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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망이라는 이름의 항구    
글쓴이 : 공해진    15-02-27 20:22    조회 : 3,899
정복을 하고 습격과 약탈을 통해 얻은 결과물을 자신들이 투자한 만큼 일정하게 나누어 가졌다. 그렇게 시작하여 붙여진 욕망이라는 이름의 항구 뿌에르또 데세아도(Puerto deseado)는 아르헨티나 남단 최대 어업 전진기지 중 하나다. 대서양을 면한 강어귀에 대략 일만 명이 거주하고 있는 조그마한 어촌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항공기로 세 시간, 다시 육로로 세 시간을 더 가야하는 곳. 그곳은 수산인이 아닌 일반인으로서는 범접하기 힘든 지역이다. 배편으로 가면 꼬박 나흘이 걸린다.
 
1980년대는 살인적 인플레이션으로 신음하던 아르헨티나였다. 그러던 아르헨티나는 1989년 라리오하 주의 공공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전국적으로 그 이름을 떨친 주지사 출신인 카를로스 메넴을 대통령으로 선출하면서 공공부문의 민영화, 외국 자본의 도입 등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실시하여 불안정한 정국을 안정시키고 초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게 된다. 그 후 결국은 10년을 못가 한계에 부딪혔지만, 우리는 아르헨티나 신정부 초기에 외자유치법에 의한 합작이라는 형태로 안데스산맥을 넘어 아르헨티나로 진출하기 시작하였다.
 
현지 파트너와 합작회사를 설립하고 아르헨티나 국적 취득을 위한 선박통관, 심사, 등록 등 할 일이 산더미 같았다. 개운한 잠은 사치였고 피곤할 수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출어시켜 황금어장의 기쁨을 체험하고 싶었다. 두 달여간의 수속을 마치고 대박의 꿈을 꾸면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나 어장으로 출어시키고는 선박에서 좋은 소식만을 기다렸다. 다행히 땀은 헛되지 않았다. 정말 대단한 어장이었다. 연일 100여톤을 어획하였으니 선원의 피로감과 냉동능력이 오히려 문제가 되었다. 어장에 도착한지 5일 만에 더 이상 어획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만선이었다. 가장 가까운 뿌에르또 데세아도 항구로 입항케 하였다. 뱃사람들은 보통 항해하는 동안 휴식을 취했지만 넘쳐나는 어획물 정리 작업을 해야 했기에 일곱 시간의 항해거리는 그들에게 휴식할 틈도 주지 않았다. 피로는 쌓여만 갔다.
 
조용하던 항구는 불야성을 이루었다. 오징어 파시(波市)가 생겨 난 것이다. 어선은 다음 항차(航次) 출어를 위해 입항하자마자 운반선에 어획물을 하역하고 수출서류를 작성해야 했다. 주부식(主副食)과 청수(淸水)를 선적하고 어구와 기름을 재보급하고 장비를 점검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갔다. 10여척이 동시에 입항하였으니 하역인부도 모자라고 장비도 턱없이 부족했다. 기름이나 식수마저 없어 인접 도시로부터 수급을 받았다. 서로 먼저 하겠다고 아우성이라 흡사 전쟁터다. 시끌벅적한 소리뿐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리지도 않았다. 서로들 간의 양보 없는 욕심으로 피 터지는 싸움이 벌어졌다. 어장에서 발생한 환자는 병원수속을 했고 가정사가 있는 어부는 귀가조치를 했다. 질펀한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인간의 밑바닥만 들어날 뿐이었다. 온갖 꼼수와 불법이 판을 쳤다.
 
매일 한두 시간밖에 잠을 못자고 살인적 작업을 했던 그들에게는 휴식이 필요했다. 그런데 어디 그려라. 어장에 있는 오징어 떼가 눈에 계속 밟혔다. 물에서 뭍으로 왔으니 상륙비를 지불하고 작업 독려비를 보너스로 주면서 일분이라도 빨리 출항할 수 있도록 독려를 했다. 고국의 향수와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위로한답시고 양주 몇 병에 건배 일성은 '오징어' 로 외쳤다. "오랫동안 징그럽게 어울리자!" 며 파이팅을 외치고 밤은 깊어갔다.
 
어촌 저편에서는 유난히 빨갛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어부를 쫓는 직업여성들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 불빛은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졌다. 거기에는 고기를 쫓는 어부들도 있었다. 서로는 원하는 바가 다를지라도 쫓고 쫓기며 동이 트고 있었다.
 
날이 밝았다. 간밤의 치열한 준비를 끝내고 출항을 알리는 뱃고동소리와 함께 그들은 어장을 향해 떠밀리듯 나아갔다. 일엽편주였다. 바람으로 가는 돛단배로 보였다. 과거 열강들에 의해 뱃길 길목에 ‘욕망’이라는 항구를 개척하고 서로 물고 물리면서 패권을 차지했던 그곳은 그들의 이성 잃은 탐욕이자 수탈지였다. 약탈했던 부두에는 그들이 지어준 이름과 무대만 있었다. 만선 이외 그 무엇을 원하고 있으랴. 가난을 벗어나고자 승선해야 했던 한국청년은 산중 바위틈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배가 떠난 뒤에야 나타났다. 열사람이 한사람을 찾지 못했다. 너무 힘들어 몰래 하선하였다고 했다. 뱃사람은 고기 많이 잡았을 때 보다는 뱃전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했던가.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인간의 진한 냄새를 결핍이라는 이유로 무심코 들이마셨다.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삯을 받아도 구멍 뚫린 전대였다. 흡족하지 않았다. 언덕배기엔 바람에 넘어진 트럭이 보였다. 빙산에서 내려오는 강물마저 증발케 하는 바람이 일 년 내내 불었다. 욕망은 거칠고 황량한 항구다.
 
<<한국산문>> 2014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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