, not tendrilled nor branched),
不蔓不枝, 香遠益淸(불만불지 향원익청), 넝쿨도 뻗지 않고 가지도 치지 않아도 향기는 멀리 갈수록 더욱 맑아지며(Symmetrically perfect, its subtle perfume iswafted far and wide),
亭亭淸植, 可遠觀而不可褻玩焉(정정청식 가원관이불가설완언), 꼿꼿이 깨끗하게 서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어도 가까이서 만만하게 다룰 수 없음을 사랑하노라 (while there it rests in spotless state, something to be regarded reverently from a distance, and not be profaned by familiar approach).
3. 장재와 정호 정이 형제
신유학파의 후예 중에 중심인물인 장재는 기본론을 주장한 중국 유물론의 맥을 이뤘다. 빈 속에 얼이 즉, 기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반해 주돈이의 제자이자 장제의 인척인 정호, 정이가 창출한 명제는 '천리'론이다. 천리란 기(유물론)가 아닌 이(유심론)를 우주 삼라만상의 운행의 원칙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이 천리는 비단 자연계 뿐만 아니라 사회지배의 최고원리로 윤리도덕의 기준이 된다. 이것은 현대적인 술어로는 관념론의 초석이 된다.
합평: 김유/ 문영일/ 이영옥/ 문영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