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휘트먼(Walter ‘Walt’ Whitman, 1819.5.31.-1892.3.26.)
미국 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꼽히는 시인, 휘트먼(Walter ‘Walt’ Whitman, 1819.5.31.-1892.3.26.)은 우리나라로 치면 만해와 소월을 합친듯한 정도로 미국 국민들에게 강력한 인상을 주고 가장 널리 인용되고 가장 많이 낭송된 시인입니다.
성자같은 얼굴,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휘트먼은 미국의 시인, 에세이스트, 저널리스트,
휴머니스트였으며‘자유의 시형’의 아버지였습니다. 정형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형태로 바꾸고 시의 룰을 완전히 깬 선구자, 휘트먼은 에머슨의 초절주의 뒤에 미국이 낭만주의로 가는 과도기를 다 흡수한 시인으로 초절주의적인 리얼리즘적인, 낭만주의 요소도 등 미국의 모든 문예사조를 총괄한 시,세계문학사에서 무시할 수 없는 시인이었지요.
아버지는 통나무집 짓는 목수, 잉글랜드 계로 <상식>의 저자 토마스 페인((1737-1809)의 인권사상 지지자.아버지는 일곱 아들 중 3명의 이름을 미국의 지도자(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 조지 워싱턴,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으로, 막내는 에드워드
어머니 루이자(Louisa Van Velsor Whitman, 1795-1873)는 네델란드 계. 조상은 퀘이커교도. 휘트먼은 1819. 5. 31, 뉴욕 주 롱아일랜드의 헌팅턴 웨스트 힐즈(West Hills, Town of Huntington, Long Island) 월트 휘트먼 가 246번지에서 9남매 중 둘째로 출생. 아버지(월터) 이름 피해 월트로.
판자 지붕 2층은 1816년 목수 아버지가 직접 지은 집. 시인은 어렸을 때 만토크 등대(The Montauk Point Light) 자주 찾아감. 미국에서 4번째 오래된 등대,조지 워싱턴 때인 1792.4.12. 낙성. 매년 5월 31일 생일에는 여기서 시 낭독회와 음악회 열림. 1881년(62세) 마지막으로 생가 방문.
어린 시절부터 가난했던 휘트먼은 11살에는 학교를 그만두고 사무실 사환, 병원, 롱아일랜드 지역 주간지 인쇄견습공, 식자공(typesetter), 조판공 등. 계속 유력 주간지 등의 계속 유력 주간지 등의 인쇄분야 노동자로 근무하며 독학, 창작 수업.
17살에는 다시 롱아일랜드로 돌아와 주간지 <롱아일랜더(Long Islander)> 창간(7.2), 자신이 기사 써서 편집, 인쇄, 배포까지 하다가 팔아치우고 1842년부터는 신문사 편집부 근무하며 몇몇 신문에다 칼럼도 씀.
1842(23), 뉴욕에서 에머슨의 <자연과 시인의 능력(Nature and the Power of the Poet)>이란 강연 듣고 시인이 되기로 결심.
유일한 장편소설 <프랭클린 에반스 또는 술고래(Franklin Evans; or, The Inebriate)> 출간(1842.11.23.).
일생동안 술을 별로 마시지 않았던 그는 금주 운동(temperance movement) 동조자로 1840년 4월 창립한 워싱터니언 금주협회(The Washingtonian movement, Washingtonian Temperance Society, Washingtonian Total Abstinence Society)에 참가.단편 <루벤의 마지막 소원(Reuben's Last Wish)>도 술로 패가망신한 이야기로 금주의 교훈 다룸.
1846(27), 일간지 <브루클린 이글(The Brooklyn Eagle)> 편집자. 2년간 근무. 이 지역에서 1841년 10.26, 창간해 1955년 종간한 유명한 석간지. 남북전쟁 때 이 신문은 민주당지지.
개인적으로는 노예제도 반대하는 ‘윌못 조항(Wilmot Proviso)’지지.
1848(29), ‘The Free Soil Party’ 창립 멤버로 참여. 1848, 1852년 대통령 선거 때 반짝했던 군소 정당으로 버팔로(Buffalo, New York)에서 창당
다음 시간에는 35살에 낸 첫 시집<풀잎>부터 공부합니다.
<2부> 합평
34.김유/35.문영애/36.민경숙/37.김단영/38.신현순/39.국화리 40.유병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