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강의실 >  한국산문마당
  소설의 인물 형상화 (소설반 22.11.8)    
글쓴이 : 김성은    22-11-13 20:19    조회 : 3,229

입동이 지나선지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어요. 1교시 끝나고 실내가 춥다는 말씀이 있어 올 가을 처음으로 히터를 틀었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게 아쉽기만 하네요. 

<인물 형상화>

1. 인물 형상화 - 유형과 전형 : 조르주 상드와 발자크

“소설은 분석이기보다는 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실적인 상황과 사실적이고 진실에 가까운 성격이 하나의 생각이나 감정을 대변하는 인물을 중심으로 모아져야 합니다. 결국 이 인간 전형을 이상화시켜서 그 인물에게 우리가 열망하는 모든 힘과 우리가 상처 입은 모든 고통을 겪게 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그는 매우 예외적이고 중요한 존재로 묘사되어야 하며, 속물들과는 다른 힘과 매력을 가진, 또 결코 일상적이지 않은 고통을 겪는 그런 인물로 그려져야 합니다. 한마디로, 주체가 되는 감정을, 그것을 더욱더 부각시킬 수 있는 조건 속에서 이상화시키는 것, 이것이 바로 소설인 것입니다.” (조르주 상드)

당신은 그래야만 하는 인간을 찾지만, 나는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취할 뿐입니다. 둘다 틀린 것은 아닐 겁니다. 두 길 모두 같은 목적지를 향하고 있으니까요. 저도 예외적인 존재를 좋아합니다. 저도 그 중 하나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저는 제 안의 저속한 존재를 부각시킬 필요를 느낍니다. 그리고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것을 감추지 않습니다. 그런데 당신에게는 아닌 것 같지만, 제게는 이 저속한 존재가 더 흥미롭습니다. 저는 그를 극대화하지요. 당신과는 반대로 그들의 추함과 어리석음을 말이에요. 나는 그들의 기형적인 모습을 더욱더 괴상하고 그로테스크한 모습으로 뒤틀리게 합니다. 당신은 잘 모르시는 것 같지만, 당신은 악몽과 같은 사람이나 사물은 보지 않으려고 하십니다.”(발자크)

우연은 이 세계의 가장 위대한 소설가다. 따라서 풍부해지기 위해서는 그 우연을 연구하기만 하면 된다. 프랑스 ‘사회’는 역사가가 되려고 하는 참이었고 나는 오직 그의 비서가 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악덕과 미덕들의 목록을 작성함으로써, 정념들의 주된 현상들을 끌어 모음으로써, 성격들을 묘사해 나감으로써, 사회의 중요한 사건들을 가려냄으로써, 여러 동질적인 성격의 특징들을 결합시켜 인간 전형들을 만들어냄으로써, 아마도 나는 많은 역사가들이 지나쳐 버린 풍속의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발자크 『인간희극』서문)

: 조르즈 상드가 말한 인간 전형은 결국 유형적 인물이다. 이를테면 50대에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어떤 한 사람이 있다면 이 인물에게 그런 사람들이 지닐 법한 어떤 열망이라든지 그런 사람들이 추구할 법한 어떤 가치에 대한 태도라든지 이런 보편적인 것들을 주입시켜서 그 인물을 그려내야 한다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유형적 인물은 현대 소설에 와서 인물의 개성이라는 게 부각이 되었는가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유형적 인물은 대체로 당대의 우리가 보편적으로 지향하는 어떤 윤리관이라든지 도덕관에 의거해서 이러이러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대변하는 인물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반해서 발자크는 “당신은 그래야만 하는 인간을 찾지만 나는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취할 뿐입니다.” 소설 쓰면서 가장 힘든 일은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고 하는 어떤 지향점과 마땅히 존재하는 것 사이의 어떤 긴장 그걸 견디기가 참 힘들다는 것이다. 지독하리만큼 현실의 어떤 삶이라든지 인물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소설로 옮긴다는 게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소설이 아무리 막 나가도 현실보다 막장일 수는 없듯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쓰고자 하는 소설에서 그 지독함을 실현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진짜로 해야 될 일이다. 이걸 해내야만 사실은 내가 원하는 소설을 쓸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어떤 방향으로 이룰 수 있다고도 얘기할 수 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판단을 할 때에는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를 가지고 그 사람을 판단하게 되어 있다. 그때 우리가 실수를 저지르는 데 그 사람이 이런 삶을 살아왔다고 해서 바로 그것이 그 사람의 가치관을 곧이곧대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판단한다는 점이다. 발자크가 말하는 우연성은 그런 의미로서의 우연성이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이런 삶을 살아왔으니까 이 사람은 이러이러한 가치관을 신봉하고 그것들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는 관념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게 있기는 하다. 우리가 대체로 사람들을 유형화하면서 뭔가를 아는 것처럼 느끼니까 그렇다. 하지만 또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결코 유형화될 수 없는 자기만의 개성들, 자기만의 어떤 특수성들, 특별함들을 다 지니고 있다. 그걸 얘기하는 거라고 생각을 하면 된다.

이 인물 형상화와 관련해서 조르즈 상드와 발자크의 논쟁을 소개한 까닭은 우리가 이러이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이 아니라 물론 발자크처럼 생각한다고 해서 발자크가 그려낸 인물이 현실의 인간과 똑같다고 할 수는 없다. 사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간은 전적으로든 절반 정도는 기호화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건 실제 인간이라고는 할 수 없다. 소설의 인물일 뿐이지 그게 진짜 인간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뭐가 됐든지 간에 조르즈 상드와 같은 태도를 지녔던 발자크와 같은 태도를 지녔든지 간에 소설의 인물과 현실의 인물을 100% 완벽하게 일치하는 통일한 인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발자크처럼 생각했을 때의 이점이 있다면 우리가 최소한 우리 소설에서 어떤 인물들을 유형적으로 접근해서 알고 있는 방식으로 그 인물을 다루고 그 인물을 그리려고 하는 태도를 벗어나서 진짜로 느끼는 것들 진짜로 생각하는 것들, 그러니까 마땅히 이러이러할 것이라는 것을 넘어서서 나는 이러이러하다고 알고 있었는데 실제 작가인 내 입장에서 내가 느끼고 본 사람들은 뭔가 다른 게 있다. 그것을 포착해서 소설에서 다룰 수 있게 된다는 점. 그게 발자크 같은 태도가 지니고 있는 이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