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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유년기에 기르던 돼지였다    
글쓴이 : 최기영    14-12-01 23:31    조회 : 11,146
나는 유년기에 기르던 돼지였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서는 돼지와 토끼, 닭 등 여러 가축을 길렀다. 내가 몸통만한 양동이를 들고 돼지 구시에 구정물을 부어 줄 때면 집안 어른들은 “야~! 이놈아. 네 똥도 좀 싸줘야지. 쌀뜨물도 없는 맹물만 줘서 살이 붙겠냐? 삐쩍 골은 돼지를 어디다 쓸라고? 그래도 한 150근 나가야 먹는 맛이 나지.” 돼지를 집에서 잡지(屠畜)도 않으면서 어른들은 꼭 잡는다고 했다. 돼지는 주인의 대화 내용을 아는지 모르는지 꿀꿀거리며 구시에 머리를 박고 몇 톨의 밥알과 음식쓰레기를 먹기 바빴다. 난 유년의 추억을 잠시 더듬거리다 지금의 나를 보았다.
2007년 4월, 난 역사의 부침과 함께 사멸 된 마상무예를 복원하기 위해 세필의 말을 구했다. 전국에서 전통무예 동호인들이 모였다. 연습 도중 낙마를 하는 등 정말 아찔한 순간을 지나 이제 모두가 말 잔등에서 마음대로 병장기 다룰 정도가 되었다. 우리는 만주벌판 지평선 넘어 먼 대지를 향해 달리던 고구려 무사였다. 그 때 우편집배원이 와서 도장을 달라고 했다. 상호도 주소도 없는 마구간으로 우편이 오다니, 요상다고 생각하며 급히 봉투를 쫙 찢어 내용물을 보았다.
충청북도 마필 담당부서에서 보낸 말 산업 전문가 양성과정 교육 안내문이었다. 수신인 대표자로 내 이름을 놓고 나머지 36인의 축산 농민을 대상으로 작성 된 문서였다. 말 축산 농민 뿐 아니라 소를 기르는 농민도 있었고 보양탕 사장님 이름도 있었다. 오며가며 들린 음식점 주인과 인터넷 등을 통해 얻은 명단 같았다. 내용은 미래형 축산, 레저승마, 새로운 소득원, 미래형 축산 말 산업이란 대문짝만한 머리글 아래 ‘농민들이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제 말을 키워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웃음이 나와 서류를 쓰레기통에 던지려 할 찰라였다. 병원에서 막 도망 나온 병자처럼 얼굴색이 허연 40대 중후반 남자가 다가오더니 고개를 까닥거렸다. 그는 자기소개 대신 명함을 내밀었다. 도청 마필담당이었다. 난 농담으로
“아니 이렇게 오실 것 같으면 서류는 들고 오시지 이걸 우편으로 보냈나요?”
“네, 서류를 보냈다는 증빙이 있어야하기 때문에요.”
난 어이가 없어 그냥 웃었다. ‘우표 한 장 값이야 별 것 아니지만 국민 세금이니 앞으로 이렇게 오실 때는 서류 같은 것은 들고 오시죠.’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대신 입을 닫고 그에게 간이의자를 밀어주며 앉으라고 했다.
“선생님. 현장 방문이 많죠?”
“네. 가끔요. 근데 왜요?”
“이렇게 농민들 찾아다니려면 얼굴 썬텐이라도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시꺼멓게 해에 그을린 우리와 괴리감이 생기면 그렇잖아요?”
그는 기분이 상했다는 듯이 괜한 의자를 툭툭 찼다. 그리고 살짝 뭍은 흙먼지에 양복바지가 버릴까봐 손수건을 꺼내 깔고 옹색하게 엉덩이를 붙였다. 그렇게 앉아 멍하니 이야기꺼리를 찾지 못해 머뭇거리더니 마구간 구석에 놓인 연습용 월도를 들어 휘두르는 흉내를 냈다. 허튼 짓거리에 웃음을 나왔지만 억지로 참았다. 관료 냄새가 물신 풍기는 그와 상대하고 싶지 않았으나 무엇인가를 찾아 어색함을 벗어나려는 몸짓이 안타까워 “그래. 어쩐 일로 여기까지 나왔습니까? 우편으로 내용물 공지했으면 됐는데.” 그는 기회다 싶었는지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마필산업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더니 숨도 고르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는 마필산업 담당이 되기 전엔 몰랐는데 목장에서 말이 태어나 6개월이 지나면 무조건 2천만 원부터 경매가 시작된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소 한 마리 키우는 것, 몇 배의 수입이 아니냐며 시대에 맞게 농민들 생각이 변해야 한다. 옛날에 소 한 마리 있으면 동네 부자라고 생각했던 고리타분함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발전이 없다. 장수 목장에 종마 한마리가 들어왔는데 수십억짜리란다. 그 놈 씨를 받아 경마장에 말 한 마리 넣어 놓으면 떼돈을 버는데 농민들이 보수적이라 생각을 못한다고 했다. 나는 농장에서 경주마 한 마리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부지와 시설이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그는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더니
“얼마 전에 말입니다. 옥산읍내에 나이 드신 어르신이 코끼리만한 하얀 백마에 황금색 천을 두르고 타고 가는데, 너무 멋져서 입이 쫙 벌어지더라고요. 나도 퇴직하면 한 마리 구해 그렇게 타고 다니고 싶었어요.”
“그래요.”
“자동차 속도를 줄여 백마 뒤를 졸졸 따라가 봤죠. 스위스 별장 같이 집으로 뚜벅 뚜벅거리며 들어가는데 정말 장관이더라고요. 영화에서나 볼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또한 마구간을 어찌나 품 나게 지어 놓았는지? 그런데 정작 노인이 말에서 내렸을 때 정말 확 깼어요. 쪼그만 키에 배가 불룩 나온 것이 가관이었어요. 말이 사람을 저렇게 멋지게 만들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그래 말이 참 멋집니다하고 공치사를 했죠. 그 양반 대뜸 독일에서 일억 넘게 주고 수입해왔다고 자랑부터 하더라고요. 그래 말(馬)에 대해 알아보았죠. 이제 막 사람에게 등 대주는 세 살배기 말 한 마리를 독일에서 수입하는데 평균 4천에서 5천만 정도라면서요? 외화낭비입니다. 우리 농민이 그런 말들을 생산해야지요. 그럼요.”
“아! 그래요. 대단합니다. 그럼 조랑말이나 한라마도 그렇게 대접 받는 날이 오겠죠?”
“어이구 조랑말이요? 그것이 말입니까? 외국에 포니종이 있는데 포니는 크기가 꼭 큰 개만한데 참 예쁘게 생겼어요. 순하기는 얼마나 순한지. 어린이 승마하기 딱 맞춤이더라고요. 관상용으로 그만이죠. 우리 농촌에서도 어서 그런 종자를 수입해서 번식시켜야 하는데........ ”
난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실밥 터진 안장날개를 만지작거렸다. 그는 앞으로 하늘에서 금덩어리가 쏟아져 내릴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체육관 사범 생활을 했던 경험을 살려 말(승마)을 지도해라. 정부에서 마필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앞으로 엄청난 자본을 쏟아 부을 것이니 그 때 한 몫 잘 챙겨라. 전통도 좋지만 돈이 최고인데, 까짓 것 전통이 밥 먹여주느냐? 끝으로 돈이 있어야 사람답게 산다는 충고로 말(語)을 맺었다.
사람들을 모아 승마를 가르쳐라. 솔깃했다. 그렇잖아도 말을 구할 때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한 마리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월 40만원이었다. 매일 타는 말을 똥간에 방치 할 수 없어 톱밥까지 깔아주는 비용까지 말 세 마리가 월 150만원을 먹어치웠다. 당시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얻은 수입의 절반이었고 공장 생산노동자들의 한 달 월급이었다. 집에서는 내년에 딸아이 대학에 가야하는데 학비가 얼마다. 아비란 자가 아무리 미쳤어도 집안은 돌봐야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렇게 몇 번을 다투는 동안 그녀는 결국 딴살림 차린 것 아니냐고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말(馬) 때문이라며 말을 치우기 전에는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말 대신 내가 집에서 쫓겨나올 수는 없어 방법을 찾고 있던 중에 일반 승마장처럼 회원을 받아 승마를 가르쳐보라고 했다. 체육 시설로 등록하지 않아 머리 아플 건 뻔했다. 그래도 충청북도 마필 담당 공무원이 내민 제안이었다. 한 줄기 빛 같았다. 질서 없이 자란 풀꽃들이 나와 함께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었다.
현수막을 걸고 회원을 모집하여 승마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말을 배우며 마상무예를 볼 수 있다는 소문을 따라 청주 뿐 아니라 서울 경기 등 전국 각지에서 승마동호인들이 다녀갔다. 내 밥값과 사료비가 해결되었다. 말과 함께 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그 무렵,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공기업인 한국마사회에서 승마인구 확대를 위한 승마교육프로그램으로 <전국민말타기운동>을 시범사업으로 실시한다는 공문이 왔다. 공문을 받고 사업신청서를 쓰고 있는 나에게 지인이
“욕심 많으면 광란난다. 그냥 찾아오는 사람들이나 가르치시지?”
“뭐 어때서, 그래도 여긴 도청에서 허락해 준 곳인데.”
“어이구. 최 선생! 그 말을 믿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그들인데, 나는 모르겠다.”
“그래도, 이번 시범사업 한번 하면 탈의실이라도 지을 수 있지 않겠어.”
그는 내가 미련을 버리지 않자 나에게 순진하다며 분명한 것을 이 곳 승마장이 체육시설로 등록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지인의 말림도 있었지만 괜히 미신고 사업장이라고 선전하는 것 같아 사업공모를 포기했다.
그리고 며칠 후, 모처럼 목돈이 생길 기회를 놓친 아쉬움을 놓지 못해 말 잔등에 올라 괜히 말을 괴롭히고 있을 때였다. 한국마사회에서 용역을 맡은 생활체육승마협회 측에서 시범사업을 운영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승마장 허가를 받고 싶어 몇 번을 반복해서 신청서를 제출해도 승마장 규정미달로 반려를 당한 곳에 정부사업을 해달라고 했다. 실태조사를 나왔다. 아직 여름 더위가 한 참이었다. 그들은 고급외제승용차를 타고 들어와 아무렇게나 차를 세우고 검정 양복에 넥타이에 맨 자들 셋이서 거드름을 피우며 내렸다.
“여기 최 사장이 누구여?”
다짜고짜 반말이었다. 난 그들의 태도가 재미있어 동작 하나를 놓치지 않고 입을 다물고 바라보았다. 그들은 민망했는지 체육협회에서 나왔다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책임자로 보이는 자가 자리에 앉았고 나머지 둘은 마구간과 안전 도구를 카메라에 담았다. 그들에게 난 없었다. 난 내심 내키지 않았으나 그들이 찍은 사진 한 장과 말 한마디에 탈의실이 왔다갔다는 생각에 강아지처럼 졸래졸래 따라다니며 설명했다. 그리고 한껏 자세를 낮추고 모르는 예의까지 갖추며 차(茶)를 권했다.
“여기 충북지역에 10억 마필산업 정부지원 사업으로 세워진 승마장도 있는데 제가 어떻게 시범 사업을 할 수 있겠어요?”
“최 사장이 말을 잘 가르친다고 소문이 자자해서.”
“어이구, 무슨 말씀을, 고맙습니다. 그래도 승마는 시설이 우선인데 저희 승마장은 허접해서 지원서도 제출하지 않았는데요.”
“시설 좋으면 뭐해. 실태 조사한 결과 여기가 주변 승마장 중 초보자에게 가장 안전하게 승마를 지도하고 있는 곳으로 확인됐어. 참! 체육시설보험 가입은 했나?”
“네, 마상무예 훈련이 갖는 위험성 때문에 말을 키우기면서부터 가입되어 있습니다.”
그는 며칠 후 마사회에서 안전교육이 있으니 꼭 참석하고 지원자를 받아 교육을 시키라며 갔다.
두 번에 걸친 국민말타기운동 시범사업을 성공리에 끝냈다. 그 뿐 아니라 지자체에서 주관하는 장애인 승마 체험과 차상위계층 아이들 말 태우기 등을 진행했다. 관광객들이 와서 체험과 어린이 방과 후 승마수업을 하고, 휴일에는 동호인들과 함께 미호천 둔치를 달리며 우리는 기마민족의 발자취를 찾아나갔다. 승마장이 지역명소로 자라 잡아갔다. 가끔 미신고 승마장이란 것 때문에 불안했지만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주관하는 말 산업 관련 설명회에서 담당자는 항상 말 육성 산업이 발전하려면 돌담처럼 막혀 있어 체육시설에 관한 법률을 당장 헐어버릴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승마장 관련법이 갖고 있는 문제는 정부도 알고 있기 때문에 운영을 해도 괜찮다고 했다.
난 승마장이 미신고 상태라 불안했지만 그들의 말대로 아무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2010년 가을 군청에서 직원이 나와 간판을 철거하라고 했다. 그들이 다녀 간 후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체육시설에 관한 법률 위반을 했다며 와서 조사를 받으라고 했다. 경찰관이 제시한 증거는 국민말타기운동 결과보고를 하기 위해 한국마사회의 홈페이지에 올린 사진이었다.
“아니 이것은 정부에서 말 타기 사업을 확장하기 위한 것이었는데요.”
“어쨌든 이것, 그곳에서 찍은 것 맞지요?”
“네. 그래도 이것은 아니잖아요?”
“아니 왜 나한테 그래요. 법이 그렇게 되어 있잖아요? 법이........”
“뭐 이런 개 같은 법이 있어요? 내가 소크라테스인 줄 아시오?”
경찰관은 아무 대답을 않고 고생했다며 귀가하라고 했다. 며칠 동안 찜찜한 마음으로 말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데 청주지방검찰청으로부터 출석요구서가 날아왔다. 경찰서와 똑 같은 체육시설에 관한 법률위반 행위였다. 검사에게 전화를 했다. 검사는
“사정은 안타깝지만 법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실정법이 그렇게 되어 있는데 어떻게 합니까? 위반하셨으니 조사는 받아야하고, 많이 바쁘시죠? 굳이 오시지 않아도 되니 전화 심문으로 대신하죠.” 그리고 ‘법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법에 의해 약식기소 되었다. 억울했다. 난 그렇게 되어 있는 실정법을 따지기 위해 청주지방법원에 정식 재판을 신청했으나 결국 약식기소 때처럼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나와 같은 미신고 승마장 업주들과 그리고, 정부지원을 받아 승마장을 시작한 업주까지 청원지역에서 9명, 그리고 그 외 도서지역에서 말을 기르던 많은 축산 농민들이 어처구니가 없게 전과자가 되었다. 그 때 우리는 내가 유년기에 기르던 돼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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