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제3강 다니자키 준이치로
일본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탐미주의,예술 지상주의,악마주의의 천재 신인으로 지목되기도 했습니다. 1886(明治19年), 7月24日, 도쿄 니혼바시구 가키가라초(東京市 日本橋? ??町) 출생한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형이 3일도 못되어 죽어버렸기에 장남으로 출생 신고 되었습니다. 집안의 몰락으로 빈곤한 어린시절을 보냈고 대학도 잡지 만드는 일을 하다가 경제적인 이유로 중퇴했답니다.
당시 유행했던 자연주의를 벗어나 현란한 문체로 여체를 찬미하고 성의 신비와 변태 성욕까지 파헤치며 탐미주의의 극치인 작품들을 썼습니다.세 번의 결혼도 모자라 ‘부인 양도 사건’까지 아사히 신문에 광고를 내서 무리를 일으켰던 다니자키 준이치로...마조히즘을 초월한 탐미주의 작품으로 일컬어지는 <슌킨쇼>는 문장을 최고로 유식하게 썼기 때문에 천박한 소재를 잘 살려서 희대의 명작으로 꼽힌다고 합니다.
***** 1915(29), 기녀의 동생인 이시가와 지요코(石川千代子)와 결혼. 이내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는 영화배우였던 처제 세이코와 동거(1917).
1918(32), 朝鮮, ?洲, 中? 등지 여행. <<小さな王?>> 발표.
여배우와 결혼했다가 실패한 반자연주의 문인 사토 하루오(佐藤春夫)와 교우(1919).
사토 하루오(佐藤春夫, 1892-1964). 시인, 작가로 와카야마(和歌山) 출신. 게이오(慶應)대학 문학부 중퇴. 중일전쟁 때는 우한(武漢) 작전에 종군(1938). 말레이시아와 자바에 작가로 종군(1943).
둘 사이에 유명한 부인 양도 취소로 인한 ‘오다와라(小田原, 神奈川 소재 지명)사건’(1921, 35세)이 터져 세상을 놀라게 했다. 처제와 동거하는 다니자키의 학대에 괴로워하는 본처를 동정하다가 사랑으로 변해버린 사토 하루오에게 아내를 양도하려다 절교한 이 해괴스런 엽기적인 일은 여체의 신비를 추구하던 작가다운 발상이다.
192337), 9.1. 하코네(箱根) 산길에 버스 타고 가다가 간토대지진(?東大震災) 만남. 요코하마(?浜) 자택에서 지닌 공포증으로 시달리다가 교토(京都)로 이사, 나중 효고(兵庫)로. 1926년(40세), 두 문인은 화해.
1929(43), 아내(千代)를 오츠보스나오에게 양도한다는 설.
오츠보스나오(大坪砂男, 1904-1965, 본명은 和田六?). 추리작가. 광물학 전공 교수의 아들로 태어나 약대(東京???門?校, 현 東京?科大?) 나온 뒤 다니자키 집 거주 서생으로 있을 때 주인 아내와 관계, 일설에는 임신했으나 중절시켰다고도. 온갖 파란만장 겪은 뒤 추리작가로 활동. 다니자키 아내를 둘러싸고 두 남자는 요코렌보(??慕, 남의 부인 엿보기)와 후타마타(二股, 삼각관계) 연출. 결국 사토의 승리로 둘은 결혼, 그들 사이의 맏아들 사토마사야(佐藤方哉, 1932-2010)는 국제적인 심리학자로 행동분석 전공. 1930(44), 미뤄오던 부인 양도를 실행.
<슌킨쇼>
슌킨은 휘파람새 사랑. 휘파람새는 소리 훈련, 숲속 휘파람새와 다름. 슌킨은 자기 새에게 ‘덴코(天鼓)’라 이름. 사람 보는 앞에서는 안 울고, 쾌청일 때 잘 운다. 그 다음 사랑한 새가 종달새.
슌킨 미모에 반해 제자가 된 리다로우(利太?). 梅見가자는 걸 거절, 본보기 징계로 이마에 상처. 그 한 달 반 뒤, 누군가가 春琴 방 침범, 열탕을 뒤집어 씌워 얼굴 흉하게. 그녀는 사스케 접근 금지령. 그는 바늘로 두 눈 찔러 실명, 계속 그녀에게 봉사. 결혼 않은 채 지냄. 두 장님 받들어 준건 데루녀(照女).
어느 날, 두 장님은 종달새 장 문 열어 날려 보내고 앙앙불락. 슌킨은 각기 걸려 사망. 사스케는 덴코 그냥 기르며 그 소리 들으며 눈물. 21년 뒤 죽음.
(2부) 수필 합평
문영애<먼저 인간이고 싶다>
양상훈<죽음에 관한 종교적 사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