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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꿈>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1부> 5월 13일 용산반    
글쓴이 : 차미영    24-05-14 18:30    조회 : 2,222

오래된 꿈

 

513일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1부를 읽었습니다.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삼십대였던 작가가 1980문학계란 문예지에 발표한 중편소설을 사십년이 지나 다시 고쳐 쓴 작품입니다. 작가 후기에서 하루키는 이 작품에 무언가 매우 중요한 요소가 있다는 걸 처음부터 느꼈다고 말합니다. 더구나 이 작품이 목에 걸린 생선가시 같이 신경 쓰이는 존재였다고 합니다. 무심코 지나칠 수 없는 이런 멘트가 어울릴 법 한 대목을 찾느라 오래 걸려 읽었습니다. 제목에 씌어진 불확실에서 알 수 있듯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선명하게 그려진 게 없는 듯합니다. 현실과 비현실이 섞여 전개되는 글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애쓸수록 그 두 세계를 경계 짓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게 보입니다. 우린 습관처럼 참과 거짓이 명료하게 구분되는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합니다. 애매모호한 건 뭔가 불안하고 불편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정해진 규칙과 질서에 한 치 흐트러짐 없이 살아온 우리에게 하루키가 던지는 메시지가 뭘까 주목해봅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잣대에 허우적거리다 어느 순간 밀려오는 허무와 고독에 당혹스런 순간이 있지 않을까요. 삶에 깊은 회의를 느낀 중년의 파우스트 박사가 스스로 목숨을 저버리고 싶은 충동이 충분히 이해됩니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펼쳐지는 인생 여정에서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하는지 면밀하게 들여다보라고 작가가 권하는 것 같습니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마흔 중반의 시골 도서관 관장인 주인공 가 삼십년 전 고등학생일 때 사랑한 를 잊지 못하고 회상하며 시작됩니다.

다음은 1장에서 26장까지 이루어진 1부에서 제 마음을 가장 움직인 문장입니다.

뿔피리 소리가 도시에 울려 퍼질 때, 짐승들은 태곳적 기억을 향해 고개를 든다.” (문학동네 23)

이 소설에 나오는 도시는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수수께끼 같은 상상의 신비스런 공간입니다. 그 도시에 대해 그녀가 알려주는 대로 는 공책에 도시를 그립니다. 결국 도시는 두 사람의 공동 창작물입니다. 그녀는 에게 현실 세계에 있는 지신은 단지 그림자에 지나지 않으며 진짜 자기는 그 도시에 있다고 합니다. 진짜 그녀가 살아가는 도시에 들어가려면 그림자를 떼놓고 가야합니다. 한편 도시 광장에 있는 시계탑엔 시계 바늘이 없습니다. 이 곳 도시엔 시간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시간이 없다는 건 역설적으로 시간이 무한히 흐르는 영원과 연결됩니다. 그 도시 북문을 지키는 문지기가 부는 뿔피리 소리에 일각수 무리가 도시 밖으로 움직입니다. 태곳적 기억이란 무엇일까요.

발터 벤야민은 카프카가 그리는 세계가 태고라는 시대의 억압된 기억이 살아 움직이는 일종의 늪이라고 말합니다. (발터 벤야민 평전593) 하루키의 글에서 종종 카프카를 만납니다. 카프카의 법 앞에서나오는 문지기도 이 도시에서 비슷하게 등장합니다. 태고로 거슬러 올라 영원의 세계에 가닿으려는 몸짓이 인간이 아닌 그 곳 도시에서 불행하게 죽어가는 일각수에게 그려집니다.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에서 전형적인 꿈 사례 가운데 노출 꿈이 있다고 말합니다. 소녀는 자주 꿈을 꾸고 노트에 꿈 꾼 내용을 상세하게 기록합니다. 임신한 자신의 벌거벗은 몸 앞에 낯선 어른 남자가 등장하는 꿈 이야기가 8장 편지글에 나옵니다. 프로이트의 해석에 따르면 그녀의 무의식에 억압된 성적 욕망이 드러난 꿈으로 보입니다.

실제 세계에서 갑자기 사라진 그녀를 만나려고 는 도시로 들어갑니다. 도시에서 가 하는 일은 책이 없는 도서관에서 계란 모양의 오래된 꿈을 읽는 것입니다. 소설의 주된 모티프처럼 오래된 꿈이 여러 번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가 자신의 그림자와 대화하는 20장에서 그림자는 오래된 꿈이 뭔지 알려줍니다. 기쁨 슬픔 두려움 질투 고뇌 등 다양한 감정이 이 곳 도시에서는 무용합니다. 이렇듯 불필요한 감정은 밀폐용기에 담아 도서관 깊숙이 보관됩니다.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르는 감정의 씨앗마저 소멸시키는 일이 오래된 꿈 읽는 자에게 맡겨진 임무입니다. 인간에게 감정이 사라질 수 있을까요. 역병의 씨앗, 혼돈의 소우주로까지 비유된 오래된 꿈, 인간의 감정이 이토록 폐기처분되다니 씁쓸합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국가10권에 시인 추방론이 펼쳐집니다. 이성적 사유와 지성의 눈으로 바라본 이데아 세계만이 진짜 세계로 간주하는 플라톤에게 시시각각 흔들리는 인간의 감정이란 오래된 꿈처럼 무익한 것입니다. 인간의 페이소스를 자극하는 시인이 플라톤에겐 그리 매력적이지 못하지요. 플라톤 철학이 안고 가야 할 한계처럼 보입니다.

자신의 그림자와 이토록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다니 어쩐지 이 대목이 1부의 핵심 같습니다. 꺼져가는 섬세한 감정 선이 다시 살아나듯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곱씹어 읽습니다.

 


신재우   24-05-15 10:30
    
1.1980년『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덜 익은 채로 세상에 내놓고 말았다는 생각에 책으로 내지 않았다.
  대폭 고쳐서 쓴 책이 1985년『셰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이다.
2.다시 다른 형태의 상호  보완적 내용으로 이 작품을 코로나 기간 3년동안 집필한 것이다.
3.3부 중 1부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알드 원더랜드』를 요약하는 기분이 든다.
4.영화<메이지 러너>와, BTS의<ON>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5.벽의 의미는 카프카의 많은 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
6.2교시는 하루키『렉시턴 유령』중<녹색 짐승>을 읽었습니다. 이 소설은 비극적 사랑 고백을 통하여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아픔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