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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결혼 졸업했어요    
글쓴이 : 오정주    25-01-06 14:23    조회 : 591

우리 결혼 졸업했어요

어느 여인이 울먹이며 말했다.

저는 협의 이혼 신청을 했습니다. 남편의 외도와 폭행, 언어폭력이 젊을 때부터 변함없이 여태 죽 이어져 왔습니다. 저는 황혼 이혼이라는 게 너무 두렵고 외로움이 걱정됩니다. 스님, 이 나이에 이혼해야 하는지 현명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결혼 생활이 38년째라고 하는 그녀에게 살 만큼 살았는데 왜 더 살려고 하는지 스님이 반문했다. 본인은 워낙 외로움을 잘 타는 성격이며 결혼한 아들과 며느리에게는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고 하자, 못 살겠다면서 그런 걱정을 하는 걸 보니 더 살고 싶은 미련이 있는 거 아니냐며 은근히 핀잔을 주는데 여인이 하고 대답하자 사람들이 와아~” 하며 큰 웃음바다를 만든다.

스님은 남편이 변할 거라는 기대는 절대 하지 말고 미련이 남으면 좀 더 살아보라 한다. 그러다 영 아니다 싶으면 안 살면 되고 남편을 간섭하지도 말고 속박받는 삶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는 지혜에 대해 쉬운 예를 들어 천천히 설명한다. 결국 남편이 문제냐 내가 문제냐는 질문에 제가 문제입니다라고 수긍하게 된 여인은 목소리가 한결 밝아졌다. 그 여인은 그 후 어찌 되었을까? 스님 말처럼 안녕히 계십시오하고 황혼 이혼을 했을까? 아니면 요즘 유행하는 졸혼이라도 했는지도 모른다.

즉문즉설강의로 유명해진 법륜 스님은 국민 인생 상담가다. 모든 문제는 내 탓이라 생각해 보라는 논리로 상담하러 온 민중들에게 알아듣기 쉬운 말로 삶의 지혜를 깨우쳐 주는 모습은 이 시대의 소크라테스 같다.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은 '졸혼' 열풍이 불고 있다. 졸혼은 결혼 생활을 졸업한다라는 뜻으로 혼인 관계는 유지하되 서로 간섭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일이다. 이혼에 대한 편견이나 부정적인 시선이 존재하는 우리나라에서 이 신조어는 등장과 동시에 유행으로 번졌다.

따로 또 같이 나답게 살기 위한 새로운 삶의 형태인 '졸혼이 화두가 되면서 TV에서는 가상 이혼· 돌싱 예능 등 이혼 관련 프로그램들이 쏟아지고 있다. 개인의 행복을 중시하는 가치관 변화가 주요 원인이라고 한다. 최근 미혼 남녀의 절반 이상이 졸혼 의향이 있다고 밝힌 걸 보면 분명한 사회적 이슈임을 알 수 있다. 

졸혼이란 개념이 처음 소개된 것은 일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杉山由美子가 출간한 졸혼을 권함이란 책을 통해서다. 이 책은 2004년에  일본 사회에 졸혼이라는 파격적인 화두를 던졌다. 우리나라에 졸혼 시대로 출판되었는데 여섯 쌍의 졸혼 부부를 인터뷰한 것으로 다양한 졸혼 형태와 졸혼은 왜 필요한지 무엇이 좋은지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

스기야마 유미코는 40대에 남편과의 갈등으로 고민하던 중 첫째 딸의 권유로 남편과 따로 살아보기로 한다. 그렇게 독립적으로 살면서 결혼 생활을 돌아보던 저자는 다른 부부들이 갈등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취재하고 자신들 상황에 맞게 부부 관계와 역할을 새롭게 바꾼 사람들을 만나 이들의 공통점을 졸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우리나라는 2019년에 이외수, 전영자 부부의 졸혼 사실은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졸혼이라는 키워드로 등장하기도 했다. 결혼 44년 차가 된 전영자 씨는 지금이라도 내 인생을 찾고 싶었다고 고백했는데 이듬해 이외수가 뇌출혈로 쓰러진 뒤로 병간호를 위해 그녀는 졸혼을 종료한 상태가 되었고 3년 만에 이외수의 사망으로 졸혼은 사별로 마무리되었다.

100세 시대가 되면서 부부는 이제 반평생 이상을 같이 살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자녀나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에 참고 사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 불만을 참고 살기에는 인간 수명이 길어졌고 삶의 가치관도 달라지고 있다. 가정법률상담소의 2023년 통계 분석에 따르면 졸혼이나 이혼을 고려하는 위기의 황혼 부부가 최근 20년 새 5배 가까이 늘어났다고 한다. 결혼 5년 미만인 신혼부부보다 50, 60대 황혼 이혼이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경이적인 일이다. 여기에 졸혼까지 포함된다면 실제 이혼율은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

졸혼을 현대적 부부 생존 전략이라고도 부르기도 하지만 이혼이라는 낙인이 싫어서 당사자 간 합의로 온갖 의무에서 벗어나기에 누군가는 비겁하고 옳은 방법이 아니라며 우려하는 반응도 많다. 이혼의 두려움을 완화할 순 있겠지만 새 삶을 시작하기에는 경제적 문제나 외도나 불륜 문제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졸혼을 이혼인 듯 이혼 아닌 이혼 같은 너라고 노래 가사에 빗대어 말하기도 한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보유한 상태이기에 아리송한 표현이 그럴듯해 보인다.

고통스럽게 같이 사는 것이 더 힘든가, 외롭게 홀로 사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가? 졸혼으로 인한 단점의 불안과 졸혼으로 얻어지는 혜택의 매력 중 어느 것이 우위에 있을까? 

30년 넘게 살아온 우리 부부에게 졸혼이란 말은 발붙이기 힘든 단어다. 평소 농담이라도 부정적인 말은 금기어일 만큼 남편은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한 번 선택한 운명은 죽을 때까지 함께 해야 한다는 철학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고 산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시의 주인공이 되어 공항에서 편지 한 통은 써보고 싶다.


    여보, 일 년만 나를 찾지 말아주세요/ 나 지금 결혼 안식년 휴가 떠나요/

    그날 우리 둘이 나란히 서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하겠다고/

    혼인 서약을 한 후 여기까지 용케 잘 왔어요 (중략)


    이제 내가 나에게 안식년을 줍니다./ 여보, 일 년만 나를 찾지 말아주세요

    내가 나를 찾아가지고 올테니까요 

                                                                 (문정희 공항에서 쓸 편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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