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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프카 세계를 배회하다> 4월 15일 용산반    
글쓴이 : 차미영    24-04-17 23:51    조회 : 872

카프카 세계를 배회하다

 

415일 프란츠 카프카(1883~1924)의 단편 형제 살해」 ⸀도시의 문장(紋章)을 읽었습니다. 카프카의 대표적인 장편소설 」 ⸀소송」 ⸀아메리카못지않게 짧은 글에도 카프카의 독특한 매력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을 패러디한 프로메테우스」 ⸀포세이돈」 ⸀세이런의 침묵에서 보여주듯 카프카는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독창적으로 새롭게 재해석합니다. 신화뿐 아니라 유대인 출신 카프카는 유대 신학도 신중하게 다룹니다. 유대적인 영역을 직접 드러내지 않더라도 넌지시 암시하거나 우화를 통해 전략적으로 접근합니다. 안개 자욱한 숲속을 헤매듯 카프카에 다가갈수록 불투명한 세계가 펼쳐지곤 하지만 초자연적 신비나 환상으로 빠지지 않습니다. 부조리한 현실 비판적인 글들이 오히려 더 눈에 띕니다. 상징과 비유가 많다는 건 그만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프랑스의 실존주의 작가 샤르트르, 까뮈에 의해 카프카가 프랑스에 알려졌습니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발터 벤야민(1892~1940)도 카프카를 연구하면서 자신의 사유 세계를 확장해 나갑니다. 벤야민은 지적 동반자 이스라엘의 시오니스트 게르숌 숄렘과 카프카 글을 읽으며 편지로 서로 의견을 나눕니다. 카프카가 유형지에서를 낭송하려고 1916년 뮌헨에 왔을 때 벤야민은 아쉽게도 카프카 만날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발터 벤야민 평전130) 카프카 사후 10주기를 기리며 1934년 벤야민은 에세이 프란츠 카프카를 씁니다. 벤야민 또한 유대인이며 친구 숄렘 영향도 받아서인지 카프카의 성서적 아포리즘 글에 심취합니다.

 

형제 살해는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가인과 아벨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벤야민의 프란츠 카프카에 형제 살해 글이 연극의 한 장면 같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카프카와 현대길 출판사 74) 살해자 슈마르는 저녁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 베제를 골목길에서 기다리다 그가 나타나자 칼로 세 번 찔러 죽입니다. 살인을 한 구체적인 동기도 밝혀지지 않은 채 경찰에 끌려가며 소설은 끝납니다. 근처 이층 창문에서 살해 장면을 목격하는 팔라스가 등장하는데 그가 단순 방관자인지 동조자인지 불분명합니다. 슈마르와 베제가 형제가 아닌데도 제목을 인류 최초의 살인으로 알려진 창세기의 형제 살해를 모티브로 삼았습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호모 사피엔스형제 살해범’ (Our Brothers’ Keepers, 김영사 33~41) 대목이 있습니다. 영어 제목은 인류 모두가 형제임을 의미하겠지요. 하라리는 우리 조상인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인종청소해버린 사실을 상기시킵니다.(39) 생존투쟁의 결과는 폭력과 대량학살을 초래하지만 관용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전멸시킨 이유를 하라리는 다음 한 문장으로 간결하게 말합니다.(40)

그들이 (네안데르탈인) 우리가 무시하기에는 너무 친숙하고 관용하기에는 너무 달랐다는 것” (They were too familiar to ignore, but too different to tolerate.)

인간 본성에 깃든 선과 악을 다시 조명해봅니다. 프로이트가 말한 죽음 충동의 다양한 사례도 떠올려봅니다. 의식 밑바닥에 잠재된 부정적인 감정이 어떻게 분출될지 모릅니다. 폭력, 살인 등 파괴적인 행위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카프카의 형제살해입니다. 하라리가 말한대로 우린 모두 형제인데요. 카프카도 깊이 공감하겠지요.

 

도시의 문장도 구약성서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에 모티브를 둡니다. 성경에서는 인간이 하늘에 가닿고자 바벨탑을 쌓지만 여호와의 분노로 탑 쌓기를 멈춥니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화가 난 신은 인간에게 벌을 내립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던 인간의 언어를 흩뜨려 놓음으로써 인간을 혼돈에 빠뜨리지요. 카프카의 도시의 문장에서는 인간들이 탑을 쌓는 장면이 아닌 쌓기 전 준비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마치 자유로운 작업 가능성의 여러 세기들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듯이 이정표, 통역관, 근로자 숙소와 교통 연계로에 대해 너무 많이 고려를 했다.”

위 문장에 통역관이 나오는데요. 창세기와 달리 하나님의 진노 이전에 이미 언어가 흩어졌음을 알 수 있는 대목 같습니다. 도시의 문장은 바벨탑을 쌓을 거란 목표는 확고하지만 진작 실행에 옮기지 않고 기술의 진보를 이야기하며 자꾸 미룹니다. 카프카 소설에 유예하는 전략이 가끔 나옵니다. “인류의 지식이 증진되고 건축술이 진보했으며 또한 계속 진보해나갈 것이다. (...) 무엇 때문에 오늘 벌써 기력의 한계까지 지치도록 일하겠는가?”

이제 바벨탑을 쌓는 목적은 없어지고 대신 노동자 도시 건설에 집중합니다. 가장 좋은 숙소를 차지하려고 분쟁과 싸움까지 일어납니다. 이렇듯 과거에 의미 있던 바벨탑이 카프카에겐 무의미하며 망각의 대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도시의 문장(紋章)안에 주먹이 새겨져 있는 건 위협적인 힘에 의해 파멸에 이르는 걸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카프카는 구원 없이 끝내 파국으로 몰고 가버립니다. 바벨탑을 쌓으려는 인간의 욕망도 신의 진노에 물거품이 되듯 인간의 문명 건설 역시 피비린내 나는 결투 끝에 한순간 사라질 수 있으리라 경고하는 듯합니다.

 


신재우   24-04-19 17:29
    
1.차미영 선생님의<발터 벤야민의 카프카, 그의 에세이 (프란츠 카프카)를 읽으며>글을 읽고, 교수님께서
  카프카의 단편 <형제살해>,<공동체>,<도시의 문장>  세 편을 수업했습니다.
2.김유정 선생님의 <돌고래 수영>합평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