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처럼
7월 8일 루쉰의 ⸀지신제」를 읽고 배우며 『외침』에 수록된 14편의 소설을 마무리했습니다. ⸀지신제」는 작가가 ⸀고향」에서 보여주듯 어릴 적 아련한 추억담을 토대로 1922년 쓴 단편입니다. 지신제는 농경 사회에서 땅에 깃든 신이나 신령께 행하는 의례 같은데 ⸀마을 연극」으로 번역하는 게 소설의 원제목에 더 충실하다고 합니다. 소설은 중국 베이징 실내 극장에서 두 번의 전통극을 관람했을 때 기대와 달리 몹시 실망스러웠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시작합니다.
“무대 위에선 둥둥깽깽 울긋불긋 번쩍번쩍 정신이 없지 (...) 이 모든 게 문득 나로 하여금 이런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그린비 192면)
위 장면에서 알 수 있듯 어수선하고 당황스러웠던 연극 관람은 다시는 볼 의향이 없으리라는 다짐으로 확대됩니다. 그러다 어느 날 중국 연극은 좁은 실내보다 확 트인 야외공연에서 더 볼만하다는 일본 책을 접하며 어린 시절 봤던 연극이 아스라이 되살아납니다.
열두 살 무렵 주인공 쉰은 어머니와 함께 ‘핑차오춘’이란 시골에 살고 계신 외할머니 댁을 방문합니다. 삼십 여 가구가 정겹게 모여 사는 집성촌인 그 마을은 쉰에게 천국 같은 곳입니다. 마을의 또래 소년들과 자연을 벗 삼아 허물없이 어울리며 우정과 추억을 쌓아가는 장면은 ⸀고향」에서 펼쳐지는 서정적이고 따스한 대목들과 겹칩니다. ⸀고향」에 등장하는 새잡이 명수였던 ‘룬투’가 건네는 말은 주인공 쉰의 마음을 마냥 설레게 하지요.
“낮엔 바닷가에 조개를 잡으러 가거든. 빨간 거, 파란 거, 귀신 쫓기 조개, 관음보살 손바닥 등등 없는 게 없어. 밤이면 우리 아빠랑 수박 지키러 가는데 너도 가자.” (그린비 96면)
어릴 적 룬투는 ⸀지신제」에서 리더쉽을 갖춘 긍정적이고 밝은 소년, ‘솽시’를 떠올리게 합니다. 반면 삼십 여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 쉰과 룬투가 재회한 순간 세월의 간극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룬투는 쉰에게 내내 굽신거립니다. 룬투의 비굴한 모습에 당혹한 쉰, 다시 찾은 고향은 가슴 속 품어왔던 아늑한 이미지와 달리 씁쓸하기만 합니다. ⸀지신제」에서 솽시가 보여준 용기와 의리, 진한 우정은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길 소망해봅니다.
외할머니 댁에서 가까운 ’자오좡‘이란 마을에서 열리는 연극을 보려고 어른들의 승낙을 가까스로 받아낸 소년들은 깊은 밤 강물을 가로질러 항해하듯 나아갑니다. 신나는 모험 길에 나선 듯 어린 소년들의 상기된 얼굴엔 어두운 그림자라곤 찾아보기 힘듭니다. 연극 자체가 주는 재미보단 함께한 그 순간이 얼마나 짜릿하고 행복했을까요. 돌아오는 길, 배고픔에 못 이겨 콩서리를 해먹으며 즐거웠던 그날 밤 추억은 가슴 깊이 애틋하게 남겠지요.
루쉰의 ⸀지신제」를 읽으며 발터 벤야민의 산문집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에 나오는 ⸀블루메스호프 12번지」 글이 떠올랐습니다. ⸀지신제」의 쉰처럼 벤야민도 어릴 적 블루메스호프에 있는 외할머니 댁을 방문합니다.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자란 벤야민은 1930년대 초 나치 정권이 집권할 즈음 이 산문집을 집필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대인들에 가하는 나치의 거센 압박을 견디다 못한 벤야민은 고국 독일을 떠나 망명길에 오른 후에도 이 산문집에 그토록 매달렸다고 합니다. 이 책은 단순히 유년시절 감상을 소회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어릴 적 겪은 다양한 서사 한 토막에도 성인이 된 후 당면한 여러 아픔과 상처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어느 순간 베일을 벗듯 암울한 현실이 과거 경험들 가운데 속살을 낱낱이 드러냅니다. ⸀블루메스호프 12번지」 글도 이와 비슷하게 전개됩니다. 외할머니댁에서 맞은 크리스마스, 빛나는 크리스마스 트리와 선물에 대한 설렘과 기대, 당시 먼 곳으로 해외여행을 다녔던 외할머니가 쓴 엽서들. 모두 달콤한 행복으로 넘칠 듯한 분위기에서 벤야민은 악몽을 꿉니다. 넓고 호화로운 외할머니의 저택이 악몽의 무대로 등장하는 꿈에서 어린 벤야민은 가위 눌리는 악몽에 시달립니다. 부르주아들이 누린 부와 안온한 삶이 오래지 않아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불안이 내재된 꿈처럼 보입니다.
루쉰과 벤야민 그들 둘 다 외할머니 댁에서 경험했던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립니다. 시골이든 도시이든 그들에게 소중했던 유년의 행복이 어떻게 아로새겨질지 현재 내 삶의 이정표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