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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독(愼獨)의 시간    
글쓴이 : 김순례    14-06-30 16:25    조회 : 6,978
신독(愼獨)의 시간
 
 누군가 후다닥 꼬리를 감추고 숨었다.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다시 발길을 돌려 아무 일 없는 듯 앞을 향해 갈 길을 걸었다. 나는 늘 앞만 보고 걸었다. 살면서 미련 같은 것은 없었다. 대신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설령 실패를 했더라도 빨리 잊고 사는 것이 현명하다 생각했다. 끊임없이 새로운 호기심을 향해 달려갔다. 그런 일상이 반복되면서 어느 날 꼬리의 실체가 살짝 보이기 시작했다.
 
 빨간색 하드 표지의 두툼한 책 한권을 펼쳤다. 몇 번인가 시도하다가 결국 놔 버린 철학서적《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다. 어린 시절 오빠 방에 몰래 들어가 제목에 끌려 펼쳤다가 몇 줄도 못 읽고 덮어버렸다. 다시 20대에 니체의 사상이 궁금해서 펼쳤다가 철학적 사고가 너무 어려워 던져놓았었다. 마침 이 책을 강의 자료로 삶에 대한 성찰 수업을 한다기에 듣게 되었다. 혼자서 자신이 없으니 교수님의 도움을 받아 완독해 보고 싶기도 했다. 빨간 줄을 그어가며 그의 사고에 빠져들고 있었다. 570여 쪽 되는 두툼한 책 '그림자'라는 소제 안에 심오한 말 한마디가 내 가슴을 찔렀다.
 “나의 고독은 어디로 달아나 버린 것일까?”
 
 여성의류를 취급하고 있는 나의 가게엔 많은 이들이 북적대었다. 한 지역에서 오래 가게를 하다 보니 옷을 구입하러 오는 사람도 있지만 막연히 수다가 그리워서 오는 여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빈손으로 오지 않고 뭐든 먹을 것을 들고 와서 몇 시간이고 늘어지게 놀다 갔다. 그들은 스트레스를 풀고 가고 나는 스트레스가 쌓여만 갔다. 가끔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발길에 잠시도 짬을 내지 못한 날이 잦아졌다. 문제는 손님들에게 가라고 대놓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 겹쳐지면서 내 속은 뭉그러지고 있었다.
 그런 날 저녁이면 내 머리를 쥐어뜯으며 남편에게 소리 질렀다. "아! 지구를 떠나고 싶다." 궁여지책에 디지털대학 문창과에 지원했다. 평소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며 내 취미도 살리고 공부해야 한다고 강제(?)로 손님들을 몰아내기도 했다. 귀여운 내 제스처에 모두 웃고 넘어가 주었다. 님도 보고 뽕도 따고, 도랑치고 가제 잡고……. 그렇게 내 지혜가 끝내주게 좋다고 자만했었다.
 
 한 동안 바쁘고 알차게 24시간이 돌아가는데 뭔가 허전하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너의 고독은 어디로 달아나 버렸니?" 하고 니체가 내게 묻고 있었다. 내 머리를 망치로 '쿵'치는 듯 몽롱해졌다.
늘 나를 쫓고 있는 검은 그림자, 그를 잊고 있었다. 어느새 그는 너무도 얇고, 검고 속은 텅 비어서 기진맥진하게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언제쯤 자신을 돌보아 줄지 목을 빼고 기다리는 그를 보았다. 그는 목표도 돌아갈 고향도 없이 줄곧 내 발꿈치를 따라다니며 쫓고 있는 나그네였다. 그와 대적할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목표를 향해 잘 가고 있는 거니? 나는 잘 살아가고 있는 거니? 너는 왜 나를 붙잡지 않았니? 우리가 화해하고 마주 보는 시간은 언제가 좋겠니? 내가 많이 추악해진 거니? 내가 사랑하며 살고 있는 거니? 탐욕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는 거니? 내가 삶의 수레바퀴 위에 이탈하지 않고 똑바로 잘 서있는 거니?
 
 사람은, 더구나 창작 하는 사람은 특별히 자신과의 시간을 많이 가지라고 한다. 스스로 고독해 지는 시간, 절대 고독의 시간이 필요하다. 학자들은 흔히 신독(愼獨)이라고 한다. 사전적 의미를 본다면 ‘자기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지는 일을 하지 않고 삼감’ 이라고 쓰여 있다. 혼자 있을 때 스스로 근신하는 시간이 필요함을 말하겠다. 스스로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내면이 성숙해지는 것을 일컫는 말이겠다. 나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갈 때 더없이 추악해지고 부패해짐을 막아 주는 역할이 곧 신독(愼獨)이란다. 혼자만의 시간이 주는 적막함속에 스스로를 내몰아 보는 거다. 수많은 질문과 함께 사색의 깊이가 깊어질 것이다. 혼자 시간 보내기는 독서와 창작이 최고이니 그 심연의 바다를 유영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
 
 중국의 대나무 종류 중에 '모소'라는 종이 있다. 이 대나무는 순을 내기 전에 먼저 뿌리가 땅속에서 멀리까지 퍼져나간다. 뿌리를 내리는 기간만 5년이 걸린다. 그리고 일단 순이 돋으면 길게 뻗은 뿌리로부터 엄청난 양분을 얻어 순식간에 키가 자란다. 새순을 준비하는 기간이 긴만큼 성장속도는 눈에 띄게 쑥쑥 자란다. 하루에 70cm씩 자라 나중엔 27m까지 자란다. 대나무에게 5년이라는 시간은 절대 신독(愼獨)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살면서 마음 안에 검붉은 절벽 하나쯤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절벽에 피 흘리고 만들어진 상처가 삶의 연장선에서 더없이 추악해지는 나를 막아내는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그 상처가 아물기까지 치유하는 법과 대처하는 법을 터득하리라. 시간이 필요하고 그만큼 인내하는 법을 깨우치리라. 또다시 흉측한 바위가 이빨을 내밀며 다가온다 하더라도 이제 예전의 두려움은 아니리라. 이 또한 신독(愼獨)의 시간 이었을 것이다.
 
 우선 직진으로만 향하던 발걸음을 잠깐 멈춤으로 놓는다. 한 템포 쉬어가며 나를 돌아 볼 일이다. 옆도 보고, 위도 아래도 볼 일이다. 천천히 숲속 길을 혼자 걸으며 돌아온 길을 반추해 볼 일이다. 마음이 견딜 수 없이 힘들 때 일수록 더욱 더 혼자만의 고독 속으로 들어 가야할 일이다. 내가 세상 속에서 더 없이 추악하고 부패해짐을 막기 위하여…….
 내 그림자 속이 꽉 차올라 두툼해지고 힘이 넘쳐나도록 그와 마주 할일이다.
 
 꽃 피는 춘(春) 3월이다. 삼라만상(森羅萬象)이 깨어나는 그 찬란한 봄을 위해 모든 성장을 멈추고 죽은 듯 얼어붙어 있던 겨울이 나에게 속삭인다. “겨울에 추위가 깊으면 봄에 꽃이 유난히 아름답데, 어때 너도 그 깊은 절대 신독(愼獨)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보지 않으련?”
                                                                                                    (2014.01.11)
                                         <한국산문> 2014.3월 등단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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