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함께
나는 충분히 마음껏 즐기는 중이다
『이른 아침 새들의 무리를 보았다』의 소지연 작가
경북 의성 출생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불어 불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숭실대학교 출강
결혼 후 필리핀 마닐라로 이주
귀국 후 서울, 샌프란시스코, 뉴욕을 왕래 중
2014년 『한국산문』에 「이제는 노래를 부를 시간」으로 등단
2019년 『The수필』 ‘올해의 빛나는 수필가’ 선정
에세이집 『이른 아침 새들의 무리를 보았다』 출간
첫 만남을 기억한다. 오래 해외에 있었으며 자녀들이 미국에 있어 가끔 다녀온다고 했다. 잠시 머무는 손님만 같았다. 그런 중에도 그녀는 글쓰기에 온 마음을 쏟았다. 자녀들 곁에 머물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샌프란시스코, 뉴욕에서도 글을 보냈다.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글감이었다. 그렇게 쓴 글들을 모아 책으로 묶었다. 한 줄, 한 단락, 혹은 한 편의 글로 지난 시간을 말하며 현재 진행 중인 일상을 담았다. “밥 짓다 말고 노트북 열어 보기, 몇 글자 두드리다 말고 손녀 보러가기, 이 두 가지를 참을 수 없이 가볍게 치르는 사람입니다”(책머리에)라고 말하는 작가를 만났다.
책머리에서 “처음부터 정착은 어려웠던 걸까요”라고 했다.
“의성 외가에서 태어났어요. 어머니에게 딸(작가) 낳은 게 벼슬이냐며 당장 남편 뒷바라지 하라는 호랑이 할머니의 호통에 며칠 만에 함께 서울로 왔죠. 세 살이 되자 부산 큰고모에게 보내졌어요. 고모, 고모부에게 엄마, 아빠 하며 살았습니다. 「큰고모의 프로파일」에 나와 있듯 아픔이 많은 분들이었는데 제게 넘치는 애정을 주셨어요. 10살 때 대구에 정착한 부모님 곁으로 돌아왔지만 많은 것이 낯설었어요. 개구쟁이 오빠와 동생들이 있었죠. 소박하고도 사랑이 넘쳤던 고모네 집이 그리워 수줍고 우울한 유년 시절을 보냈어요. 중학교를 졸업하자 서울에서 혼자 살게 된 할머니가 오빠와 나를 데려가서 부모님과 또 멀어졌지요.
작가는 「그가 떠나던 날」에서 샌프란시스코 집 앞에 며칠째 살고 있는 노숙자를 보며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초등학교 때의 나는…가난한 사람들을 보면 애달파하던 여린 아이였다. 나만 넓은 방을 누린다는 사실이 불편하고 미안했다”라고 회상한다. 부모님께 왔지만 고모네보다 큰 집도, 넓은 방도 낯설었을 유년의 여린 아이가 그곳에 있었다.
소녀 시절에 형제자매에게 양보만 하던 작가는 혼인이 먼저라는 아버지의 말에 유학도 포기한다. “내 계획에 쐐기를 박은 아버지의 위력이야말로 거대한 운명이었다. 나는 매 순간 잘도 순응했다”(「이른 아침 새들의 무리를 보았다」 중.)라고 토로하는 작가. 하지만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는 커다란 사건도 있었다.
“부모님은 말이 없고 늘 책을 가까이 두는 제게 여대 심리학과를 권하셨죠. 시험 당일에야 남녀공학에 지원했다고 폭탄 발언을 했죠. 무슨 용기였는지 그 결정만은 제멋대로 했어요.”
능력자이자 겸손한 기타리스트, 남편과의 만남.
“대학원 재학 중에 대전의 숭실대학으로 출강 나갔던 강사 시절에 중매로 만났어요. 첫 만남에서부터 “삶은 끝없는 도전입니다. 손수 어려운 길을 찾아 나간다면 얼마나 값진 일이겠습니까”(「영원한 연습」 중.)라고 던져왔어요. 당당한 모습이 멋있어 보였어요. 바로 이 ‘도전’이라는 메시지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 같아요. 어떤 고난도 넘길 수 있었죠. 첫 아이를 가졌을 때 남편이 프랑스로 연수를 갔어요. 당시 유신체제의 여권법 때문에 따라갈 수 없던 저는 서울에 혼자 남았고 임신 8개월 때 석사 논문을 완성해서 학위를 받았어요. 딸아이 돌 무렵에 그가 귀국했고, 둘째 아이, 아들이 태어나 3개월 되었을 땐 ‘아시아 개발 은행’으로 직장을 옮기게 되어 함께 마닐라로 이주했어요. 그곳에서 24년을 보내는 동안 아이들은 미국 대학으로 학업을 이어갔고 정년으로 우리만 귀국했죠. 글을 쓰며 또다시 한국, 샌프란시스코, 뉴욕을 오가는 노마드의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현재까지도 도전의 연속인가 봅니다. 그런 제게 남편은 여전히 든든한 지원군이구요.”
그녀에겐 손녀가 넷이다. 작가는 「멋진 친구」에서 “그저 할미 같은 할미만 되게 하소서!…그들에게 정말 멋진 친구로 남고 싶다”라고 고백한다. 호랑이 할머니에게 주눅 들어 우울하고 소심했던 자신의 유년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선지 지금 멋진 할머니와 작가로 누구보다도 바쁘게 지내고 있다. 아직도 한글을 잘 못 읽는 손녀들을 위해 그들이 그린 삽화를 책갈피 갈피에 넣을 정도다. 이 책은 바로 그 아이들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무엇이 글을 쓰게 했는가?
“어려서부터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남에게 전달할 때 그대로 보는 듯이 세세하게 옮겼답니다. 그때부터 소설을 써야 할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요. 하지만 60대가 되었을 땐 세세하기보다 간결하게 묘사하는 법을 알고 싶어졌고, 그렇게 찾아든 곳이 수필이었어요”라고 한다. 동시에 유년의 소심했던 그녀가 찾아든 도피처가 책이었다고도. 다독의 힘은 작가의 글 곳곳에 스며있다. 품격 있는 문학을 통해 희망 찾기를 권한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며 작은 것에도 연민을 가지고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압축된 이야기와 간결한 표현에 중점을 두면서도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묘사로 자신만의 글을 완성한다. 작품 해설에서 문학평론가 임헌영은 “지성과 냉혹성과 감성적인 미의식이 조화를 이룬 경지”라고 했다. 소설가이자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송하춘은 “언제 다시 이런 중량감 있는 글을 또 만날 수 있을까”라고, 손홍규 소설가 는 “연민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특별한 능력임을, 작가는 우리가 상실한 연민을 이처럼 홀로 껴안은 채 견뎌왔음을”이라고 추천의 말을 썼다.
책을 내면서 어려움은 없었는지 묻자 “깐깐하게 퇴고하고 깐깐하게 즐겼다”며 ‘아 드디어 내가 있구나. 마침내 할 일을 했구나.’라는 자기 발견의 충만한 느낌을 받았다고 살짝 귀띔한다. 책 출간에 내보인 가족들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남편: 과연! 드디어…, 딸: 어머나! 놀라워요, 아들: 아~네”였다 하니 정말 말 없음을 미덕으로 하는 가족이다. 살짝 궁금했다. 서울과 샌프란시스코 중에 최종으로 선택할 곳은 어딘가? 라는 질문에 “내가 즐거운 방향으로 결정할 것이다”라는 여운을 남겼다. 앞으로의 계획은 “지금의 정체성에 머무르지 않고, MZ 세대도 이해할 주제로 세대 간의 차이를 뛰어넘는 글을 시도해 보고 싶다. 살짝 소설에도 눈길이 가지만 언제 용기를 낼지 오리무중이니, 당분간은 소설 같은 수필에 매달리지 않을까 싶다”한다. 칠 학년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여전히 열정이 넘치는 작가의 모습이다.
서울과 마닐라를 오가는 바쁜 며느리에게 시어머니는 “날이 그리 많지 않으니 좀 즐기며 살 거라”(「세븐틴」 중.)라는 팁을 주었다. 지금 즐기며 살고 있느냐?고 물었다. “작가와 아내, 엄마와 할머니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지금의 나는 충분히 마음껏 즐기는 중”이라며 활짝 웃는다. 벌써 ‘글 쓰는 사람’ 소지연 작가의 다음 책이 기다려진다.
<한국산문> 2024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