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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도...사랑이었다 (무역센터반)    
글쓴이 : 주기영    19-09-11 18:29    조회 : 2,539
추석, 중추절, 가배, 가위, 한가위. 
부르는 이름만큼이나 풍성한 명절이 바로 코앞입니다.

어린시절, 추석이면 할아버지께 혼이나곤 했습니다.
미끄덩한 토란이 싫어서 안먹었는데 저를 1차로 혼내신 할아버지는
굳이 바쁜 엄마를 불러 2차로 혼을 내곤 하셨습니다. 애를 편식 시킨다는 이유였지요.
맏며느리인 엄마는 그 잔소리를 고스란히 들으셨지만,한번도 제게 토란을 먹어야 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결혼 후, 달달한 깨들어간 송편을 먹고 싶었는데, 
시어머니는 콩을 잔뜩 넣은 송편을 더 많이 만드셨습니다. 콩이 몸에 좋다는 이유였습니다.
중간에서 대신 나서줄 엄마가 없었으니, 저는 '깨콩깨깨콩깨깨깨콩' 으로, 슬그머니 반항을 하곤 했습니다.

이제 아무도 내게 토란국을, 콩송편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어김없이 '추석'은 오고, 뒤돌아보면 그것도... 사랑이었습니다.

결석이 많았습니다.
누군가는 아픈 가족을 위해 병원으로 향하고,
누구는 만날 수 없는 멀리 있는 가족을 떠올리고,
또 누구는 막히는 고속도로에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또 또 누구는 가족을 떠나 보내고 처음으로 아버지의 부재를 느끼며 명절을 맞습니다.
모든 수고를 기꺼이 함께 하는 것, 아마도 '가족'의 힘이겠지요.
부디 그 힘으로 나흘을 살아내고, 버티신 후, 다음 주에 기쁘게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수업 중 한마디로 대신 합니다.
'노력'으로 안되면 '노오력' 합시다.

1교시 인문학수업, 2교시 글쓰기수업, 3교시 도원점심, 4교시 밀탑 뒷풀이까지 한 덕분에(?)
작년에 졸업한 수업후기를 오랜만에 씁니다.
하루쯤 공부하지 않는다고 설마 입안에 가시가 돋겠습니까. 그저 빨간날들을 즐겁게 지내십시오.

한문장 정리로 간단히!
1교시: 괴테로 시작해 릴케, 니체, 발자크, 카프카, 빅토르 위고, 황진이까지 갔지만, 
         사랑에 관한 박상률선생님의 한마디," 결국은 그 때, 옆에 있는 사람과 결혼하게 된다.", 캬!!
2교시: 짧은 시든, 긴 산문이든 상투적이지 않게 한두문장으로 살려내기가 더 어렵다.
3교시: 오랜만의 도원, 여전히 비싸다.
4교시: 커피중독자인 나도 레몬티를 마신다.

*** 바르게 쓰기
~기에 (표준어) / ~길래 (구어) : 둘 다 허용

*** 합평작품 (존칭생략)
신성범 <캐리비안베이를 다녀오다>
안인순 <높으신 분, 낮으신 분>
한영자B <다행이다>

*** 결석이 많은 날, 공부하기가 재밌다는 누군가의 말씀을 전합니다. ^*^
- 박기숙선생님, 옥화재선생님 건강하게 지내시지요? 추석 명절, 행복하세요~
- 아픔없는 곳에 아버님을 보내 드리고 오랜만에 수업에 나온 신성범선생님, 애쓰셨습니다.
- 이건형선생님, 한영자선생님, 설영신선생님, 나숙자선생님, 
   고옥희쌤, 우경희쌤, 장정옥쌤, 정명순쌤, 이수연쌤, 이지영쌤, 정다운쌤, 다음주에 만나요!

*** 감사합니다
- 오늘도 수고의 손길, 심재분쌤, 김화순쌤, 두 분 총무님 애쓰셨습니다.
- 얇은 피에 한번 놀라고, 두툼한 크림에 두번 놀라는 맛난 간식빵 준비해준 짝꿍 최화경쌤, 땡큐임다.

*** 공지사항
10.22.2019.화요일.오후 3시 30분.한국산문 심포지엄이 김수영문학관에서 있습니다.
임헌영선생님과 김응교선생님의 주제 발표가 있습니다.
달력에 미리 동그라미 해놓고 많이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기영   19-09-11 18:39
    
저는 박상률선생님보다 제가 많~~~이 젊다고 생각했는데,
아 글쎄 오늘 예로드는 많은 말씀들이 (주로 사랑에 관한), 저와 많이 겹쳐서 무척 놀랐습니다.
글쎄, 같은 시대를 살았더라구요.
게다가 오래전 받은 연서의 내용이 아~~~ 누구의 명언이었다니.
저는 어찌하오리까!
"모든 사랑은 비극에 바탕을 둔다 -루 잘로메-"는 오늘의 수업은 그래서 또 옳습니다.
-노란바다 출~렁
고옥희   19-09-11 19:07
    
주기영선생님?후기잘읽었습니다
제고향 충청도는 토란국을 잘안먹었는데 어른이되어 서울와 토란국을 먹어보았습니다
송편도  그땐 동부콩속보다 깨가 맛있던거같아요
깨가 든 송편이 씹히면 아주 기분이 좋았던생각이납니다
추석빔을 해놓고 어서 추석이오기를 손꼽아기다렸던 어린시절이 아련히 그리워지네요
노랑바다 주기영선생님?행복한추석되세요
정다운   19-09-11 19:18
    
앞부분, 주기영 선생님 이야기가 정말 재밌습니다. 저도 깨깨깨콩입니다. ㅎㅎㅎ
이야기가 곁들어진 후기라서 더 좋은 것 같아요. ^^
이수연   19-09-11 19:41
    
ㅎㅎㅎ 송편은 역시 깨송편이지요~♡

저희집도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 콩이랑 녹두송편을 좋아하셔서,
엄마와 작은어머니들이 뒤에서 궁시렁~궁시렁~ 하시던 장면이 떠올라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손주들은 두말할 것 없이 깨송편이었구요^^
어린 저희들은 깨송편을 골라낸다고 요리조리 살펴보다가 하나 집어들고 갈랐을때
깨가 나오면 "와~~"하고 콩이 나오면 "에~~"했더랬습니다.
나중엔 송편을 다 반으로 갈라놓아서 할머니께 혼나기도 했지요.

저도 그 때가 그리워 집니다~~^^*

주기영 선생님 옛기억을 예쁘게 소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심재분   19-09-11 20:36
    
추석만되면 어느 후배 말이 생각나네요.
시집가서 첫 추석이되어 충청도에 있는 시댁에 갔는데 헉?
시어머니가  빨간 고무다래에 쌀까루를 한말 부어 놓고는 송편을 만드는데
시어머니랑 둘이서 밤새 송편을 빗었대요. ㅎ ㅎ ㅎ
그뒤로는 추석이 돌아 오는게 두렵다는 말...

올해도 후배는 송편을 많이 빗을까?
고것이 궁금하네요.

모처럼 주기영샘 후기 받아보니 정답네요.

선생님들 추석 명절 잘 보내시고,
 행복한 모습으로 다음 수업시간에 만나 뵈어요.
설영신   19-09-11 21:26
    
어쩌다가
손주들에게 편식하지 말라고.
그 어미에게는 왜 애를 편식하게 키웠냐고
야단치는 꼰대가 되었네요.
어려서부터 먹는 것 하나만은 끝내주게 잘해
잘 먹는다고 칭찬해 주던 부모님.
송편 잘 빗는다고 칭찬해주던 시부모님
모두 모두 그리운 한가위입니다.

1교시부터 4교시까지 공부 잘했습니다.
애써 준 주기영선생님  고맙습니다.
성혜영   19-09-11 23:06
    
여기에 처음으로 글을 올립니다~주기영샘  맛깔나고 센스있는글 잼나게  잘 읽었어요~     
  서울 명륜동토박이 울엄마는  종가집으로 시집 와서 추석이면 엄청나게많은
  송편을 만들었어요~물론 저도 꼭 만들었지요
  우리집은 붉은팥에 계피넣어  달콤한 앙꼬로 송편을 빚었어요~엄청 맛났구요
  내가 시집오니 목포출신 시어머니는 동부콩을 넣으셨어요~당연히 저는 낯설었 지요
  우리 아이들은 깨송편을 좋아했구요~송편얘기  재밌네요
송경미   19-09-12 06:36
    
'노오력'을 해도 어려운 청년들의 시간,
노인은 더 아픈 사회,
여전히 어려운 '낯설게 하기' 등을 얘기하는데
가까운 과거가 선사시대처럼 느껴지는 수업이었습니다.
정말 "그 많던 이(서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오랜만에 후기 써 주신 주기영샘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고향 가시느라 결석하셨지만 여기서 봬니 더 반갑습니다.
행복한 명절 보내시고 다음 주 밝은 얼굴로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