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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스또예프스키 <가난한 사람들> 3월 10일 용산반    
글쓴이 : 차미영    25-03-13 14:43    조회 : 123

가난과 사랑의 무게

 

가난한 사람은 까다로워요. 가난한 사람은 보통 사람과 다른 눈으로 세상을 쳐다보고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곁눈질로 쳐다봅니다. 주변을 항상 잔뜩 주눅이 든 눈으로 살피면서 주위 사람들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신경을 씁니다.” (도스또예프스키 가난한 사람들열린책들 129)

이 문장에서 알 수 있듯 도스또예프스키는 이십 대의 젊은 나이에 이미 가난한 이들의 심리를 예리하게 포착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의 등단작으로, 서간체 형식 속에서 가난한 중년 하급 관리 마까르 제부쉬낀과 젊고 병약한 바르바라의 관계를 통해 가난이 인간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두 주인공은 먼 친척 관계로, 고아가 된 바르바라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습니다. 마까르는 그녀를 물질적으로, 정서적으로 지원하며 깊은 애정을 느끼지만 그 감정은 점차 집착에 가까워집니다. 반면 바르바라는 현실적인 판단을 내리는 인물로, 때로 냉정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둘 사이의 감정이 교차하는 편지에서 이들의 갈등이 점차 드러납니다.

어제 저는 행복했습니다. 너무 행복했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습니다.”(9, 마까르의 편지)

제가 마침내 당신과 말다툼을 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당신은 알고 계시기나 한 겁니까?”(16, 바르바라의 편지)

첫 편지글의 첫 문장에 나오는 위 두 글귀는 두 사람의 관계가 결국 비극적으로 끝날 것을 예고하는 듯합니다. 마까르는 자신의 존재를 바르바라를 통해 확인하려 하지만, 바르바라는 가난이 주는 압박에서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함을 인식합니다. 결국 바르바라는 지주 비꼬프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마까르를 떠납니다. 사랑보다 생존이 더욱 절실했던 그녀의 선택 앞에 마까르는 절망과 비통에 빠지면서 소설은 끝납니다.

바르바라는 마까르에게 푸쉬킨의 역참지기와 고골의 외투를 읽어보길 권합니다. 마까르는 역참지기의 삼손 비린에게 연민을 느끼지만, 외투의 아카끼 아카키예비치에게는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떠올리며 작품을 혹평합니다. 마까르는 단순히 경제적으로 궁핍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수치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제 목을 조이는 것은 돈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느껴지는 불안감, 사람들의 수군거림, 야릇한 미소, 비웃음입니다.”(153)

이러한 마까르를 향해 바르바라는 당신은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있습니다.”(156~157)라며 일침을 놓습니다. 또한 언제나 그러셨듯 당신은 또 당신이 저지른 일이 부끄러워지시겠죠. 하지만 그러지 마세요. 그건 거짓 부끄러움이니까.”(158)라고 말하며, 그의 지나친 자의식을 지적합니다.

도스또예프스키는 가난한 사람들에서 경제적 빈곤이 단순한 물질적 결핍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얼마나 철저히 잠식하는지를 묘사합니다. 특히 마까르가 한 문장을 빠트리고 정서(正書)한 후 '각하'에게 불려가 허름한 옷에서 떨어진 단추를 주우려 하는 장면(181)은 가난이 인간을 얼마나 비굴하게 만드는지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는 "가난한 것이 죄는 아니"(171)라고 항변하면서도, “가난이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178)고 토로합니다.

도스또예프스키는 이 소설에서 가난이 인간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파괴하는지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가난한 이들의 심리적 억압과 무력감을 탁월하게 그려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