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뜨렸다?"70년 전, 강원도 봉평에서 대화장까지 넘어가는 칠십리 고갯길 앞에서 허생원은 달을 봅니다.
2020년 6월, 우리는 달을 얼마나 찾아 볼까요? 달보다는 화성, 우주여행을 꿈꾸는 시대에 달은 점점 사람들에게서 잊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절에 달 하면 떠오르는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 꽃 필 무렵> 전문을 교수님은 힘차고 다정한 음성으로 낭독해주셨어요. 그것도 1936년 <조광>잡지에 실린 원문인데요. 당시 유명한 화가가 그린 삽화에다 세로줄 편집을 한 잡지의 본문을 복사해서 회원들에게 나눠주셨어요.
이 작품은 작가가 평양에 있을 때 백석 시집 <사슴>을 읽고 고향을 그리며 썼다고 합니다. 여느 소설처럼 서사가 있긴 하지만 대단한 사건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달빛에 푸르게 젖은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 고요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 소금을 뿌린 듯이 흐븟한 달빛 아래 메밀꽃...' 짐승과 풍경, 인간이 하나가 됩니다. 시적인 순간이지요. 서사는 가난한 이들의 민생고로 간략히 말할 수 있는데 이를 시적으로 내용을 바꾸면서 서정소설이 되지요. 산문정신에 위배한 시 정신이라고 하는데요. 그야말로 시 같은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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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께서 두번째로 낭송해주신 작품은 기형도 시인의 <위험한 家系 1969>입니다. 시인의 유년시절 가족사를 서사적으로 보여주는 시였습니다. 시로 쓰여졌지만 소설적 이야기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내면에는 천사와 악마가 있다고 하지요. 두가지가 팽팽하게 맞설 때면 부조리, 갈등이 일어납니다. 이때 화해로운 결말을 못보면 비극이 탄생하지요. 위대한 인간들 중에서도 결국 세계를 이기지 못하여 패배하는 이야기를 비극이라고 합니다. 비극은 비관, 비참이 아니라고 합니다. 비극은 운명에 패배하면서도 아름다움을 준다고요. 햄릿, 오이디푸스를 보면 그 훌륭한 영웅들이 패배를 맞이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왜 아름다울까요? 그 패배가 위엄이 있기 때문이라고 교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기형도의 시가 그렇습니다. 삶의 비극을 다루지만 읽는 저희들은 아름다움을 느끼지요. 그 중에서도 가슴을 찌르는 싯구가 있습니다.
달걀 노른자처럼 노랗게 곪은 달...
냉이꽃처럼 가늘게 휘청거리며...
죽은 맨드라미처럼 빨간 내복이 스웨터 밖으로 나와 있었다. |
처럼처럼처럼.. 시인의 가난한 유년시절을 실감나는 비유로 아름답게 그립니다. 비극적인데 아름다움이 느껴진다는게 참 아이러니 합니다.
위 두 작품으로 열띤 인문학 강의를 하시면서 수필도 이렇게 경계를 위태롭게 넘나들면서 쓸 수 있지 않겠냐고 말씀하십니다. (흐음... 내공이 상당히 필요하겠지요.^^;)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괜히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달이 어디 있을까 하구요. 오랜만에 본 밤 하늘엔 별만 총총 떠있었어요. 저희 집은 양평이라 도시보다는 별이 잘 보입니다.(제 자랑이군요.ㅎㅎ)
잠실반 문우님들. 슬프게도 이번주는 장마가 예고되어 밤하늘을 보기가 어렵겠어요. 마음 속의 달을 자주 꺼내보는 한주가 되었으면 하네요. 다음주에는 회원님들 작품 합평이 있습니다. 어떤 작품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아주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