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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지방을 넘다> 루쉰 <쿵이지>를 읽고. 3월 4일 용산반    
글쓴이 : 차미영    24-03-06 17:58    조회 : 3,552

문지방을 넘다

 

34일 겨울학기 마지막 수업으로 루쉰의 쿵이지를 읽었습니다. 1919년 발표한 단편소설인데 1인칭 의 시선으로 쿵이지란 별명을 지닌 청나라 말기 몰락한 한 지식인을 그립니다. 루쉰은 쿵이지를 통하여 당대 낡은 유교적 가치관을 희화화하여 비판합니다. 짧은 글이지만 담고 있는 메시지가 예사롭지 않아 루쉰의 탁월한 안목이 돋보입니다.

루쉰의 생가가 있는 마을 루전의 셴형주점이 공간적 배경으로 나옵니다. 술 데워주는 사환으로 일하던 는 이십여 년 전을 회상하면서 쿵이지를 떠올립니다. ‘만물이 모두 형통함이란 뜻을 지닌 셴형주점은 현실에 있는 헤트로토피아 역할을 하지요. 각박한 삶의 현장에서 조금 숨 돌릴 공간이 필요한 건 지금 우리에게도 절실합니다. 음악과 술로 온갖 시름을 잠시 잊고 함께 즐기는 순간이 영원하길 본능적으로 바라지 않을까요.

쿵이지는 과거 시험에 낙방한 후 필경사로 밥벌이를 하지만 술을 좋아하고 천성이 게으릅니다. 비록 그가 높은 신분을 상징하는 장삼을 입고 있지만 남의 물건에 손을 대고 제때 술값을 지불할 능력도 갖추지 못한 스러져가는 인텔리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다만 루쉰이 광인일기에서 그랬듯 아이들에겐 진심으로 대하는 쿵이지의 또 다른 모습도 그려집니다. 한동안 종적을 감춘 쿵이지가 앉은뱅이로 전락해 주점을 다시 찾아옵니다. 흙 묻은 손으로 들어와 탁자 밑 문지방을 마주합니다. 다리가 부러진 쿵이지가 기어 들어오지 않고 걸어 들어온다고 표현한 루쉰에게 쿵이지를 향한 연민이 서려 있는 듯합니다. 루쉰은 쿵이지를 현실감이 떨어진 패배한 인물로 그리지만 악인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주변의 비웃음 속에서 천천히 문지방을 넘어선 쿵이지가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죽었으리라 짐작할 뿐 소설은 여기서 끝납니다. 문지방을 넘는다는 표현이 루쉰의 광인일기에도 나오지요. “그저 문지방 하나, 고비 하나만 넘으면 되는데” (9번 일기)

문지방이 지닌 여러 다양한 의미를 짚어보며 카프카의 변신에 나온 문지방이 떠올랐습니다.

갑충으로 변한 그레고르 잠자가 방에서 나오지 못한 1장에서 열쇠쟁이가 열어준 문을 넘어서는 장면 (민음사 24)이 있습니다. 문을 넘어서지만 아버지가 휘두른 폭력으로 피를 흘리며 방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지요.

2장에서 어머니와 여동생이 그의 방 가구들을 옮긴 후 그는 수치와 슬픔으로 몸이 뜨거워져 문을 떠나 문 곁에 놓인 서늘한 소파로 향합니다. (41) 이후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아 부상을 당한 채 다시 방으로 돌아갑니다.

마지막 3, 밖에서 들려오는 여동생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려고 그레고르는 문지방을 넘지만 그의 흉측한 모습에 가족과 하숙인들은 극도로 혐오합니다. 그들 곁을 떠나 스스로 방으로 돌아와 고립된 채 죽음을 맞는 그레고르. 이보다 더한 비애가 있을까요. (64)

카프카는 문지방을 경계로 주인공의 삶과 운명이 달라지는 걸 보여주는 듯합니다. 갑충으로 변한 상황에서도 가족들 특히 여동생에게 바이올린 음악학원을 보내려고 애쓰는 모습이 측은하다 못해 낯설어 보입니다.

지난 해 여백서원 탐방에 앞서 전영애 교수님의 시인의 집을 읽었습니다. 우연인지 문턱에 관한 멘트가 책 처음과 끝을 장식한 걸 봤습니다. 첫 번째 소개하는 시인 트라클의 어느 겨울 저녁고통이 문턱을 돌로 굳혀놓았었다”(문학동네 32)란 시구가 있습니다. 넘어가야할 문턱이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굳혀진 돌로 표현할까요.

마지막 장에 나오는 괴테의 시 마리엔바트의 비가에도 문턱이 쓰여 있습니다. 교수님은 이제 서둔다. 이제 멈춘다. 발걸음이 문턱을 피하며”(480)에 적힌 문턱을 언급하며 우리가 마주하는 여러 문턱을 이야기합니다

생각 없이 넘어버린 문턱, 힘겹게 넘어야 할 문턱, 결코 넘을 수 없는 문턱, 생사를 가르는 마지막 문턱까지. 루쉰과 카프카의 문지방이 전영애 교수님이 말씀하신 문턱으로 모아지는 듯합니다. 어떤 문턱 앞에선 머뭇거리기도 때론 좌절하기도 하겠지만 그때마다 작가들이 통찰한 문지방이 스치듯 가슴에 새겨질 것 같습니다.

 

 

 


신재우   24-03-07 09:22
    
1.루쉰『쿵이지』에 나오는  '셴형(咸 亨,함형)주점'에 가서 황주를 마시는 문학기행이 기다려집니다.
2.경복궁에 가서 서쪽에 있는 '함형문'을 보고싶네요. 함형(咸亨)은 품물함형(品物咸亨)에서 온 말로
  "만물이 모두 형통함"을 뜻한다.『역경(易經)』참조.
3.엔도 슈사쿠『사해 부근에서』중<10,쑥을 파는 사나이>읽었습니다. 쑥장사를 하는 즈보라를, 우연히 억지로
  십자가를 진 칠칠치 못한 '즈보라'를 엔도는 13번째 사도로 쓰고 싶었던 것이다.
4.김미원 선생님의<그곳이 천국이었을까>합평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