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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지프스처럼    
글쓴이 : 한지황    14-01-28 01:06    조회 : 4,895
오늘 시론 강의는 사유의 방식 중 하나인 상상력으로 시작했습니다.
상상력은 일단 논리를 초월한 어떤 주관적 사고로 정의됩니다.
상상력이 부족하면 일기 형태의 글이 됩니다.
우리는 왜 실생활에서는 거짓말을 수시로 하면서도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면 사실만을 쓰려할까요?
반대가 되어야지요.
실생활에서는 거짓없이 살고, 글을 쓸 때는 약간의 거짓말과 과장을 해야 합니다.
“꽃밭에는 장미 한 그루가 등불을 밝히고 있어요.”
우리는 여기서 햇살이 플러그 역할을 한다는 상상력을 엿봅니다.
이런 시적 표현이 들어가야 수필도 아름다운 글이 됩니다.
역설적 표현은 무조건 상상력에 해당됩니다.
정호승은 역설적 표현에 탁월한 시인입니다.
“사랑은 아프고 아름답다.”
“사랑은 황홀한 재앙이다.”
“사랑은 1%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 99%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말을 뒷받침하는 역설적인 표현들입니다.
훌륭한 상상력은 이같은 모순 속에서 심오한 진리를 지닌 사유입니다.
여기서 모순은 형용 모순을 말하며 이는 모순되게 꾸민다는 뜻입니다.
 
선운사 동구(洞口) / 서정주
 
선운사 골짜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육자배기의 청각이 떨어진 작년의 동백꽃인 시각으로 변한 공감각이 잘 나타난 시로
연상의 대표적인 시입니다.
너무 일찍 찾아간 선운사에 동백꽃은 아직이고
섭섭함에 찾아간 선술집에선 작부가 육자배기를 부릅니다.
슬프고도 구성진 그 노래 소리에 파란만장한 그녀의 삶이 느껴집니다.
화려한 꽃잎일수록 떨어지면 처절하고 썩으면 냄새가 진동합니다.
육자배기에서 작년에 떨어진 동백꽃을 연상한 것이 이 시의 키포인트입니다.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와 헤어지며 여우가 말합니다.
“노란 밀밭에서 언제나 너를 생각할거야.”
노란 밀밭은 어린 왕자의 금발을 연상시키는 것이지요.
연상은 망각된 기억의 유사성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다른 사물들로 전이되는 사유체계입니다.
 
 
산 2 / 김광림
 
한여름에 들린
가야산
독경 소리
오늘은
철 늦은 서설이 내려
비로소 벙그는
매화 봉우리
눈 맞는
해인사
열두 암자를
오늘은
두루 한겨울
면벽한 노승 눈매에
미소가 돌아
 
 
눈 속에 핀 꽃은 시련을 극복한 꽃입니다.
선구자는 시련을 겪습니다.
면벽한 노승의 미소는 득도를 의미합니다.
매화가 추위를 이기고 꽃을 피웠듯이
성취를 위해서는 고통을 이겨내야 합니다.
이 시 역시 매화에서 노승의 득도를 연상한 시입니다.
 
 
시는 사람이 살아가는 원리를
사물 현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등나무는 서로를 꼬아서 그늘을 만들고 여러 가지 색깔의 꽃을 피웁니다.
부부 역시 각자의 몸이지만 한 몸이 되고 자식에게 그늘을 줍니다.
가령 내가 그렇게 살지 않더라도 가상으로 꿈꾸어 보는 것이 시 쓰기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나무가 따로 자라다가 가지가 맞닿아 하나로 합쳐지는 연리지도
글쓰기의 좋은 소재가 될 수 있지요.
 
 
인생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불가합니다.
이성과 논리로 설명이 안되는 것은 비유, 이미지로 설명해야 합니다.
사람마다 인생은 다르게 표현됩니다.
 
 
즐거운 노동이란 말이 있습니다.
노동을 억지로 하면 힘이 들듯이 글쓰기 또한 노동이 되면 안되겠지요.
물론 글쓰기는 원래 괴로운 작업이고 작가는 영원한 현역입니다.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시지프스처럼
좋은 글을 썼다 하더라도 다시 아래로 내려와 즉
초심으로 다시 올라가듯이 글을 써야 합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 글을 쓴 베테랑도 원고 청탁을 받으면
습작 시절로 돌아가 어렵게 글을 씁니다.
이것이 예술가의 속성입니다.
그래서 다른 직업에서 볼 수 없는 희열을 느낍니다.
여기에 무보상의 중독이 있습니다.
위험과 죽음을 무릅쓰고 보상도 없이 빙벽을 오르는 사람들처럼
노력에 비해 적은 보상을 받는 예술가들은
문화 예술의 중독성에서 빠져 나오지 못합니다.
이 또한 예술적 모순입니다.
 
지난 주는 임시 휴강을 한 관계로 한 주 건 너뛰고
벗들을 만나니 반가움이 배가되었지요.
습관은 무서운지라 매주 강의를 듣고 서로 얼굴을 보아야만
한 주를 잘 보내는 것 같습니다.
새로 오신 이은심님도 정말 반갑습니다.
결석을 하신 공인영샘, 김화순샘, 박진숙샘,이은숙샘도
다음 주에는 꼭 뵙길 바랍니다.
새해 첫 달이 이렇게 흘러가고 2월에 만나게 되는군요.
봄이 저만치서 고개를 빼꼼이 내밀고 있으니 2월이 오는 것도 반갑기만 합니다.

최영자   14-01-28 18:04
    
' 상상력은  일단 논리를 초월한 어떤 주관적 사고로 정의된다.'

시인의 상상력으로 탄생한 시는 때로 이해 되지 않는 어려움이 있어요. 
시인의 천재적 감성을  공감하지 못하고 무지로 흘려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스승님의 해설과 함께하는 시론 강의는  작가의 상상력이 펼쳐져  좋은 시를 공감하고
배우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추천해 주시는 시를 찾아 읽는 발견의 기쁨도 크구요.

문우님. 명절 돌아오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지요?
힘들 때 위로가 되는 시를 선택하여 싱크대 위 수납장에 붙여놓고 짜증 날 때 읽어 보며
씽긋 웃어 보세요.
저는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 를 붙여 놓을까 합니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

즐거운 명절 되세요.
     
한지황   14-01-29 09:18
    
맞아요. 주관적 사고인 상상력은 시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하지요.
그래서 시는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배우는 만큼 시로 가는 길은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시론 시간은 몰랐던 시인의 감정과 사상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지요.
시론 시간 외에도 수필과 연관된 시들을  전광석화처럼 끄집어 내시는 스승님 덕분에
 늘 우리는 시랑 호흡을 함께 하며 살지요. 
시의 감성을 수필에 엮어 낼 수 만 있다면 더 멋진 글이 나올 거에요.
수납장위의 시 한 편이라....
역시 최영자샘은 아이디어가 번득이는 재치 여왕이라니까요!
최영자   14-01-28 18:18
    
사평역(沙平驛)에서 /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 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일부분만 옮긴게 아쉬워서  전문 옮겼습니다.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
저 혼자만 좋아하는 건 아니겠죠? ㅋㅋ ~~
한지황   14-01-29 14:26
    
좋아요 좋습니다.
너무 슬퍼서 가슴이 아려오는 시입니다.
입김을 쓴 약같은 입술 담배 연기로 상상할 수 있는 이 감수성 강한 시인!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시각의 청각화!
배운만큼 보이는 거 맞네요....
     
박서영   14-01-30 00:44
    
한반장님의 가슴을 아리게하는 그곳, 사평역에서의 기억?추억?을 되돌려보지만 선명은커녕 물에 젖어 번져버리니 형체도 알아 볼 수가 없네요. 즐거운 노동 , 무보상의 중독 완전 공감합니다.
그러나 날이새면 진짜 노동하러 가야합니다. 즐겁게 해야겠죠?  오늘도 공부 잘하고 갑니다. 도강하는 느낌이지만 짜릿한 이맘을 아실려나.... 명절 잘 지내시구요 해피뉴이어!!!
          
한지황   14-02-03 23:11
    
설 명절 잘 지내셨나요? 박서영님!
노동은 어떠셨나요?
그래도 요즘은 점점 간소화되어가는 것 같아 좋습니다.
아님 하도 해서 베테랑이 되었는지도...
언제든지 놀러 오시는 것 환영입니다.
소통처럼 소중한 게 없는 데
여기서의 소통은 달콤하니까요....
진미경   14-02-01 20:20
    
일산반 문우님들,행복한 설 보내고 계신가요?
    해마다 명절이면 맘이 바빠집니다.
    장보고 음식을 장만해도 금방 사라져 계속 움직여야하니까요
    이제 짬이 나서 들어와봅니다.
    반장님은 후기를 맛깔나게 올리셨네요. 고맙습니다.
    무보상의 중독을 즐기는 수많은 문화예술인이 있기에
    우리의 삶은 그 깊이와 넓이를 확대하며 영글어지고 있나봅니다.
    실제 삶은 진실하기, 그러나 글은 독자를 배려해서 거짓말하기
    배운 것과 반대로 살아가는 것을 반성합니다.
    봄이 저만치서 달려오는데 뒤늦은 겨울감기에 고생하는 이 적지않다합니다.
    2014년 더욱 건강하시고 활짝 웃으시길 기원합니다.
     
한지황   14-02-03 23:17
    
설연휴 동안 컴을 켜지 않았더니
미경샘이 다녀간 줄도 모르고 월요일이 되었네요.
즐거운 명절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주부들에게
명절은 그다지 기다려지는 날은 아니지요.
그래도 세월이 약이라고 어느 새 수월하게 일을 해나가는 나를 보고 있습니다.
이제 일은 두렵지가 않네요..
한 해의 첫달이 벌써 가버렸으니 섭섭합니다.
명절과 함께 헌달이 가고 새달이 오고...
그래도 봄이 가까워지고 있으니 싫지만은 않아요.
오늘부터 쌀쌀해진 날씨 내일이면 더 추워진다니
마지막 추위 잘 견디시고 올해도 씩씩하게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