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독약』
제 3장 새벽이 올 때까지
11월 13일 지난주 이어 엔도 슈사쿠의 『바다와 독약』 책과 영화를 함께 하며 마무리 했습니다. 3장은 생체 해부 실험에 참가한 의사 스구로와 토다의 내면에 흐르는 심리 묘사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수술실 벽에서 서성일 뿐 끝내 수술에 참여하지 않은 채 고뇌하는 스구로 혼잣말입니다.
‘나는 아무 짓도 안했어. (...) 맞아. 너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 하지만 너는 언제나 거기에 있었지. 거기에 있으면서 아무 짓도 하지 않은 거야.’ (창비 164쪽)
스구로와 달리 적극적으로 실험에 참여한 토다가 속으로 내뱉은 말도 옮겨봅니다.
‘내게는 양심이 없는 걸까? 나뿐 아니라 다른 동료들도 모두 나처럼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무감각할까?‘(172쪽)
양심의 가책을 심하게 느끼는 스구로에 비해 토다는 타자의 눈만 의식할 뿐입니다. 토다에게 죄책감이나 후회의 감정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작가는 『침묵』에서 자신감에 넘치고 밝은 예수 얼굴을 점점 지치고 괴로워하는 모습으로 그립니다. 이를 통해 로드리고 신부가 겪는 감정과 생각의 변화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바다와 독약』에서도 바다에 관한 묘사를 읽다보면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일렁이는 감정과 번민하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파랗고 하얀빛 바다에서 어둡고 검은 바다 빛으로 전개되는 주요 장면들 인용합니다.
1) 옥상에 올라갈 때마다 스구로는 때로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파랗게 빛나고 때로는 음울하게 검은빛을 띠는 바다를 바라보곤 했다. (...) 형형색색으로 변하는 바다는 그에게 다양한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47쪽, 의사 스구로)
2) 암울한 큰 북소리처럼 밤바다의 울부짖음이 제 가슴에 퍼졌습니다. (109쪽 간호사 우에다 노바)
3) 토다는 스구로가 하얗게 빛나는 바다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검은 파도가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어두운 소리가 마치 모래 소리처럼 나른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182쪽, 의사 토다)
생체 해부가 진행되는 수술실 장면은 청각적인 묘사가 두드러집니다. 무심히 흐르는 물소리, 숨죽은 듯 고요한 가운데 들려오는 전기 메스와 가위 소리, 카메라 촬영기 돌아가는 소리는 어떠한 동요도 없이 죄를 범하는 파렴치한 인간들을 적나라하게 조명합니다. (157쪽) 수술대에 누워 죽어가는 포로가 내는 신음소리 (160쪽)와 아무런 죄책감 없이 커다랗게 웃는 장교들이 묘한 대조를 이룹니다. (144쪽)
소설 전반에 흐르는 해질녘 석양빛도 달리는 트럭이 일으킨 먼지만큼 인물들이 처한 암울한 상황을 더욱 부각시켜줍니다.
작품을 읽는 내내 스구로의 검푸르게 부어오른 얼굴이 소설 제목 『바다와 독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12, 13, 22, 27, 30, 139쪽) 죄의식이라곤 느끼지 못하는 집단에서 갈등하는 스구로의 일관된 얼굴빛과 표정에서 독약으로 마비된 사회 모습이 보입니다.
토다가 스구로에게 가르쳐주어 기억하고 있는 시가 처음과 끝에 나옵니다. (48쪽, 183쪽) ’양떼구름 뭉게구름 하얀 솜 떼‘에서 ’새벽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작가의 간절함이 묻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