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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을 사랑한 작가 펄 벅 2교시 (평론반)    
글쓴이 : 김숙    22-04-13 00:46    조회 : 5,291

한국을 사랑한 작가 펄 벅 2교시 (평론반) 

    “한 촛불이라도 켜는 것이 어둡다고 불평하기보다 낫다(It is better to light a single candle than to   complain of the darkness)”

  우리에게 두고두고 경종을 울려주는 메시지의 주인공 펄 벅의 생애와 문학 두 번째 시간이었다. 화사한 봄날에로의 초대 때문이었던지 합평 작품은 평소보다 적었다. 하지만 평론 작품에 대한 열띤 토론이 이루어졌고 강의 양도 평소보다 늘었다. 펄 벅은 우리에게 중요한 작가로 여겨져  요약형식으로 한 번 더 정리했다. 혹시 봄나들이로 불참한 문우 님께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1펄 벅의 생애와 문학

1. 펄벅: Chinese name Sai Zhenzhu, 賽珍珠, Sài Zhēnzhū 펄 시던스트라이커 벅(Pearl Sydenstrisker Buck), 珀尔 巴克 1892.6.26.~1973.3.6

2. 펄 벅의 집안

  펄 벅은 아버지 앱솔름 (독일서 펜실바니아로 이주하여 남북전쟁 때 남쪽으로 이사한 부계. 앱솔름은 9남매 중 둘째, 아들 형제 6명이 전도사)어머니 케리 (Caroline Stulting, 卡洛琳, 1857-1921, 애칭 케리, 아버지는 네덜란드계, 어머니는 프랑스계였는데 펜실바니아를 거쳐 버지니아에 이민 정착, 번영했으나 남북전쟁으로 파괴당했다. 펄의 어머니는 남군보다 북군이 더 난폭, 잔인하다고 느꼈다. 예술적 재능이 탁월했고 신앙에 몸 바치겠다고 작정했을 때 펄의 아버지를 만났으며) 사이에 웨스트 버지니아주(Hillsboro, West Virginia, 弗吉尼亚州)에서 태어났다. 펄의 조상은 두 집안 모두 선교사 집안이었다.

3. 펄 벅의 생애 여정

  선교사 부모에 의해 출생한 그녀는 태어난 지 석 달 만에 시장바구니에 담겨 중국에 갔음을 주장함. (When Pearl was three months old, the family returned to China.) 보모이자 가정교사인 왕() 노파에게 양육되었다. 중국은 1890년대부터 의화단(義和團, The Boxer Uprising)운동이 극성을 부렸다. 우리나라 동학에 견줄 만큼 굉장한 사건이었는데 북경의 55이라는 영화에 잘 나타남. 서양의 제국주의 관점에서 중국을 얕보는 영화다.

  1896(4), 펄은 아버지를 따라 전장(淸江浦镇江, Zhenjiang)으로 옮겼고 1901(9), 7.8, 이때는 상하이에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갔다.

  당시 미국의 중국 인식은 야만 국가로 1882년에 중국인 미국 이민 금지법, 1892년 기어리 법을 10년 연장하기도 했다. 1902년에 다시 10년을 연장했는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중국인을 혐오하며 칭크(chink) 족이라고까지 부를 정도였다. 1900년에 펄은 8살 나이에 국무장관 존 헤이와 그 주요 부관보다도 중국의 언어, 문학, 풍습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었다.라고 전할 정도였는데 그녀는 중국 내에서 또는 일본으로 미국으로 전전하며 여정을 꾸렸다.

  혼인과 출산을 살펴보면 1917(25), 2월 약혼했으며 5.30, She married an agricultural economist, John Lossing Buck(约翰 洛辛 布克). 결혼하면서 이건 실수야. 후회하게 될 거야.’라는 경고성 들었다고 한다. 펄 벅은 순수 선교에 뜻이 있었으나 남편(John Lossing Buck, 1890-1975)은 복음보다 농민 경제 향상에 더욱 관심을 가진 인물이었다. 이 무렵 펄 벅은 대지의 배경을 꿈꾼다.

  1918(26), 9-10, 펄 집 앞 일대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복부에 총 맞은 여인 도우려 했으나 죽고 말았고 1919(27), 5.4운동. 로싱, 난징(南京)(Nanking, 金陵大学) 교수. 펄은 난징대와 국립대학(National Central University, 国立中央大学, renamed to Nanjing University,南京大学 in 1949)에서 영어를 강의했다.

  1920(28), 3.4, 첫 딸 출산. 아이는 페닐케톤뇨증(PKU, phenylketonuria), 본인은 자궁종양. 더이상 임신 불가능. 부부 함께 6월 말경 미국에서 수술했다.

  그녀는 1931, 경극배우 메이란팡(梅蘭芳) 만남. , 폭우로 난징 대홍수. 100만 명 익사, 1400만 명 이재민. 수호전영어 완역(영역 처음); 239.

  11, 시인 쉬즈모(徐志摩)가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는데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 유학, 5.4 주도. ‘중국의 셸리라고도 불렸고 펄 벅의 애인이라고도 했다. 나중에 그를 모델로 베이징에서 온 편지(Letters from Peking(1957년 발간) 를 썼다.

  펄 벅의 기독교 인식은 어머니로부터 달라지는데 어머니의 생활을 보고 여성에 대한 차별, 부당성을 인식했고 동시에 선교단을 정신적 제국주의로 호칭했으며 1932(40), <다시 생각하는 선교(Re-Thinking Missions)> 출간으로 해외 선교에 큰 충격을 줌.

  남편과의 파탄: 1933(41), 산아제한을 예견한다. 인종 문제 거론 등으로 보수파로부터 비난.

  5.1. 보수파의 공격으로 선교사를 사임했다. 남편과 중국 가려고 유럽으로 출발, 리처드 부부 동행했는데 좀 민망하고 뻔뻔한 동행이었을 수 있다.

  영국-스웨덴-이탈리아-프랑스 함께 관광. 펄은 니스에서 이혼 선언, 따로 중국행(10.2. 상하이 도착). 상하이에서 린위탕(林語堂)을 만났다.

  펄 벅은 평등주의자였다. 선교사들은 백인 우월주의자들. 하나님이 자기들만 구원했다고 믿음.

4. 그녀의 문학과 대지성공

  1920(28), 10, 중국 귀환. 펄 벅은 더이상 아이를 출산할 수 없었고 산문을 쓰기 시작했다.

  1923(31), 생활 에세이 <중국에서(也在中国)> 1924(32), <중국에 있어서의 >, <중국인 학생의 마음> 등 발표. 1925(33), 926(34), <중국과 서양>, <중국 여성을 말한다> .

  1930(38), 5월 말, 대지(The Good Earth) 완성원제목은 왕룽 출판사 월시가 대지(The Good Earth)로 수정 제안하여 대성공을 이뤘다.

  미국에서는 북클럽 도서로 선정되었으나 루쉰은 가난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리얼리즘 묘사 등 제국주의적 관점의 백인 우월주의라 비판했다. 중국에서 한동안 이 작품이 환영받지 못하기도 했다. 강용흘(姜龍訖, Younghill Kang, 1903~1972) <초당(草堂>)도 미성년자 축첩행위 등 중국인의 품성을 도덕적으로 비하했다고 비판했다. 선교사들도 동조했는데 펄 벅은 내가 가공한 게 아니고 직접 듣고 본 청조 말기의 시대상 자체라고 응답. 1932년에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5. 노벨상 수상, 이후 평화 사상 강조

  1933, 연말 경, 리처드가 난징을 방문했고 둘은 함께 여행했다. 티베트-웨양(岳陽)-인도-베이징. 베이징에서 에드가 스노(<중국의 붉은 별>), 헬렌 스노(<아리랑>) 등을 만났다.

  1934(42), 2-3, 월시와 여행. 홍콩- 말레이시아-필리핀-난징. 5.30, 캐나다 향발, 도미, 중국과의 영원한 이별. 1934년 미국으로 영구 귀국함. 딸이 의탁 되어 있는 뉴저지로 돌아와 월시와 재혼했다.

  1936(44), 아버지의 전기인 <싸우는 천사들(Fighting Angels)>(1936), 어머니의 전기인 <어머니의 초상(The Exile)>(1936). 네루 자서전 서평 쓰며 그를 지지했다.

  1937(45), 1월 말, <대지> 영화 상영. 펄은 중국 배우 쓸 것을 강조했다.

  1938(46), 12, 노벨상 수상. 诺贝尔文学奖부당해. 드라이저가 받았어야 했는데.” 미국에서 3번째였는데 그녀의 수상에 미국 문단은 격분했고 부정했다펄은 수상 연설 중 중국 문학, 특히 소설에 대해. <홍루몽>, <삼국지> 등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1939(47), 매일 8-12장 분량(2500단어)의 글 집필. 소설<애국자>

  4, ‘일본침략협조 중단을 위한 미국위원회(American Committee for Non-participation in Japanese Aggression)’ 위한 라디오 대담.

  단편 <황금의 얼굴>에서 미국 산업가들의 피로 얼룩진 이익 추구를 그렸음.

  르위 앨리(Rewi Alley, 40, 뉴질랜드)의 공화(工和, 함께 일하자) 산업 운동 지지. 산업협력체 인더 스코(Indusco) 운동,

  펄 벅 여성운동의 위치: 미국여대생연합(AAUW)은 평등권 반대입장. “평등권이 우리 모두를 함정에 빠트리기 쉬운 우애. 평등. 민주주의와 같은 교활한 문구 중 하나.” 라고 했고 당시 미국은 유부녀 직업 갖는데 80%가 반대했다. 펄 벅은 이들보다 진취적이어서 반전운동을 강력히 전개했는데 사회개혁뿐 아니라 여성운동에서도 제일 앞장섰다.

  후버(John Edgar Hoover), 연방수사국(FBI의 전신) 창설부터 48년간 죽을 때까지 국장(1924-1972)을 지냈는데 문인에 대한 증오심. 서평분과위원회를 만들어 내사. 펄 벅에 관한 건 300쪽이 넘었다. 한 언론인은 그녀를 토마스 페인<<상식>>의 정신적 후계자라고 평하기도 했다.

  펄의 사회, 정치 전반 비판: 1939. 5, 오델 월러 사건 비판. 백인 지주와 말다툼 하다가 지주 살해 혐의로 사형선고 받은 흑인 소작농. 펄은 그녀의 운명을 미국적 정의의 시금석이며, 국가 실패의 증명이라고 비판했다. 영구 평화를 위해 미국은 군사만이 아닌 도덕적 지도력을 강조했다.

  국제 평화와 독립 원칙에서 인도 독립을 주장했다. 처칠의 굽힐 줄 모르는 주장과 거리를 두라고 충고했으며 1942.2.10, 28명의 미국 거주 노벨상 수상자 중 절반이 참석한 축하연에서 문명 세계를 구하는 전쟁이 아니라 단지 유럽 문명을 구하기 위한 전쟁이라 비판했다. 전후 아시아 식민국가를 풀어 줄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비판했다.

2부 합평: 이영옥. 양상훈. 이여헌


김숙   22-04-13 01:04
    
수업 끝나고 낮 동안 쏘다닐 일이 있어서 수업 후기가 늦었습니다. 기억하고 싶은 작가여서 다시 정리해 보았습니다. 일독하고 싶으신 문우 님께 혹시 도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박진희   22-04-13 09:15
    
김 숙 선생님, 꼼꼼 & 촘촘한 후기에 감사드립니다! 펄 벅을 공부하면서 강용흘 (1903-72), 최초의 재미작가,에 대해 알게되었네요. 1932년 그녀가 <대지>로 퓰리처상을 받을때 경쟁작인 <초당>을 쓴 강 작가를 위로했다는 것도... 반전운동 뿐아니라 여권운동에 가장 앞장섰던 그녀에게 격한 박수를 보냅니다!

P.S. 혹시 강용흘 작가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곳을 참고 하세요.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panem&logNo=70052194964
김숙   22-04-13 10:12
    
맞아요. 선생님 덕분에 강용흘 님을 다시 한번 복기해봅니다.
재미교포 문학가 1호인 강용흘은 거의 천재 수준이었다죠. 루신의 대지에 대한 평을 듣지 않고도 『대지』를 나쁘게 비판했었는데 나중에 펄 벅을 만나서는 좋아했다고도 하고요. 가장 한국을 정확하게 본 인물이라는 데 놀라웠고 8.15 후에 한국으로 불려와 미군정을 코치했는데 미국이 듣지 않았다고 하며 첩보요원으로 임무가 주어졌는데 몇 달 만에 미군정을 욕했다고요. 하도 욕을 해 본국으로 쫓겨갔다죠. 미국에서도 비판하다가 탄압받는 작가가 되어 가난하고 불행하게 일생을 마친 점이 안타까웠습니다. 반면 이런 훌륭한 작가가 우리나라에도 있었다는 점에 자긍심을 느껴보았습니다.
임길순   22-04-13 10:46
    
집안에 일이 있어서 중간에 나갔는데
김숙 선생님의 후기로 마무리 공부했습니다. 
펄벅의 반전운동, 여성운동 등 꼼꼼한 후기 감사합니다.

백인우월주의, 중국의 중화사상 등을 생각하면서 우리 민족의 아픔을 기억한답니다.

강용흘 작가를 한번 자세히 찾아봐야 겠어요.
그 시절에 미국에 대한 사실적인 용기있는 판단을 내렸다니 대한민국 문학사의 자랑이네요.


김숙샘 감사하구요.
박진희 샘
반가워요.
김숙   22-04-13 11:51
    
임길순 선생님 댓글 감사합니다.^^
후기가 마무리 공부에 도움 되셨다니 속없이 기분 좋아져요. 선생님.ㅎㅎ

이번 기회 펄 벅을 통해서 아니 임헌영 교수님을 통해서? 선교사의 역사와 자기들만 하나님으로부터 구원 받았다고 여기는 백인들의 의식에 대해 한번 더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강용흘 작가에 대한 자료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하는 데 저도 더 찾아보고 싶습니다.
오정주   22-04-13 13:32
    
알라딘 장바구니에 <중국의 붉은 별> <홍루몽> 두 권을 담은 날 이었어요.
다음 기가 중국 문학이니 사서 읽어봐야 할 책들 입니다.
<대지>를 너무나 흥미진진 읽었던 기억이 새로운 날, 반제국주의 식민주의 여권 신장, 아동 보호 인종 차별 반대등의 운동을 한 펄벅은 정말 위대합니다. 김숙 선생님의 찐한 강조가 들어 간 후기로 복습 잘했습니다.
늘 감사드려요^^
김숙   22-04-13 14:55
    
반장님 댓글 고맙습니다.
역시 반장님은 대단하시네요.^^
벌써 다음 학습 교재 준비하시다니요.
저도 본 받아야겠습니다.
곽미옥   22-04-13 16:16
    
김숙 선생님~ 후기쓰시느라 애쓰셨어요. 꼼꼼하게 정리해
주셔서  다시 공부했어요. 펄벅의 평화사상과 반전운동 전개는
노벨상 수상에 많은 기여를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중국어 공부할 때 <홍루몽> 을 읽었는데 방대한 중국의
가족사를 보며 감동을 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지금은 가물가물하지만...펄의 추천작이라니 새삼 기쁜마음이네요.
펄 벅의 한국인 양녀도 있다는 정보에 또 감동의 물결이. .. 못 다 읽은 <대지 >다시 도전해야겠어요.
김숙   22-04-13 16:56
    
곽미옥 선생님
바쁜 중에 댓글 주셔서 감사드려요^^
선생님들의 댓글이 쌓이는 동안  정보가 늘어나고 수업이 더욱 밀도있어 지는 걸 느낍니다.
《홍루몽》은 저도 챙겨 읽으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