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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의 유형_안티 히어로 (소설반 22.11.1)    
글쓴이 : 김성은    22-11-03 09:08    조회 : 1,924

경북일보 청송객주문학대전 단편소설 부문에서 장려상을 수상하신 서영지 선생님이 맛있는 떡을 돌리셨습니다. 다들 부러움과 축하를 보냈는데요. 이렇게 좋은 기운을 나눠주시니 앞으로 한국산문 소설반에 좋은 일이 많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8주차 강의는 소설의 인물에 관하여 더욱 깊고 세심하게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독자의 태도에 따른 인물의 유형>

가. 긍정적 인물

나. 중립적 인물

다. 부정적 인물

반도는 범죄자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비록 사회가 반도들에게 종종 범죄자의 낙인을 찍더라도, 비록 범죄자가 자기 행위를 고상하게 하기 위하여 때때로 반도를 사칭하더라도. 반도는 홀로 서 있다. 그의 반대와 거부의 목표인 공동체의 가장 충실한 아들. 반도에게 투쟁의 대상은 다만 악마적인 악을 통하여 혼란스럽게 되어 버린, 생생한 전체 관계이다. 그 혼란을 수습하고 자신의 보다 나은 계획에 따라 정렬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 된다. 

(헤르만 브로흐 『몽유병자들』에서)

: 반도와 범죄자로 혼동하지 말라는 뜻은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인물인데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인물일 수 있다는 걸 강조한 거라고 할 수 있다. 저 가나다 분류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분류를 하면 이렇게 볼 수 있다. 독자로 하여금 긍정적인 인물처럼 여겨지게 하는데 최종적으로는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인물이 있을 수 있고,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중립적이라고 여겨졌는데 나중에는 중립적이지 않은 인물로 여겨질 수도 있고, 그다음에 부정적으로 여겨졌는데 최종적으로는 긍정적으로 여겨지는 인물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일관되게 긍정적 중립적 부정적인 인물도 있을 수 있으나 처음에는 우리가 그 인물을 긍정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반대의 의미를 띤 인물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가 생각해 볼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긍정적으로 여겨졌는데 최종적으로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인물은 풍자적인 소설에 많이 등장한다. 중립적인 데 중립적이지 않은 인물로 밝혀지는 경우는 화자의 속성과 연결 지어서 생각하면 더 편하다. 화자 자체가 인물일 수도 있는데 이 인물이 중립적으로 무언가를 제시한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그 화자가 어떤 의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느낄 수 있다. 현대소설에서는 대체로 이런 특징을 지닌다.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진짜 말 그대로 중립적인 화자는 의미가 없다.

이 분류에서 가장 문제적인 건 사실은 부정적인데 긍정적인 인물로 느껴지게끔 그 인물을 형상화하는 것인데 이게 사실은 가장 쉽지 않다. 영어로 하면 안티 히어로이고 국내 소설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니다. 부정적인데 긍정적으로 여겨지는 인물을 ‘반영웅’이라고 한다. 서구의 문학에서 예를 들자면 전형적으로 이런 작품들이다. 초기 소설들 생각해 보자. 돈키호테 이후 스페인에서 악당소설(피카레스크소설)이 여러 나라에 파급되었다. 스페인어권인 남미의 칠레나 아르헨티나에서는 가우초 문학이 이 영향을 받은 것이다.

영웅과는 반대되는 속성을 지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게 최종적으로는 영웅적인 속성인 것으로 판명할 수 있는 그런 캐릭터인데 이게 우리 문학 전통에는 사실 거의 없다고 본다. 우리 문학적 전통에서 안티 히어로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들은 최종적으로는 제도 안에 포섭이 된다. 그러니까 기성의 어떤 제도나 관념에 무릎을 꿇는다. 

반면 프랑스의 작가 장 주네의 [도둑 일기] 같은 대표적인 안티 히어로 소설을 보면 주인공은 사회에서 터부시되는 동성애자이기도 하고 도둑놈으로 살았고 온갖 자잘한 범죄들을 다 저지르면서 산다. 그런데 소설의 인물들은 최종적으로 제도에 무릎을 꿇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라는 악당(악한)이라는 존재가 그 자체로서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미덕으로서 인정받기를 원하지 이 사회에 어떤 인정을 받거나 이 사회에서 공인을 받거나 그런 식의 요구를 보이지 않는다. 이런 악당들은 무릎을 꿇지 않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소멸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

서구의 문학에서 안티 히어로가 어떤 캐릭터로서 오랜 세월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고 또 그러면서 자기만의 독특한 특성을 지니게 됐다. 그 이유는 바로 절대로 그들은 기성의 관념들이나 가치관들에 투신함으로써 자신을 인정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멸망하고 소멸된다 하더라도 자신이 지고 있는 미덕을 보존함으로써 자신의 긍정적인 캐릭터로 최종적으로 여겨지게 한다는 점이다. 그게 서구 문학에서의 안티 히어로와 우리 문학에서도 굳이 말하자면 안티 히어로가 없지는 않으나 그들의 어떤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안티 히어로라는 것도 실제로는 반세계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사회가 갖고 있는 모순 같은 것들을 더 분명하게 제시함으로써 독자한테 그것들을 깨닫게 해주는 거라면 결과적으로는 긍정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본다면 진짜 말 그대로의 순수한 반사회적인 인물 순수한 안티 히어로는 존재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부정적으로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긍정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그런 인물들이 한국 문학에서 어떤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지도 못하고 하나의 어떤 경향으로 자리를 잡지도 못했다는 뜻은 뭐냐면, 여전히 개척할 어떤 캐릭터들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우리 소설에 아직 여전히 미답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캐릭터 중에 하나이기에 그런 캐릭터들을 성공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면 아마도 아주 뜻 깊은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