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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0 년간의 대 혼란기, 사상사의 황금시대- 춘추전국시대 (평론반)    
글쓴이 : 신현순    22-09-14 11:29    조회 : 2,897

 가족과 친지들을 위해 분주한 추석명절을 보냈을 문우들은 오늘도 어김없이 밝은 모습으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오늘 수업은 500년간의 혼란을 겪은 춘추전국시대의 개관과, 강력한 춘추 5(), 역사서, 병법을 살펴보았습니다.

 제  7강 춘추전국시대 역사기행


 1. 개관

춘추전국시대(春秋战国, 기원전 770~기원전 221)란 중국 고대사의 대혼란기이자 사상사의 황금시대로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통틀어 지칭한다. 춘추시대가 140여개국으로 나뉘어졌다면 전국시대는 패권과 전쟁으로 10여개국으로 줄어들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혼란의 시대였음을 알 수 있다.

 천하의 패자가 되기 위해 치열한 전쟁과 통치를 위한 권모술수가 횡행하면서 제자백가사상을 비롯한 뛰어난 학자들이 난립하면서 백성들은 고통에 찼으나 역사는 찬연했던 때가 춘추전국시대였다. 고대사상사의 황금시대로 각종 사상과 철학이 성행했고 이에 따라 문학 역시 다채로워졌으며, 특히 전략가들이 속출하여 세계 전쟁사에서 가장 뛰어난 전쟁론이 등장한 시대였다. 이후 중국역사는 제자백가의 학문에 이은 각주에 불과하다 할 수 있을 정도다.

 춘추시대는 패자(覇者)의 회맹(會盟)의 질서가 지배하던 시대였고, 외교가 최고조에 달했던 달했던 시대였으며 전쟁은 평야에 진을 치고 전개하는 전차전이 중심이었다.

 주나라의 권위가 무너진 자리에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패자가 등장해 중원의 정치를 좌우했는데 이 시대를 지배했던 다섯 사람의 유명한 춘추 5가 있다.


2. 춘추 5

1) 제나라 환(齐桓公, 기원전720?~기원전643, 재위 기원전685~기원전643)

 제나라는 태공망(太公望, 姜太公)이 세운 나라로 현 산동반도 일대를 차지하여 소금과 철 생산량이 풍부한 강국이었다. 제의 독재자 양공이 암살당하고 그 암살자도 암살되자 두 남동생 규와 소백은 경쟁자로 대립, 암투에서 동생 소백이 승리하여 제환공이 된다. 가까이에 있던 규의 참모 관중은 제나라로의 귀로에 미리 매복하여 귀국할 소백을 암살할 계획으로 천천히 귀국할 작전이었으나 이를 꿰뚫은 포숙은 소백이 화살을 맞고 죽은 척 위장하여 관에 담아 바로 입성하여 왕권을 차지하였다. 규는 자살하고 관중은 처형 위기에 처하게 되었으나 제환공의 참모 포숙은 막역한 벗인 적진의 참모 관중(管仲)을 기용토록 한다. 훗날 관중과 포숙의 우정을 두고 관포지교(管鮑之交)라 삶들은 일컬었다.

 2) 진나라 문공(晋文公, 기원전697~기원전628, 재위 기원전636~기원전628)

 진나라는 주 무왕의 3남 당숙우(唐叔虞)가 세운 나라다. 사마천이 사기에서 유전(流轉)공자란 별칭을 부쳤듯이 19년 동안이나 망명으로 고투하다가 집권한 표본이다. 문공의 아버지 헌공(獻公)은 서쪽 만족인 여융국(驪戎國)을 정벌, 거기서 여희(驪姬)와 동생을 데려와 둘 다 첩으로 삼았다. 여희 때문에 진문공은 궁정을 떠나 변방의 진()나라 국경가까이서 방비를 맡는 등 파란만장한 고난의 길을 걸어야 했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을 볼 줄 알았던 문공에게는 언제나 주변에 동지들이 있었으나 가는 나라마다 천대와 괄시를 받는 진문공의 유랑은 계속됐다. 그중 후대한 나라 중 진의 후원으로 혼란했던 모국으로 19년만에 귀국한 진문공은 일대 강국으로 발전시켰다.

 3) 송나라 양공(宋襄公, ?~기원전637 재위 기원전651~기원전637)

 사마천이 사기에서 송양지인(宋襄之仁)’의 주인공으로 소개하며 지나친 어짐과 의로움의분계선을 생각하도록 유도하며 소국이면서 패권을 노린 야심가로 패전을 거듭한다. 강국 초()와의 전쟁에서 초군이 강을 건널 때 공격하라는 목이의 충고를 적의 곤경을 이용하는 건 예가 아니라며 거절, 진영을 갖춘 후에야 전투 개시했으나 대패했고 양공 자신은 다리에 화살을 맞아 나중 그 상처로 죽는다.

 4) 진나라 목공(?~기원전621, 재위 기원전659~기원전 621)

 인재 등용으로 유명하며, 후에 진나라가 춘추전국시대의 난세를 통일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 그가 발탁한 첫 인물은 백리해(百里奚)는 불우하게 여러 나라 전전했으나 천거되지 않았다. 우나라 궁지기 때 우를 침략한 진()의 공주가 진목공과 결혼할 때 그 노비로 가다가 도주, 초나라에 은닉, 초왕의 말치기로 있었는데 이 소식들은 진목공이 검은 암양가죽 5장과 바꿔 70세가 된 백리해를 얻어 국정 참여를 거절하는 그에게 계속 설득, 그의 천거 인사를 등용한다. 또다른 일화는 ()과 전투 때 진목공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구출해 준 무법자 일당들이 구출하여 승전케 한다. 그 일당은 진목공의 명마를 잡아 먹어 처형위기에 있었으나 목공이 짐승 죽인 일로 인명을 해칠 수 없다며 도리어 술 대접, 석방하여 그 은혜에 보답을 받은 것이다.

 5) 초나라 장왕(楚庄王, 莊王, ?~기원전 591, 재위 기원전613~기원전591)

 3년간 불비불명(不飛不鳴), 절영지연(絶纓之宴)이란 술어를 낳게 한 주인공으로 평소에는 그능력을 숨긴 채 기회를 엿보는 숨은 능력자의 자태를 보여준 인물이다. 그는 주색에 빠져 간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포고문을 낸다. 두 충신(伍擧, 蘇從)을 만나게 되어 모든 일을 맡긴다. 당대 요녀 하희(夏姬, 鄭 穆公의 공주)2, 1자를 죽게 만들었고, 1, 2경을 파멸시킨 요부로 유명하다.

 절영지연(絶纓之宴): 왕이 주색을 벌이던 중에 갑자기 불이 꺼지는 틈을 타 한 신하가 왕이 좋아하는 여자에게 접근하자 여자는 갓끈을 잘라 왕에게 귓속 말로 고한다. 이 말을 들은 왕은 불이 켜지기 전에 모든 신하의 갓끈을 자르게 하여 누가 범인인지 모르게 한다. 후에 신하는 초장왕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구해주며 자신이 목숨을 잃을 뻔 했던 그 갓끈의 주인공이라 말한다..

 *이들 5패의 명단에는 오왕 함려(吴王阖闾)와 월왕 구천(越王勾践)을 추가하기도 한다.

 

3. 춘추전국시대의 역사서

 1) 춘추(春秋): 고대중국의 사관은 좌사(左史)는 말을 기록하고 우사(右史)는 사건 기록(했다. 12242년을 다룬 저서.

 2) 국어(国语: )춘추좌전을 내전(內傳), 국어를 외전(外傳)으로 부름. 둘 다 춘추시대의 역사서.

 3) 전국책(战国策, Intrigues of the Warring States): 기원전 77~기원전 6)이 편찬. 전국시대부터 진시황의 천하통일까지 240여 년 동안의 책사(策士), 모사(謀士)들의 활동을 편년체로 구성한 전략서.

 

4. 춘추전국시대의 병법

 1) 사마병법(司馬兵法)

 세계사에서 찬연히 빛나는 중국의 병법은 그 역사가 오래다. 가장 오래된 병서로 사마병법은 인본(人本), 천자지의(천자의 도리), 정작(직위와 직책의 올바른 설정), 엄위(병사의 위치와 임무), 용중(군사 통솔법)으로 구성된 이 저서는 이전지전(以戰止戰)이란 전쟁관으로, 국가 통치는 인으로 근본을 삼는 걸 정도로 보면서, 그것으로 안 되면 권도(전쟁 혹은 무력수단)를 쓴다는 관점이다.

 2) 육도삼략(六韜 三略)

 저술의 발상자인 강태공은 육도삼략(六韜 三略)의 원저자로도 알려져 있다. 군사문제에 치중한 다른 병서와 달리 이 책은 치세(治世)와 인간학을 중시하며 조직학과 정치와 전쟁을 동시에 살피며 인륜을 중시한 게 특징이다.

 3) 울료자병서(尉繚子兵書)

 상앙을 롤모델로 한 이 저서는 장수의 자격으로 주체성(운명 지배 안 받고남의 의견에 지배 안 당하기), 관대(감정 흐름 불가), 청렴 3가지를 거론했다. 장군이 안 될 결함 3가지로는 마음의 평형 결여, 통찰력 결여, 남의 말 안 듣기를 들었.

 

*합평:  유병숙


곽미옥   22-09-14 22:15
    
와우~~ 현순 샘 후기쓰시느라 정말 고생많으셨어요. 고맙습니다. 꾸벅^^
  춘추와 전국시대의 역사강의를 들으며 놀라웠어요. 140여개의 소국으로 나뉘어진 춘추와 10여개국의 전국시
  대로 줄어든 그야말로 거대한 땅 중국의 혼란상을 알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어쩌면 이때부터 중국의 문명 기반을 이룬 시기가 아닌가 생각했어요.
  천혜의 자연을 가진 땅. 중국의 무한한 역사와 문화는 그야말로 경이롭지요.  중국에서 잠시 생활하며 늘 부러
  웠던 국토. 우리가 저땅을  조금만  가져왔더라면~~ 다시 복습 잘했습니다.
     
신현순   22-09-16 09:39
    
"우리가 저 땅을 조금만 가졌더라면..."
미옥샘의 애국심이 엿보이네요~ ㅎㅎ
지금도 많은 소수민족을 이끌어가는 중국을 보면 대국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것 같아요.
춘추전국시대의 5패들의 일화가 흥미로웠어요.
역시 그릇이 달라야 큰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알았으니까요.
미옥샘! 댓글 고마워요~~
임길순   22-09-15 13:54
    
중국 역사에서 춘추전국시대에 푹 빠졌습니다.
백가의 사상가들이 출현하여 각자의 병법과 사상을 펼치고
 역적을(관중) 살려 제상으로 등용토록 한 포숙, 등용되어 이중첩자를 할 수도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봐요) 있었는데 충성을 한 관중, 노나라 땅을(약소국) 돌려주라고 직언까지 했으니 대단하지요.

중국이 자기들을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의 자부심이 밉기는 하지만,  오행으로 중국이 토라고 하네요.
흙은 모든 것을 흡수 한다는 것을 교수님의 오행 강의에서 들었지요.

다음 시간 <<손자병법>> 기다려진답니다.

신현순 샘^^
후기 고마워요.  복습 잘하고 간답니다.
<<손자병법>> 때 만나요.
신현순   22-09-16 09:50
    
포숙과 관중의 우정은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통용되는 '관포지교'라는  용어가 됐으니 두 사람의 관계를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포숙이 관중을 처형하여야 함에도 포용하는 마음의 넓이나 그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에 못지 않게 보답하려는 관중의 마음이 합해서 꽃을 피운 아름다운 결과라 봐야겠지요. 감동의 장면이었어요.

임길순샘! 감사합니다~
오정주   22-09-18 08:06
    
춘추오패, 춘추시대의 5대 강국, 5의 숫자는 오행사상에  의한 것으로
역사적 의미는 없다고 하지만 만물의 운행으로 풀어간 지혜가 돋보이네요.
춘추전국시대는 치열한 전쟁과 통치를 위한 권모술수가 횡행하여 백성은 고통스러웠으나
역사는 찬연했다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관포지교,송양지인, 망양보뢰,절영지연,고침무우, 호가호위, 삼인성호,... 등등
사자성어들을 다시 되새겨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신현순샘의 알찬 후기 덕분에 다시한번 복습 잘했습니다.
감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