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주는 이미지처럼 뜨겁게 여름학기를 개강했습니다. 2주간 쉬고나서 만나는 자리여선지 더욱 반갑고 다시 시작하는 기분도 들어 설레었습니다. 새로 오신 박** 선생님은 문학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신 분이라 소설반 분위기를 한층 더 끌어올려 주셨어요. 시작이 역시 좋습니다.
작가님은 말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한테는 사실 글을 쓰고 있지 않아도 하루 24시간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이라고요. 우리가 겪는 이 모든 일상들이 다 글이 되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작가님은 한순간도 글쓰기와 연관 짓지 않고 일분일초를 보낸 적이 없다고 하세요. 하지만 가까운 사람들에게조차 그걸 이해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거기(소설반)에 왜 나가냐 등 주위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반응을 들었다면, 그런 말에 휘둘리지 말라고 하세요. 뭘 하든지 간에 우리는 매순간 글을 쓰고 있다는 것과 다름없다는 걸 스스로는 믿어야 한다요. 글 쓰는 사람들이 견뎌야 하는 일이랍니다.
<글쓰기 아포리즘>
헨리 제임스의 말에 따르면 단편소설은 “시가 끝나고 현실이 시작되는 그 절묘한 지점”에 놓여 있다.“너무나 기이하고 매혹적으로 특별하면서도 너무나 쉽게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일반적”이어야 한다.
: 서구 사람들에게는 소설과 산문의 실제적 차이를 느끼는 그들만의 요소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 중 산문을 쓸 때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단어를 많이 쓴다면 소설에서는 같은 의미의 단어 중에서도 지독한 단어를 쓴다고 해요. 그게 본능적으로 확 드러난다고 합니다. 반면 우리는 종종 산문을 볼 때 서술이 있고 대화가 있고 묘사가 있으면 소설 같다고 합니다. 형태적인 것들이 주는 본능적인 감각이죠. 소설과 산문을 구분하는 명백한 규정은 없습니다만, 단편이라는 형식 짧은 분량 안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려면 특이하면서도 그것이 무척이나 낯익고 보편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여 질 수 있어야 된다고 합니다.
누군가 이런 평범한 이야기가 소설이 될 수 있느냐고 물어오면 작가님은 이렇게 대답하신답니다. 뭔가 소설이 될 만한 이야기가 따로 있다고요. 어디에? 도처에 있다고 합니다.
앨리스 먼로의 단편소설 <곰이 산을 넘어오다>는 치매를 앓는 부인을 둔 남편의 이야기입니다. 흔한 소재지만 뻔 할 것 같은 인물의 행동에 예측을 벗어난 한 가지 요소가 덧붙으며 소설이 됩니다. 소설이 따로 있는 건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들 삶에 늘 있다고요. 일상에서 늘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요. 우리에게 은폐되어 있거나 모른 척 하고 있는 일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 흘러갈 수 있는 가능성이 무수히 많은데 우리는 하나의 파이프에 몰아놓고 안전하게 통제할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가게끔 합니다. 소설은 항상 그 파이프에 균열을 내는 것이랍니다. 간혹 파이프에 억지로 뭔가를 몰아넣는 순간 파이프가 터져버리는데요. 이러한 일은 실제 삶에서도 일어날 수 있죠. 소설이 될 수 있는 이야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소설이란 삶의 가능성을 실현시키는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답니다. 현실에 없는 특별하고 기이한 것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고요. 기이하고 특별한 것은 우리 삶 안에 잠복되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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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이 여름학기 과제를 내주셨어요.
소설론 참고 텍스트를 읽고 "내게 소설(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에세이를 쓰는 것입니다. 기한은 7월 4일까지입니다. 과제를 하면서 소설(문학)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고 개념을 정리하며 글쓰기의 기원을 확인하는 과정이 되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