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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 체험의 소설화 (소설반)    
글쓴이 : 김성은    22-08-23 08:07    조회 : 3,188

지난주는 수도권 집중호우로 인해 휴강했습니다. 한 주 쉬었을 뿐인데 소설반 선생님들을 보자 오랜만에 만난 사이처럼 무척 반가웠어요. 그만큼 정이 쌓였다는 것이겠지요. 개인 사정으로 못 오신 세 분 빼고 열여덟 분이 출석했습니다. 다들 멋지세요! 열기가 넘치는 소설반 분위기는 좀처럼 식을 줄을 모르네요. 감사합니다.

9주차 강의에는 개인적 체험의 소설화 관점에서 기성작가 작품 몇 편을 두고 작가들의 개인적 체험이 소설이 되었을 때 어떤 과정을 거쳤을 지 살펴보았습니다. 체험이라는 게 어떤 사건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작가가 지니고 있는 모든 것들을 가리킨다고 하면 모든 소설이 작가의 체험과 관련 있다고 얘기할 수 있겠으나, 실질적으로 작가의 체험이 구체적인 소설이 되었는가는 다른 문제라고 하지요. 이런 관점에서 소설을 보자고 하셨습니다.

 

1. 데이비드 밴 『자살의 전설』

나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먼저 그걸 어떻게 말할 것인가 어떤 방식, 어떤 스타일로 말할 것이냐를 생각해봐야 한다. 하나의 연작소설이 있다라면 우리는 내적으로 문체의 일관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소설집에 들어있는 두 편의 소설은 문체가 다르다. 첫 번째 단편 소설인 「어류학」은 서정적이고 자기 고백적 문체라면 두 번째 중편 소설 「수콴섬」은 하드보일드체로 이뤄졌다. 전작은 작가의 감상적인 게 중요했다면 후작은 거리두기가 중요한 정서여서 감정들을 과장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중요했다. 문체가 달랐던 까닭은 작가가 실현하고자 하는 것을 가장 잘 실천할 수 있는 방식들을 고민했던 흔적이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거리두기를 잘했던 작가(헤밍웨이, 코맥 매카시)를 찾아서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이 문체가 각각 다르다는 건 어떤 과정을 소설화하는가를 직접적으로 시사하는 점에서 데이비드 밴의 작품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나와 그들 사이에는 모종의 교감도 있었다. 펄떡이지 않으면 때리지 않을게. 하지만 이따금 배가 정말 험하게 튀면 우린 일제히 허공으로 떠올랐다. 놈들의 피와 점액이 내 온몸을 뒤덮고 그럼 나도 더 힘차게 망치를 휘둘렀다. 지금으로선 부끄럽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다른 핼리벗(대형 넙치)들이 둥그런 갈색 눈에 긴 주둥이를 껌뻑이며 나를 노려보았다.

 : 개인적 체험, 자전적 요소들이 있는 소설들을 보면 작가 자신의 분신이라고 여겨지는 인물이 등장한다. 독자한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도덕적으로 포장하지 않고 그 인물이 가지고 있는 결함이나 약점을 내세우는 스타일이 전형적인 태도다. 습작생이나 서투른 작가의 작품에선 종종 반대의 경우를 본다. 자꾸만 자기 자신을 옹호하고 정당화하고 자기 자신이 실제로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확인하려고 한다. 데이비드 밴의 「어류학」에서 “지금으로선 부끄럽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이 말이 딱 한 번 등장한다. 두 번 세 번 반복이 되면 의도한 것과는 달리 자기변호나 변명으로 독자에게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 손홍규 산문 <사연과 글쓰기> 중에서

사연 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 사연을 글로 풀어내 쓰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러기에 우리가 종종 듣게 되는 말, 내 인생을 소설로 쓰면 대하소설로도 부족하다는 이 말은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유장하고 웅숭깊을 수 있는가를 뜻하지만 삶을 소설로 풀어내기가 생각처럼 여의치 않다는 뜻으로 새겨들을 수도 있다. 누구보다 가슴 절절한 삶을 살아왔는데 글로 풀어내지 못하는 이유도 여러 가지이겠지만 그중 하나는 자신의 사연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온전히 소유해 본 적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내가 느끼는 슬픔, 기쁨, 괴로움, 외로움 등은 나의 것이기에 누구보다 절절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타인의 시선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운 상태에서 나의 감정에 몰두하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위로의 말에 고맙다거나 괜찮다고 대답해줘야 하고 내 감정을 타인이 부담스러워할까 봐 억눌러야 할 때도 있다. 이 모든 감정은 설령 이미 존재했다 해도 시간이 흐른 뒤에야 실감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감정과 감정에 대한 반응에도 시차가 있을 수 있으므로 때로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독한 사람이라는 손가락질을 모른 척해야 할 수도 있다. 우리는 감정이란 사적인 것이기에 박탈당할 수 없다고 간주한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감정을 순수하게 홀로 소유할 수 없다는 것도 그와 똑같이 맞는 말이다.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다. 그리고 그 사연들 가운데 누구의 것이 더 소중하다거나 아름답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연이 반드시 글이 될 필요도 없고 글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사연이 아닌 것도 아니다. 그러나 사연이 있는 것과 사연을 온전히 소유하는 건 조금 다른 문제다. 내가 살아온 이 신산한 삶이 내 것이 아니라면 누구의 것이란 말이냐, 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면 이미 그건 내 삶이 아닌 셈이다.



박진희   22-08-25 10:40
    
지나가다... 김성은 선생님의 글을 잘 읽고 있다고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요. 저는 소설쓰기에 관심이 없지만 어쩜 그리 정성껏 후기를 쓰시는지 끝까지 읽지 않고는 못견디겠더군요^^
소설 vs. 수필쓰기의 색다름과 더불어 공통분모도 발견하고, 유명한 작가들의 정보가 풍성하고, 무엇보다 성은샘의 성의가 가득한 글담에 매번 감탄합니다. 앞으로도 응원합니다!
     
김성은   22-08-27 08:17
    
박진희 선생님, 관심과 응원의 말씀 정말 고맙습니다. 이 아침 기분이 무척 좋네요. 선생님도 즐겁고 행복한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