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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공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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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도읽기    
글쓴이 : 공해진    15-02-27 20:10    조회 : 3,667
1993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차까부꼬 314호실.
일터이자 나의 영주권 주소이기도 하다. 입주한 건물은 오각형으로 오대양을 상징하고 미국 국방성 펜타곤을 닮았다하여 안전하다는 의미로 여간 기쁘지 않았다. 머릿속엔 오로지 어획향상과 안전조업 뿐이었다. 아르헨티나에서 조금씩 자리를 잡고 있을 무렵, 최고의 회사를 꿈꾸며 밤낮없이 혼신의 힘으로 일할 때였다.
 
늦여름이었다. 접견실은 여느 때나 다름없이 바다에 보낸 남편의 소식도 듣고 생활비 가불을 하기 위해서 들른 선원가족들로 늘 붐볐다.
 
그들이 빠져 나가길 기다렸다는 듯 한적한 오후 5시경 바로 그때였다. 파도는 마치 바람에 밀러 요동치는 바다물결 같이 소리 소문 없이 밀려왔다. 키는 작달막하였으나 우락부락한 이십대 젊은이가 백주에 복면도 하지 않은 채 권총을 들고 3층에 있는 내 사무실로 쳐들어 왔다. 거침이 없었다. 맨 안쪽에 있는 나를 향했다. 내 앞쪽으로 바짝 다가섰다. 강도가 내 머리를 내려치자 이마에 피가 맺히는 것을 느꼈다. 두 팔을 머리위로 올리라고 위협을 하였다. 머릿속은 이내 백짓장처럼 하얗게 되었고 위기에서 판단의식은 텅 비어있었다.
 
대낮에 얼굴을 노출시키고 들어온 권총강도는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갓 이방인쯤인 나를 죽이는 게 당연한 순서였다. 후환이 두려워서 죽이지 못하는 것은 더욱 아닐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마약에 취했는지 눈동자가 희멀겋게 무너져 있었고 불안감으로 벌벌 떨고 있는 것 같았다. 죽기 아니면 살기였다. 내가 이 자의 발목을 걸어 쓰러뜨리면 직원들이 합세하여 제압할 것이라는 생각이 일순간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찰나였다. 문을 밀치면서 휘~익 바람 소리가 나더니 또 다른 한 명이 큼직한 총으로 나를 겨누면서 들어왔고 뒤따라 다른 두 명은 장물용 포대를 들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이들 세 명은 접견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여직원을 결박하여 감금시켜 놓고 외부연락을 차단시키느라 늦게 들어온 것이었다. 아뿔싸, 4인조 강도였던 것이다. 수산회사는 사무실 금고에 현금을 보유하는 일이 많았다. 치밀한 준비를 해온 놈들이었다.
 
사무실을 점령한 그들은 우선 직원들의 수중에 지니고 있는 반지, 목걸이, 시계 등을 닥치는 대로 탈취하고 한 사람 한 사람 차례로 구석진 방으로 몰아넣고 감금시켰다. 그런 와중에도 결혼기념 반지라면서 이것만은 제발 부탁하는 사람도 있었다. 머리를 쳐 박고 감금된 좁은 방에서는 모두들 불안에 떨고 있었다. 그런 다음 그들은 내게 금고를 열게 하였다. 부르르 떨면서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번호를 돌렸다. 그런 내게는 별도로 계속 총을 겨누고 있었다. 물론 금고 속에는 간단한 그들의 노력치곤 괜찮은 현금이 있었다. 그렇다고 목숨을 걸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금고에 들어 있던 현금을 모두 쓸어 담았다. 상황은 끝이 난 것이었다.
소기의 노략질에 성공한 그들의 심리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불과 몇 초 동안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에 두고 온 가족들에게 미안했다. 그들과 눈을 마주치면 안 된다. 순식간에 기분을 나쁘게 할 수도 있다. 누군가가 무의식적으로 머리 뒤에서 발사 명령만 내리면 바로 끝이 아닌가.
무사히 끝난 그들의 잔치는 신분이 이왕 노출된 마당에 확 다 죽여 버려? 이건 아니지. 너무 한 거야. 아니면 이방인 한 사람쯤 제거하는 데 뭐가 문제겠는가 했을까. 괜찮은 장사를 하였으니 '오늘 청소는 만점이다' 하고 홀가분하게 도망치겠지 라는 다소 타협적인 생각도 해 보았다.
 
잠시 조용해졌다. 아주 잠깐이었다. 그러더니 모두 죽여 버리겠다고 한다. 광기 넘친 쇳소리로 고함을 친다. 기분이 나쁘단다. '꼬리아노" 라고 하면서 첫 번째가 '나' 라고 한다. 주저앉아야 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쌓아온 고생의 억장이 한꺼번에 무너져 버렸다. 예상은 했지만 설마이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랐었던가. 주사위는 던져졌다. 나는 눈을 감았다.
 
절박했지만 생각이 잠깐 멈추어 마음이 편안해졌다. 얼마쯤 흘렸을까. 웬일인지 후다닥 그들이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자신들의 뜻대로만 안 된다는 암시를 받았는지, 가책을 느꼈던지 그들은 서둘렀다.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파도읽기를 하였던 내게는 ‘침착하라' 였다. 커다란 파도가 그곳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격한 바람만 있었다. 바람이 불어 격랑의 파도가 일어난 것이었다. 깊은 바다는 거친 풍랑에도 못 들은 척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한국산문>> 2014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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