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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 앞에 선 카프카    
글쓴이 : 김창식    14-08-13 14:53    조회 : 34,778
                                                   법 앞에 선 카프카
 
 
  
 법에 관한 글이라면 체코 태생의 유태계 독일작가인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의 잠언적 산문을 빼놓을 수 없다널리 회자되는 '법 앞에서(Vor dem Gesetz)'라는 에피소드이다. 독립적인 단편처럼 알려졌지만, 실은 카프카의 중편 <<소송>> 9<>에서 주인공 요제프 K와 교도소 사제가 나눈 대화의 내용으로 삽입된 것이다.
 
  '법 앞에서'는 짧은 우화지만 그 자체로 거대한 메타포의 세계였다. 학교 때 이 글을 읽으며 뼛속깊이 전해오는 전율을 느꼈음을 고백한다. 카프카의 천재성과 현시적 인유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카프카는 내게 통과해야 하는 어두운 터널 같은 존재였다. 카프카의 세계는 허구적 현실이었다. 존재하나 실재하지 않든가, 실재하나 존재하지 않은 세계. 카프카를 통해 현실보다 더 불가해한 세상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그런 세상에 살고 있음도.
 
 한 촌사람이 법정에 들어서려 하나 문지기가 지금은 입장을 허락할 수 없다고 제지한다. 생각에 잠긴 시골 사람이 나중에 들어갈 수 있느냐고 묻자 문지기가 대답한다. "가능하지요. 그렇지만 지금은 안 돼요." 그 뿐더러 자신은 최말단의 문지기에 불과하며 방을 지날 때마다 더 막강한 문지기들이 진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 날도, 그 다음날도 같은 상황이 되풀이 된다. 촌로는 문지기를 금품으로 매수하려 하나 문지기는 받아 챙기면서도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내가 이것을 받는 것은 당신이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덜어주기 위함이요."
 
 하염없이 기다리던 어수룩한 시골사람은 여러 해를 보내면서 시력이 나빠졌을 뿐더러 실제로 주위가 어두워진 것인지 눈이 자기를 속이고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는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니 어둠 속에서 법의 문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한 가닥 빛을 느낀다. 이제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는 사력을 다해 문지기에게 일생일대의 질문을 던진다. "오랜 세월 동안 나 이외의 어떤 사람도 입장하려는 사람이 없으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요?" 문지기가 촌로에게 무심한 듯 내뱉는 말이 수상하다. "자 이제 문을 닫아야겠소. 그런데, 이 입구는 원래 당신을 위해 지정되었던 것이라오."
 
 카프카는 법률학을 전공한 전력이 있다. 반어적 우화를 통해 실정법이나 사법 체계에 대한 카프카의 날선 비판을 읽을 수 있지만, 작가의 관심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보다 더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데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형체를 드러내지 않은 거대한 관료 집단이나 권위주의적 시스템 하에서 억압 받는 인간존재의 무근저성(無根底性), 실존적 불안과 숙명적 한계를 보여주려 한 것이다. 카프카의 다른 저작들(<유형지에서>, <실종자> )을 살펴보아도, '어떠한' 또는 '그러한' 모순으로 가득 찬 현실과 조우한 우리들 현대인이 '불가해한' 힘에 이끌려 좌초하거나 파국을 맞이함을 건조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묘사해 '불편한 진실'을 한층 더 섬뜩하게 일깨운다.
 
 카프카 문학의 특성이자 장기는 있음직하지 않은(있음직한!) 세계를 있음직한(그러니까 있음직하지 않은!) 방법으로 표출한다는 것이다. 수수께끼 같은 사건을 서술하고 해석의 실마리를 보여주는 듯하다가 다시 흔적을 감추어 연상을 파괴한다. 카프카가 마름질한 일상의 길을 걷는 독자는 일순 허방다리를 짚고 현실과 허구의 틈새로 난 나락으로 떨어져 내린다. 그리고는 카프카가 쳐놓은 덫으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다벤노 폰 비제 교수를 비롯한 카프카 연구의 권위자들도 자조 섞인 역설로 카프카를 숭앙했다이를테면,
 "카프카는 해석되지 않음으로써만 해석된다."
 "카프카에 대해 말하여 지지 않은 것이 오히려 카프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 찬 세상에 내던져진 우리의 처지와 형편이 이 글 <법 앞에서>에 나오는 시골사람과 같지 않다고 누군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보냐. 혹 우리도 원래 우리가 주인이었으며 오래 전부터 진입하려 하지만 입구가 여전히 봉쇄된 성벽의 문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벽 면의 거울 앞에 비친 우리 모습을 보며 탄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자신이 하수인인 문지기나 방조자임을 증언하는 거대한 거울 앞에 서서.
 
<< 에세이스트 2012>>에  연재한  '김창식의 비평에세이(4) - 법 앞에 선 카프카 축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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