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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김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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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주인    
글쓴이 : 김명희    24-06-25 00:44    조회 : 941

                    세상의 주인

 

                                                                                     김 명희

 

 내가 당신에게 지금 온 세상을 주고 있다. 이 말은 어린 시절 동화책에서 본 구절이다. 세상이 아직 내 주변 만이었던 시기에 나에게 신기한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과 온갖 사물들이 생각하고 느끼고 살아간다는 것을 가르쳐 준 책들이었다.

 열 살 무렵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한참 책 읽기에 재미를 붙여가던 중이라 만화책이며 어깨동무 같은 잡지며 학급문고 들을 읽곤 했었다. 그 때 어머니가 처음으로 사 주셨던 동화책 전집이 있다. 결혼 후 도시로 나온 이주 노동자였던 부모님의 벌이에는 무리였을 빨간 양장본의 계몽사 문학전집 25권. 전체 50권 한 세트인 책값에 머뭇대던 어머니께 아마도 영업 사원이 반만 사 주고 다 읽으면 나머지를 사 주라고 영업을 하였을 것이다. 나머지 반은 다행히 이웃 친구네에 있어 빌려 읽느라 더 사지 않아도 되었었다. 1권이 그리스 로마 신화, 2권이 호머 이야기, 3권이 성경이야기 순서로 마지막 25권이 별의 왕자님 (어린 왕자)으로 끝나는 전집이었다.

 나는 이 책을 무척 좋아해서 어디를 가든지 손에 들고 다녔다. 6권인 세익스피어 이야기는 뒷간에 갈 때 들고 갔다가 떨어뜨리는 바람에 얼마나 혼이 났었는지 모른다. 나중에 몰래 장대로 건져 올려 그걸 버리지 못해 한 장 한 장 씻어내어 말려 오랫동안 구석진 곳에 따로 챙겨두기도 했었다. 그때 읽었던 동화들은 세계 여러 나라의 모습들을 상상하게 해 주었고 후에 완역본들을 찾아 읽도록 흥미를 북돋워주기도 했다.

 그 중 기억나는 이야기가 있다.

 오랜 옛날 세상의 모든 물고기가 아직 바다에 살고 있었던 때에 아주 작은 금붕어가 살고 있었다. 이 금붕어는 큰 바다를 떠돌다 온 큰 물고기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큰 세상을 보고 싶어 했다. 커다란 배와 바닷가를 달리는 사람들과 햇살에 반짝이는 모래톱, 숲과 하늘의 별과 달을 그리워하던 금붕어는 바다의 신 넵튠을 찾아가 하소연을 한다. 며칠 뒤 넵튠은 한 어부의 그물에 작은 금붕어를 살짝 들어 올려 넣고 주변을 지나던 은빛 물고기 한 마리를 더 넣어주었다. 그물에 걸린 물고기를 시장에 내다 팔려고 담던 어부는 한 쌍의 작은 물고기를 자신의 어린 딸을 위해 따로 통에 담아 집으로 데려 갔다. 기뻐하는 딸을 위해 작은 유리항아리를 준비한 어부는 항아리 속에 반짝이는 모래를 담고 물풀을 몇 가닥 넣은 뒤 물고기 한 쌍을 담아 집의 창턱에 올려둔다. 작은 금붕어는 유리 항아리 속에서 창 너머로 보이는 숲과 하늘과 항아리 속을 들여다보는 어린 아이들, 온갖 신기한 살림살이들을 보며 은빛물고기에게 말한다.

“나의 신부여, 내가 당신에게 지금 온 세상을 주고 있다. 저 사람들과 숲과 하늘과 바다까지... “

그것을 바다 속에서 지켜본 넵튠은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저렇게 작은 물고기에게는 작은 세상이 어울리는 법이지!”

 이 이야기를 읽을 때 마다 나는 뿌듯한 표정을 짓는 작은 금붕어를 상상해 보곤 했다. 작은 유리항아리 속에서 은빛 신부를 바라보는 금붕어는 얼마나 좋았을까? 정말 잘된 일이구나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이 전집을 좋아해서 결혼 후에도 친정에 가면 자주 이 책들을 꺼내 읽곤 했었다.

 작은 아이가 유난히 물고기를 좋아해서 나도 집 한쪽 구석에 모래를 깔고 물풀 몇 개를 심은 작은 어항을 두었다. 처음엔 구피 몇 마리였다가 가재가 됐다가 베스가 됐다가 디스커스가 됐다가 하며 어항 속 주인은 자꾸 바뀌어 갔다. 그러다 보니 어항도 책상위에 놓을 수 있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중간 사이즈 대형사이즈 골고루 들어왔다 나갔다 하며 자리를 옮겨 다녔다. 간혹 물고기와 어항의 크기가 맞지 않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는데 몇 년 전 가재를 키우면서 난감한 때가 있었다. 아빠와 함께 물고기 구경을 나갔던 아이가 조그만 새끼 가재를 한 마리 사 들고 왔기에 별 생각 없이 베란다 창고에 있던 작은 플라스틱 어항을 내 준 것이 문제였다. 가재는 탈피를 하는 종류였다. 책으로 어린 시절 배운 게 다 인 탓이었을 것이다. 나는 새끼 가재이니 성장은 하겠지만, 성장해도 구피는 구피요 금붕어는 금붕어인 것처럼 가재는 가재라고 믿었었나 보다. 가재는 보란 듯이 탈피를 했고 다섯 번의 탈피를 하는 동안 세 번 어항을 바꿔줘야 했다. 비록 한 마리였지만 성장한 후에는 제법 큰 어항인데도 타고 넘는 바람에 뚜껑을 꼭 덮어줘야 했는데 자주 집게발로 나오려고 툭탁대는 소리가 들리곤 했었다.

가재의 집을 바꿔주면서 나는 가재의 크기를 미루어 짐작하고 작은 어항을 내 주었던 것을 후회하였다. 작은 가재에게 작은 집이 맞을 것이라고 나도 모르게 생각한 것이다.

 다시 작은 물고기의 이야기를 돌이켜 보았다. 작은 물고기에게 작은 집이 맞다고? 작은 유리항아리 밖으로 내다보는 그 세상이 그의 세상이라고? 나는 넵튠의 결정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너의 세상이 여기라고 누군가가 정해준다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그 행동의 정당성은 누가 넵튠에게 준 것인지 하는 생각을 했다.

아이가 어릴 때 엄마가 세상의 전부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내가 이 아이들의 세상의 전부이니 잘 보살펴야지 하는 생각도 했었다. 내가 더 큰 사람이 되어 더 큰 세상을 보여줘야지 다짐도 했던 것 같다. 나는 그저 세상으로 가는 통로였을 뿐인데, 오히려 아이들이 내 세상이었는데...... 나는 큰 착각을 했었나 보다.

 

 

 

                                 2019년 한국산문 7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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