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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로3가의 시간(종로반)    
글쓴이 : 봉혜선    19-07-16 15:32    조회 : 2,292

문화인문학실전수필(7. 11, )

-종로3가의 시간(종로반 

 

1. 종로3가의 시간  

종로33번 출구로 나오니 그곳은 끈 떨어지고 줄 떨어진 어르신들의 천국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떠올리게 하는, 백구두에 베레모, 라이방을 착용한 올드패션 노인들이 빙빙 돌거나, 제자리걸음 하거나, 마이클 잭슨의 문 워크처럼, 아니 러닝머신을 거꾸로 타듯 뒷걸음질 칩니다. 그곳에서 마주하는 시간의 모습이 수상했어요. 백 투 더 패스트(Back to the Past)!’ 그곳의 시간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더라고요. 멈추어 있거나, 술래잡기를 하거나 뒤쪽 여백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요. 그런데 아까부터 평소와는 다른 공기의 흐름이랄까 석연찮은 느낌이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는 거예요. 그것이 무엇일까?’  

(중략 

다시 종로3가를 걷습니다. 그곳은 정말 이상한 곳입니다. 글 서두에서 평소와는 다른 공기의 흐름을 감지했다고 했죠. 단성사 옆 골목으로 접어드는데 그 느낌이 끈질기게 따라와요. 누가 나를 훔쳐보는 느낌이랄까, 아니면 같은 차종의 남의 차를 보는 느낌? 멈추어서 주위를 휘둘러봤죠. 낯익으면서도 낯선 그 기시감의 정체가 무엇일까? , 그곳 노인들 사이에 또 다른 내가 서 있었어요! 가까운 미래의 내가.’

2. 왜 종로3가인가 

윗글은 어중간한 나이의 필자(김창식)가 종로 3가를 찾았다가 서성이는 노인들의 모습에서 닮은꼴 자기 자신을 보는 기시감을 묘사한 글입니다. 사회 중심에서 밀려난 노인들이 나름 발을 떼긴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심지어 뒤로 가는 듯한 웃픈정경을 형용한 글이에요. 그런데 잠깐 왜 하필 종로3가냐고요? 노인들의 천국, 아니 지옥, 그냥 보호관찰 구역(Reservation)이라고나 할까?

*우리 글쓰기도 그와 마찬가지랍니다! 제아무리 열심히 글을 쓰고(한 주 한 편 꼭 합평 글 제출?) 노력을 해도 글 쓰는 능력이 한결같이 상승 곡선을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머뭇거리며 제자리를 돌거나,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게도 되고, 때로 퇴보하는 듯도 느껴져 공연히 글쓰기를 시작했구나! 후회하기도 한다는군요. 하지만 장기적으로(또는 어느 날 갑자기) 글이 궤도에 오르며 자기도 모르는 새 발전한다고 합니다. 그런 회의와 망설임, 방황, 좌절, 낙담이 좋은 글쓰기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웃기지도 않는일은 이 글을 쓴 교수님도 그런 경험을 되풀이한다고 하네요.

 

3. 합평  

. 필묵의 수련 - 김순자

화가의 수련에는 정향. 정식. 정력이 있고 이 경지를 넘으면 노래 부르며 춤추듯 하는 필가묵무(筆歌墨舞)의 경지에 이른다고 한다. 옛말에 이르기를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 했으니 노력하고 노력해야 함을 짚어 본다 

. 느리고 한가하게 ? 봉혜선

연작 마지막 글이다. 망연함, 절실함, 처연함, 외로움, 괴로움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글이다. 마법 같은 합평을 통해 세 글이 잘 버무려질 길을 찾았다는 변명을 들었으니 기다려 볼 수밖에. 책 읽기 외엔 다 접고 산 맹순이라고 했으니까.

4. 동정  

피천득의 장미를 김기수 님이 낭독하고 작가가 장미를 샀는데, 정작 집에 갔을 때는 빈손이었음에 초점을 맞췄다. 내용에 나오는 숭삼동의 위치로 전차를 어디서 타고 내렸는가를 따져가며 이 글이 허구는 아닐까? 다양한 해석을 붙여가며 토론을 벌였다. 전차를 모르는 사람도 있으니 시대가 변했음도 실감하면서.


안해영   19-07-16 15:42
    
수필에서의  허구가 어느 선까지 일까? 궁금하다.
피천득의 장미를 읽으면서 정말 작가는 그날 산 장미를 집에 오는 길에 다 나누어 주고 집에는 빈손으로
왔을까?  의심을 하게 된다.  가끔은 우연한 일치로 인하여 그럴 수도 있으리라.
이 글에서 장미를 누군가에게 다  주고  빈손으로 집에 온 것이 중요한 것인지도 살피게 된다.
흠, 수필은 의문점을 주면 안 되는 글 아닌가?
윤기정   19-07-19 22:49
    
왜 시작했나? 이 일을,  당장 집어치우고 맘 편하게 살아야지 하면서도 놇치를 못한다. 자기정화? 성찰, 소통, 의미화 모두 멋진 말이기는 하지만 쓰는 이유에 합당한지는 잘 모르겠다. 시간이 갈 수록 더 모르겠다. 주변에는 무슨 무슨 상 타는 것이 목표임을 숨기지 않는 이들도 있다. 왜 쓰는가? 수필도 창작이니 치열하게 고뇌하고 정치하게 구성되어야 할 텐데 불면의 밤, 사유의 심연을 유영한다고 해서 메울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괴롭다. 쏟아지는 잠을 밀어올리는 것도 힘들지만 몸은 피곤한데 밤이 깊어갈수록 명료해지는 의식을 토닥이는 일도 쉽지 않다. 아!
김순자   19-07-25 03:14
    
회의와 방황 좌절 낙담이 곱빼기로 나를 괴롭힘니다.
노력하는 만큼 늘기는 하나 안목이 높아져 만족 할 수 없으니 힘이 듭니다.
예전 공부 할때 손이 안목을 따라주지 않으면 어렵다 했습니다.
꼬옥 이겨내야 한다며, 어느날 갑자기 손이 나도 모르게 신들린 듯 무아경에 빠지기를.
내 자신을 냉정히 보고 느끼고 관찰해야 하겠다. 욕심을 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