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의 반짝임
3월 11일 봄 학기 첫날 프란츠 카프카(1883~1924)를 만났습니다. 2024년 올해는 카프카 사후 백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이기도 합니다. 카프카의 아포리즘적 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밤에』 두 편을 함께 읽었습니다.
“책은 우리 내면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된다네.”
카프카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글귀입니다. 오래전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를 읽었습니다. 이보다 더 서늘하게 꽂힌 책 제목도 없는 듯합니다. 카프카의 명언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여러 작품들은 이미 꾸준히 읽어온 것임에도 작가의 독법에 따라 읽으면 카프카가 던진 메시지를 뼛속까지 체험하게 됩니다. 번뜩이는 지성과 감성으로 무장한 저자가 독자에게 더없는 감동을 안겨줄 때 자신도 모르게 그 책으로 빠져듭니다. 그 즈음 『책은 도끼다』에 디테일하게 스케치된 『그리스인 조르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다시 만나며 그들 캐릭터에 몰입했던 순간들은 조르바처럼 살아있는 기쁨을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카프카의 이름에서 유래된 독일어 형용사 카프카에스크 (kafkaesk)는 카프카 글을 마주할 때 스치는 불확실한 느낌과 그의 내밀한 성향까지 두루 포함된 듯합니다. 영어 단어 uncanny (섬뜩한)가 카프카적인 의미에 가장 잘 어울립니다. 뭐라 규정하기 힘든 카프카 글은 여러 번 곱씹어 읽어도 딱히 잡히는 게 없을 정도로 알레고리가 많습니다. 가장 객관적으로 관찰하듯 무미건조하게 써내려간 글 한 줄마다 함축하고 있는 힘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아버지와의 갈등이 첨예하게 드러난 『판결』도 들여다보지 않으면 놓치는 장면들이 많습니다.
체코 프라하의 유대인 출신인 카프카는 평생 프라하를 떠난 적이 거의 없습니다. 마흔 한 살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오롯이 그의 삶은 문학에서 가장 빛났습니다. 카프카는 결핵으로 고통스런 삶을 마감하기 전 그의 마지막 연인 도라와 함께 한 자리에서 원고들을 불태워 없애기도 했지요. 반면 그의 절친 막스 브로트 덕분으로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귀한 작품들도 있습니다.
카프카에 심취한 발터 벤야민(1892~1940)은 그의 지적 영혼의 동반자인 숄렘에게 보낸 편지(1927년 11월 베를린)에 “내 진영에는 아픈 자의 천사로서 카프카가 있네” 라고 적었습니다. 벤야민이 소장했던 파울 클레의 ‘새로운 천사’를 가만히 바라보면 카프카의 커다란 슬픈 눈망울이 겹쳐 보입니다. 고립된 채 내몰려 어딘가를 멍하니 응시하는 천사 그림에서 벤야민은 카프카를 의식한 듯합니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밤에』 두 짧은 글은 밤이 주 무대입니다. 보험회사 관리 직원이었던 카프카는 낮에 일하는 대신 밤에 주로 글을 썼다고 하지요. 밤은 낮 동안 숨어있던 무의식이 비집고 나와 몽롱한 상태로 꿈꾸듯 사유가 새롭게 열리지요. 카프카는 『밤에』 깨어있는 “한 사람은 있어야 한다.”고 썼습니다. 그 한 사람이 해야 할 책무가 무엇인지 카프카는 소설에서 보여줍니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 나오는 무심히 외면하는 그들을 카프카는 비판하는 건 아닐까요.
눈앞에 뻔히 드러나는 부조리한 세상에 굴하지 않고 떳떳하게 마주할 용기가 카프카 내면에 꿈틀거리고 있지 않았을까요. 카프카가 그린 작품 속 인물들은 작가 본연의 모습이 투영된 듯 보입니다. 권력과 불의에 내몰리는 소외된 사람들 곁으로 다가서는 카프카의 면모도 그려봅니다. 유대인의 떠도는 삶에서 탈출을 꿈꾸지만 줄곧 프라하를 벗어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 카프카. 세상 바깥의 고통스런 소리에 귀 기울이며 작품으로 빚어낸 카프카의 예민한 감각이 눈부시듯 반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