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문학실전수필(3. 25, 목)
-르네 마그리트와 수필(종로반)
1. 강의
가. 르네 마그리트와 수필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이해 못한다고 해서 기죽을 필요 없다.
“르네 마그리트는 이해되지 않음으로써만 이해된다.” 카프카의 작품이 그러하듯.
-특히 제목과 그림 내용의 연관성에 고심할 필요가 없다. 파이프를 그린 유명한 그림 <이미지의 배반>에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당 연한 걸 갖고 웬 호들갑이람? 이것은 당연히 파이프가 아니다. 그럼 무엇? 그림 이다!
-르네 마그리트의 데페이즈망(depaysement) 기법에서 ‘낯설게 하기’를 원용(援 用)할 수는 있지만, 수필이 마그리트를 닮아서는 곤란하다.
-수필은 독자 친화적 장르다. 읽는 이와의 소통과 공감을 중시한다. 모호한 소재(꿈, 무의식, 뒤엉킨 마음, 부조리한 현실...)를 다룰지라도 모호함 속에 질서가 있고, 난해함 속에 체계와 보이지 않더라도 연결고리가 있어야 한다.
2. 합평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봉혜선)
르네 마그리트전 ‘빛의 제국’ 관람기. 관람기가 수필로 발효되는 동안 여러 혼선 이 드러났다. 쓰고자 한 것이 르네 마그리트 그림에 대한 감상과 해석인가? 아니 면 아픈 엄마를 염두에 두고 전시회를 보는 동안 치유되는(심화되는) 마음을 쓰고자 한 것인가? 정보의 과잉에다 둘 모두를 담으려 해서 혼선에 생긴 듯. 온몸 으로 소재를 찾고 나름 체계를 잡아 배열하려 한 노력이 눈물겹다.
3. 수필 감상
<피어라, 봄꽃>-(김창식)
‘겨울이 폐점을 서두르지만 봄이 오려면 멀었다. 그렇다고 봄이 오지 않는 것 또한 아니리라. 봄은 다만 옛 기억 속 꽃상여처럼 망설이며 더디 올 뿐이다. 찾는 이 없는 봉분(封墳)에 잔디가 돋듯 그렇게, 어떻든 봄은 올 것이다. 그러니 깨어나라 들풀! 피어라 봄꽃! 세상의 끝, 어둑한 들녘,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본문 따옴)
4. 동정
오랜만에 신입생이 들어와 문우들의 격한 환영을 받음. 주인공은 2021.02 이메일로 등단한 차성기 작가님. 전공 서적 등 22권의 책을 낸 분답게 동인지를 선물로 가져와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