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문학회 >  회원작품 >> 

* 작가명 : 최기영
* 작가소개/경력


* 이메일 : ccy6104@never.com
* 홈페이지 :
  나는 일기에보를 보지 않습니다.    
글쓴이 : 최기영    14-12-01 23:38    조회 : 9,928
나는 일기예보를 보지 않습니다
 
바람이 차갑습니다. 아침에는 하얗게 흰 서리가 내렸습니다. 울타리 옆 쪽 밭에서 식탁에 올라 갈 날을 기다리던 가지와 상추, 호박 등 여름 채소가 된 서리를 맞았습니다, 계절이 이미 겨울 문턱 앞에 와있는지도 모르고 봉변을 당했습니다. 주인인 제 탓입니다. 방송에서 아침 기온이 뚝 떨어진다고 야단법석이었지만 보도 내용을 믿지 않았습니다. 들판에서 지푸라기라도 걷어다 덮어주어야 했는데 나는 대신 마이크를 잡은 여자 아나운서에게 관심을 가졌습니다. 다부지게 이야기하는 입모양과 진하게 색칠한 가짜 속눈썹을 보며 발칙한 상상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나를 호색한으로 착각하지는 말아주십시오. 동안 많은 언론매체들이 신뢰를 주지 않았던 탓이니까요.
바람보다 빠른 인공위성이 매일 지구를 돌고 있습니다. 구름의 방향과 바람의 세기 정도를 정확하게 예측합니다. 언제 어느 지역에 비가 내릴지, 한파가 몰려오고 바람이 불어올지를 파악하는데 문제가 없습니다. 현대 과학의 산물입니다.
매일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TV를 켜고 일반 뉴스는 지나쳐도 일기예보를 꼭 봅니다. 특히 여행을 가거나 행사 일정을 잡을 때 행여 뉴스를 놓치는 날에는 휴대폰으로 날씨를 확인합니다. 일기예보를 보는 것이 우리의 생활이 된지 오래입니다. 그러나 그런 나의 습관이 얼마 전부터 바뀌었습니다. 요즘 날씨의 흐름을 알고 싶을 때는 방송보도보다는 집안에 키우는 가축들의 움직임을 관찰합니다. 동물이 갖고 있는 생존 감각이겠지만 날씨 변화에 따라 그들의 행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작년 봄에 찾아오는 지인들과 몸보신하려고 닭과 오리를 기르기 시작 했습니다. 처음엔 중병아리 몇 마리를 넣었습니다. 뼈 속까지 시커먼 오골계와 좀 닭이라는 토종닭입니다. 두 종류로 분류를 했지만 다 우리 재래종들입니다, 이렇게 닭을 기르던 중 울타리 옆 논임자가 농지정리를 하며 듬벙(연못)을 팠습니다. 오리가 놀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고인 물이 아까워 오리 몇 마리를 구해 풀어놓았습니다. 방죽에서 물살을 가르며 날개 짓을 하는 모습, 참 평화로웠습니다.
그런데 이놈들은 제가 낳은 알 하나도 부화시키지 못해 닭 둥지를 빌립니다. 알을 배앓이 환자 설사하듯이 여기 저기 낳았습니다. 제 새끼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못난 녀석들이 온 종일 몸치장하느라 바쁩니다. 이를 모르는 사람들이 물위에서 여유를 부리는 모습을 보고 아름답다고 찬사를 보냅니다. 얄미웠습니다. 당장 오리를 치워버리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집 오리는 생명이 참 깁니다. 이놈들을 막 없애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옆 논 주인이 찾아왔습니다. 검정 비닐봉지 속에 소주병과 튀김 닭을 갖고 왔습니다. 10년 동안 농번기 철마다 매일 마주했지만 단 한 번도 막걸리 한 잔 사지 않던 친구입니다. 의아한 마음에 그를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그가 어색했는지 “형님 종이 잔 좀 주슈.”라며 바삐 소주를 내놓았습니다. 빈 종이컵에 술을 가득 붓더니 대뜸 “형님 고맙습니다. 전 그것도 모르고 오리를 못 놓게 했었잖아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 ~ 형님! 참 신기하지요? 글씨, 지는 오리가 나락모가지를 다 잘라먹을 줄 알았어요. 근데 고것이 신기하게도 나락은 입도 안대고 벌레만 잡아먹더라고요. 참내, 덕분에 올해는 농약 분무기를 안 메고 다녀도 될 것 같아 고맙고 미안해서 찾아왔어요.”라며 연거푸 소주잔을 채우며 권했습니다. 이렇게 술잔이 오고 가는 동안 그는 가축을 기르는데 필요한 상식을 늘어놓았습니다. 닭 사료는 축산업협동조합에서 판매하는 것보다 어느 회사가 좋다. 오리는 먹성이 좋기 때문에 사료만 먹일 수 없다. 밀기울과 쌀겨를 섞여 먹이면 알이 단단하다고 육질이 좋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닭과 오리 등 집안에서 기르는 가축들을 보고 날씨를 예측 했다고 했습니다. 하긴 청개구리가 어미의 시신을 도랑에 묻어 놓고 비오는 날이면 개골거리며 운다는 우화가 있으니 허튼 소리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 날 이 후 난 오리를 어떻게 처리 할 것인가에 대해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인터넷 매체에서 연일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국가 정보원이 현 대통령 박근혜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댓글작업을 조직적으로 했다는 보도 탓이었습니다. 국민 모두가 분노했습니다. 서울 광장을 비록 전국에서 국가권력기관이 민주주의 꽃인 참정권을 짓밟은 것에 대해 항의하는 촛불이 들불처럼 일어났습니다. 간 큰 고등학생들은 무시무시하다는 국가정보원 정문에서 연일 ‘국정원 해체’를 요구했습니다. 이렇게 수 만 명의 인파가 매주 토요일 촛불을 밝혀도 방송과 신문엔 한 줄의 보도도 없었습니다. 도리어 평화적인 집회를 불법으로 매도했습니다. 경찰은 방관 한 채 해산시키지 않는다고 탓했습니다. 수세에 몰린 국가정보원장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지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적법절차 없이 폭로 했습니다. 정부와 집권세력은 남북정상회담 당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했다며 억측을 늘어놓으며 난리를 피웠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 집단인 국회의원들이 국어 해석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영어를 너무 열심히 배운 탓인 것 같습니다.
국가정보원의 정치 개입에 대해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 했습니다. 저 역시 바쁜 일상을 뒤로하고 촛불을 들었습니다. 대선 불복이란 논리로 진실을 가리려는 새누리당의 정치 공세에 입을 다물고 있던 민주당이 천막 당사를 치고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10만이 넘는 인파가 모일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 주 초였습니다. 남태평양에서 발전한 태풍이 한반도를 강타한다는 일기예보가 보도되었습니다. 아나운서는 한반도 주변 지도를 펼치고 매일, 매 시간 반복했습니다. 권력과 결탁한 방송사가 집회 참여를 막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비겁한 술책이었습니다. 비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태풍도 불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열심히 비설거지를 해야 했습니다. 첨단 과학의 결과물인 인공위성이 보내 온 정보보다 센 거짓말이었습니다. 앵무새의 재잘거림이었습니다. 이 때 나는 늑대와 양치기소년이란 이야기를 생각했습니다.
그 날 이 후 닭과 오리는 우리 집 기상대가 되었습니다. 비가 내리기 전 개구리가 울어대듯이 오리 역시 둑에 앉아 꽥꽥 울어대며 절대 못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닭은 울음소리로 다음 날을 예고 해 줍니다. 그리고 밤하늘을 보면 달 주변으로 달무리가 섭니다. 분명히 비가 내린다는 예고입니다. 지극히 원시적입니다. 위성이 태양계 밖 행성까지 날아가는 시대에 “무슨 짓이냐?”고 스스로 물으면서도 나는 가축 울음소리와 밤하늘을 살핍니다.
이런 나에게 불신이 과하다고 하실 수 있습니다. “거봐라! 그러니 한 달 정도는 더 식욕을 돋아 줄 싱싱한 상추를 시들게 하지 않았냐?”며 질책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인을 닮아 계절을 놓쳐 버린 녀석들이 안타까웠습니다. 어제까지 진초록 잎을 자랑하더니 찬 서리에 모두 시들시들해졌습니다. 많이 미안했습니다.
원시적인 기상대 놀이는 여기서 마무리해야겠습니다. 그리나 몇 날은 더 살 수 있었던 여름채소를 위한 진혼가을 부르지는 않겠습니다. 대신 이 땅에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을 위해서 가리개를 치워야겠습니다. ,

 
   

최기영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10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공지 ★ 글쓰기 버튼이 보이지 않을 때(회원등급 … 사이버문학부 11-26 93434
공지 ★(공지) 발표된 작품만 올리세요. 사이버문학부 08-01 95717
10 얘야! 집에 가자 최기영 04-22 5335
9 덤으로 얻은 인생 최기영 02-26 6649
8 하느님보다 힘이 센 사람들 최기영 02-26 6176
7 닭을 닮은 사람들 최기영 02-26 6357
6 흡연은 부의상징이다 최기영 01-05 6454
5 손만 내밀어 줬다면 최기영 12-02 8053
4 스크루지 영감 최기영 12-01 8893
3 나는 일기에보를 보지 않습니다. 최기영 12-01 9929
2 나는 유년기에 기르던 돼지였다 최기영 12-01 11147
1 그냥 쉬는 것이 아니다 최기영 12-01 13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