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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숱한 남성을 울린 루(평론반)    
글쓴이 : 오정주    20-06-04 08:34    조회 : 3,418

(1) 인문학 강의 니체 4회차  

루의 눈에 니체는 "사려 깊고 유능한 쇼펜하우어의 신봉자."일뿐 ...루를 향한 니체의 사랑은

지인에게 쓴 편지에속았다라고 쓴 것처럼 실패로 끝났습니다.

8살 때부터 짝사랑에 빠졌고 소녀시절부터 혁명의식이 있었던 루 살로메,.. 18세의 루에게 종교 교육을 하던 목사 길로트는 43세로 두 딸의 아버지였는데도 불구하고 루에게 빠져 사랑 고백을 했다니 그 후의 숱한 로맨스 행적을 보더라도 정말 치명적인 매력으로 여러 남자를 울린게 분명하네요. 애타적 이상주의자였던 말비다는 천성적인 자아중심자였던 루를 보고 어린시절 자기를 보는 듯하여 이뻐하다가 나중에는 비난하고 돌아섰답니다.

14세 연하의 릴케가 그녀를 향해 쓴 시는 그녀가 얼마나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내 눈빛을 꺼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내 귀를 막아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내 팔을 부러뜨려주소서, 나는 손으로 하듯 내 가슴으

로 당신을 끌어안을 것입니다,/내 심장을 막아주소서, 그러면 나의 뇌가 고동칠 것입니다, /내 뇌에

불을 지르면, 나는 당신을/피에 실어 나르겠습니다.(라이너 마리아 릴케, 김재혁 옮김, <소유하지 않는

사랑-릴케의 가장 아름다운 시>, 고려대 출판부,2003).    

***아버지는 프랑스계 위그노 교도인 러시아 장군, 어머니는 북독일-덴마크계.

6남매 중 막내로 외동 고명 딸. 8세 때 같은 관저 거주했던 알렉산드르 2세 황제의 미남 부관(프레데릭)을 짝사랑. 팽배했던 혁명의식에도 민감해 소녀시절 베라 자수리치(Vera Ivanovna Zasulich, Ве?ра Ива?новна Засу?лич, 1851-1919)를 흠모, 그녀의 사진을 책상 서랍에 간직. 자술리치는 직접 암살활동에 참가했던 신화적인 혁명가로 마르크스를 러시아어로 번역, <이스크라> 창간 멤버였다.***  

***, , 니체의 지적 31체 공동생활. 18825월 확인 위해 루체른의 사진관에서 수레에 채찍을 들고 앉은 루와 줄로 포박된 두 남자의 연출 사진을 니체의 제안으로 레의 반대를 물리치고 찍음. 이 장면은 니체가 <자라투스트라>에서 여자를 보려 하려는가? 회초리를 잊지 말아라.”라는 구절로 나타남.***

***루와 레 전송하고 2주일 간 라이프치히에서 머물던 니체는 방황. 자살 운운하며 레에게 편지. 어머니와 누이동생은 루와의 뜬소문 듣고 결혼, 광증, 자살 세 가능성 중 결혼만은 안했으면 하고 바란다.

루는 전혀 동요 없었으며, 일기에 니체에 관한 언급도 없음. 베를린에서 레와 공공연히 동거 시작. 18831월 자유를 위한 투쟁이 종료되었다고 안도의 한숨.***

***1883(루가 22)부터 4년간 파울 레와 베르린에서 육체관계 없는 조건으로 동거생활.

루는 동거 중에도 사회학자, 실험심리학 교수 등 숱한 남성에게서 청혼 받아. 자유 누린 후

반드시 파울 레에게로 귀환. 심리소설 <신을 에워싼 투쟁>을 읽은 명사들 줄줄이 루에게

사랑 고백. 1887(26), 문헌학자 프리드리히-카를 안드레아스(Friedrich Carl Andreas, 1846-

1930)와 전격 결혼. 루는 레에게 안드레아스와의 만남을 반대하지 않을 거냐고 물었지만

레는 언제나 새 만남을 말릴 수 없었기 때문에 묵인. 결국 끝나면 돌아올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어느 날 이미 약혼했고 레와의 우정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청혼에

응했다는 말을 듣고 레는 말없이 어릴 적 루 사진과 함께 행복하기를 - 나를 찾지

마시오.” 란 쪽지를 놔둔 채 집을 나가버렸다. 4년 후(1901.10.28.) 한때 루와 지내던 집

근처의 절벽 아래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프로이트는 그녀에 경탄, 딸 안나도 그녀 존경. “자신은 정신분석의 산문가, 루는

정신분석의 시인이라 함. 전쟁 후 환자 쇄도로 루도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환자 받다.

역시 프로이트의 만년의 고통 극복 보고 존경, 1928년 마지막 만났을 때 17년에 걸친

사랑의 마음의 꽃다발 전함. 1930, 루가 69세 때 남편이 죽은 3년 뒤 나치 천지가 되자

그녀는 니체의 여동생이 보복할까 전전긍긍하다가 1937년 사망, 괴팅겐 시립묘지의 남편 묘에 합장.

전기작가 피터스(H. F. Peters), “루는 주기적으로 사랑의 향연을 여는 자유가 상대방

모두에게 인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찬성했는데, 이것은 종교의 도덕적 명령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인간 내면에 뿌리박힌 강력한 소유본능과 양립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인용,임헌영의 문학광장)    

(2) 수필 합평

조성삼,오정주,설영신,나구름,김선봉(존칭생략)

여러 회원님들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매주 합평 열기가 뜨겁습니다.

화상 강의에 참석못하신 분들 그리웠습니다.

담주에는 모두 얼굴 보여주세요~~!


박진희   20-06-06 00:10
    
루 살로메가 '정신분석의 시인'이며 숱한 남성편력을 가졌던 매력적인 미인이었지만 당대의 저명한 학자들을 고통과 죽음까지 몰아간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아마도 그녀에게 인정받고 사랑 받고 싶은 남자의 욕망, 그녀에게 안착하려고 자신의 Ego마저 저버린 남자의 허망, 다른 남자들과 경쟁하듯 자신이 특별할거라는 본능적인 자만(pride)이 다른 남자들과 크게 다를게 없어보이는 '인각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니체의 모습이 보여지기도 합니다.

 임교수님의 강의내용 성의있게 올려주신 오정주 반장님, 감사합니다.
     
오정주   20-06-11 23:53
    
미쿡에서 사뿐히 날아오시는 진희샘
  늘 감사해요.열공하는 모습 아름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