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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늦은 때란 없다 (무역센터반)    
글쓴이 : 정다운    20-06-17 19:02    조회 : 3,827

 주기영 선생님의 맛깔스러운 후기를 히죽대며 읽다가 제 스타일의 약간 무미건조한(?) 수업 후기를 쓰려니 왠지 모르게 죄송스러운 기분이...^^;;

 오늘 정말 오랜만에 수업에 참여했는데, 쉼 없이 매주 수요일마다 참석한 것처럼 익숙하고 편안한 기분이 들었어요.  참 좋더라고요. 아이들이 학교를 가는 둥 마는 둥해서 올 한 해는 1년 내내 방학 같아서 기운이 쭉 빠지는데 오늘 잠시나마 힐링 타임이 됐습니다. 역시 수요일은 힐링 데이였어요.^^ 반가운 선생님들 다음 주에는 더 많이 뵈었음 하는 바람을 가지며 후기 시작해볼게요~




1) 글감

: 일기에 쓸만한 근황은 피하자. 비일상적인 것(자주 일어나지 않는, 흔하지 않은 일)을 쓰자. 자신과 타인의 외적 갈등과 자신과 자신의 내적 갈등이 느껴지는 사건이 글감이 된다.

2) 제목

: 설명하며 풀어 쓰지 말 것. 주제를 반영하며 읽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한다. 기억하기 좋게 써야 한다. (압축, 상징)

3) 글 쓸 때 주의사항

: 하나 마나 한 말(사족)은 하지 않아야 함. 다 말하지 말 것. 문맥으로 독자가 알아볼 수 있도록 여지를 남긴다.

: 굳이 쓸 필요가 없는 말은 생략하자. (유독: 비교 대상이 있어야 필요한 단어,  솔직하게 말하면: 지금까지 한 말은 거짓말처럼 느껴질 수 있다)

: 맥락 연결이 중요하다. 자연스럽게 연결시키자.


 오늘 나눠주신 글이 참 재밌었습니다. 박상률 교수님이 쓰신 '길에서 개손자를 만나다' 를 읽고 마스크 속에서 킥킥 웃었어요. 도로 위에서 만난 젊은 욕쟁이(?) 운전자가 '개새끼야'라고 소리를 치니, 60대인 교수님이 개의 '새끼'이면 40대로 보이는 그는 개의 '손자'가 마땅해서 "개손자님, 왜 그러십니까?'라고 말씀하셨다는 이야기. 지금 꺼내 읽으면서 또 킥킥거립니다. ㅎㅎ

 또 다른 글은 전국노래자랑의 송해 선생님 관련 글이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제가 빨간 줄을 쳐놨네요.

 ' 그런 그가 <전국노래자랑>을 처음 시작했을 때가 몇 살이었을까? 무려 63살이다. '너무 늦은 때란 없다'는 금언을 삶으로 증명해내고 있는 셈이다. 새해가 되어 독자님들 중 또 한 살 먹어버린 나이를 한탄하는 분들, 이미 인생의 전성기가 지나갔다고 자조하는 분들에게 이 글이 위로 혹은 깨달음이 됐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환갑이 넘어 인생의 진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30년째 하고 있다...'


 오늘 후기는 여기까지입니다. ^^

 정명순 선생님께서 준비해주신 떡 뜯어먹으면서 썼습니다. 맛있네요. 감사합니다!^^

 창으로 선선한 바람이 들어오네요. 선생님들 행복한 저녁 시간 되세요~

 





오길순   20-06-18 07:21
    
'길에서 개손자를 만나다'
우리 요즘 웃을 일 없는데 함께 웃였죠?
진정한 유모어는 이렇게 하는 것인가 싶습니다요. ^^

정다운님의 흐르듯 자연스런 문장력!!!
짱입니다.

이 아침 바이러스 환란이 어서 지나서
다시 마스크 없는 세상으로 돌아갔으면 싶습니다.
 
수요님들 다음 수요일에 뵈어요~~
     
정다운   20-06-24 21:26
    
선생님 말씀대로 마스크 없는 세상 빨리 되찾고 싶어요.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 쓰고 다니는 모습을 볼 때면 한번씩 좀 슬픕니다. ㅠㅠ
주기영   20-06-18 11:45
    
다운쌤

엘리베이터에서 잠시 데이트 즐거웠습니다.
아이들 챙기랴 바쁠텐데 수필반 후기도 감사합니다.
언제 가려나 하는 시간이 가고... 애들이 떠나는 날이 생각보다 빨리 오더라구요.
지금의 시간들을 잘 누리고 있는 엄마같아 늘 보기 좋아요.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언급하신 신경림시인의 시를 찾아보니,
찡! 하네요. 이곳에 놓습니다.

아버지의 그늘
신경림
 
툭하면 아버지는 오밤중에
취해서 널브러진 색시를 업고 들어왔다,
어머니는 입을 꾹 다문 채 술국을 끓이고
할머니는 집안이 망했다고 종주먹질을 해댔지만,
며칠이고 집에서 빠져나가지 않는
값싼 향수내가 나는 싫었다
아버지는 종종 장바닥에서
품삯을 못 받은 광부들한테 멱살을 잡히기도 하고,
그들과 어울려 핫바지춤을 추기도 했다,
빚 받으러 와 사랑방에 죽치고 앉아 내게
술과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화약장수도 있었다.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나는 자랐다,
아버지가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노라고
이것이 내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나는 빚을 질 일을 하지 않았다,
취한 색시를 업고 다니지 않았고,
노름으로 밤을 지새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이 오히려 장하다 했고
나는 기고만장했다, 그리고 이제 나도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진 나이를 넘었지만,

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일생을 아들의 반면교사로 산 아버지를
가엽다고 생각한 일도 없다, 그래서
나는 늘 당당하고 떳떳했는데 문득
거울을 쳐다보다가 놀란다, 나는 간 곳이 없고
나약하고 소심해진 아버지만이 있어서,
취한 색시를 안고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고,
호기있게 광산에서 돈을 뿌리던 아버지 대신,
그 거울속에는 인사동에서도 종로에서도
제대로 기 한번 못 펴고 큰 소리 한번 못 치는
늙고 초라한 아버지만이 있다.
     
정다운   20-06-24 21:31
    
'애들 떠나는 날' 이 부분에서 잠깐 멈췄어요. 상상만해도 울컥ㅠ 시집,장가 어찌 보내죠? ㅋ 대화 좋아하는 애들과 시시콜콜한 얘기하며 떠드는 지금 이 시간을 맘껏 즐겨야겠군요!

그리고 아버지의 그늘... 마지막 문장에서 여운이 길게 남네요...
성혜영   20-06-19 22:26
    
주기영샘~ 부지런히 또 詩를  찾아 올려주셨군요
 우리네 아버지 상이라 뭉클하네요 
잘 읽고 갑니다~앞으로도 좋은시 부탁드려요
     
정다운   20-06-24 21:34
    
지난 글 읽으면서 선생님 무대의 모습을 떠올려 봤어요. 선생님은 지나간 모든 시간을 열정적으로 멋지게 보냈을 거 같단 생각이 스쳤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