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민경숙의 산문집 『꽃잎이 뜸 들이는 시간』에 담겨 있는 것은 작가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삶의 어느 한 부분에 선명한 흔적을 남긴 “좋은 사람. 잊을 수 없는 사람. 잊으면 안 될 것 같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을 거쳐 글 속에서 되살아난다. 작가는 그것을 “찰나의 아름다움을 찰칵 찍은 스냅 사진”이라고 표현한다. 우연히 포착되었지만, 오래 남겨두고 싶은 기억들이 책 속에 가득 담겨 있다.
“민경숙 작가의 산문은 그윽하고 섬세하고 품위가 있다. 내가 보기에 그윽하다는 것은 사유가 깊고 넓다는 것이고, 섬세하다는 것은 관찰과 묘사가 빼어나다는 것이며, 품위가 있다는 것은 인간과 삶에 대해 겸손하면서도 경건한 자세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글은 멀찌감치에서 응시하는 것 같다가도 어느새 대상의 안쪽으로 진입한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연결시킬 때는 충돌하는 것 같으면서도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 다시 말해 그의 산문에는 성찰과 감동, 발견, 깨달음이 녹아들어 있다. 그의 에세이가 빼어나지 않았다면, 나는 「배롱나무」를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의 글쓰기 교재에 수록하지 않았을 것이고, 「손거울 있던 자리」와 「두부 들어갑니다」 같은 글을 후배 문인들에게 읽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민경숙 작가의 에세이는 시와 소설의 경계에 있다. 자기 삶을 돌아보는 자전 에세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시보다 압축적이고, 시보다 더 이미지가 강하다. 감수성과 상상력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의 이야기는, 예컨대 「손거울 있던 자리」나 「나무고개」, 「비자림 의원」, 「두부 들어갑니다」 같은 이야기는 웬만한 소설의 서사를 능가한다. 특히 뒤주에 숨어 살며 남몰래 유부남을 돌본 ‘현아 아줌마’의 생애는 얼마나 애절한가. 내가 드라마 작가였다면 이 산문집을 모티프 삼아 여러 편의 시나리오를 써냈을 것이다. 옷에 관해 성찰하는 글 「헌 옷 벗고 새 글 쓴다」에서 할머니가 자주 말씀하셨다는 “비단옷 입고 밤길 가는 꼴”이란 멋진 메타포를 민 작가의 지난날에 그대로 투사하고 싶다. 이런 비단옷을 입고 어찌 밤길만 골라 다녔단 말인가. 그것도 수십 년 동안이나.”
_‘발문’에서 이문재(시인·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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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속에서 떠다니던 보이지 않는 이야기 물방울들은 사람의 몸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인다. 이것들은 습기를 머금고 있어 저절로 고이게 되는 것이 특징이다. 일정량이 차면 지우거나 덜어내야 한다. 더는 저장할 곳이 없으면 한 방울 눈물이 되어 떨어지기도 한다. 그 방울들을 한 움큼씩 집어 구슬처럼 꿰어 내보내는 것이 이야기다. 말이 되어, 춤이 되어, 노래가 되어, 글이 되어, 넋두리가 되어.
지금, 나에게 모인 그 물방울 하나 톡, 떨어지고 있다.”
_본문에서
목차
들어가며
1부 감국
감국
배롱나무
나무고개
검정 치마
히말라야시다
비파나무 그늘
이야기 물방울
2부 손거울 있던 자리
손거울 있던 자리
청국장
따라쟁이
디자이너
얼룩
김봉순전
3부 행복한 계열
행복한 계열
깊은 산속 연못
밥상 편지
두부 들어갑니다
선물
진국
엄마의 상장
4부 신호가 바뀔 때
신호가 바뀔 때
집으로 가는 길
연날리기
숨어 있는 인사
지구 한 모퉁이
5부 풍경화 그리기
하늘까지의 높이는 똑같다
고등어 반상
더 좋은 인연
비자림 의원
헌 옷 벗고 새 글 쓴다
잘 가
진짜 참기름
‘ㅁ’-도착하지 않은 메시지
숨이 남아있을 때 돌아오라
풍경화 그리기
6부 나 아직 여기 있어
뜨는 해 지는 해
연습하듯이
별자리로 열 수 있을까
당신의 동그라미
봉오리의 시간
나 아직 여기 있어
발문 | 이문재 당신은 이미 거기에 있었다
추천사
박준 (시인)
삶과 글은 한데 고여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척에 놓일 수도 없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 생각한다. 삶이 한발 나아가며 생각과 마음을 이끌고 다시 사유와 글이 성큼 걸음을 내디디며 삶을 견인한다. 투지(投止)와 투지(鬪志)의 기록이 여기 온전히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