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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펄 게소리    
글쓴이 : 공해진    15-02-27 20:31    조회 : 4,304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남쪽으로 팜파스를 가르며 무한 질주하였다. 그렇게 세 시간 넘게 달려 도착한 곳이 강과 바다가 만나는 라플라따(La Plata)강 하구에 자리 잡은 헤네랄 라바제(General Lavalle)라는 시골마을이었다. 습지가 잘 발달되어 공기가 좋고 물고기도 잘 잡히는 이곳은 옛날 우리네 강 하구의 갈대밭 우거진 마을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아르헨티나 거주 한국교민들은 향수를 느낄 때마다 휴식을 취하기 위해 헤네랄 라바제를 찾는다. 텐트도 치고 취사를 하기도 하지만 교민들이 운영하는 민박집도 있다. 그곳을 거니는 원주민을 보면 한국의 낚시터에서 외국인이 놀려온 듯 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조기낚시는 바닷물이 밀려오면서 정조기가 될쯤엔 미끼를 끼우는 것이 귀찮을 정도로 낚싯대를 던지기 무섭게 고기가 낚였다. 물리지도 않는 낚시에 고기가 고기를 물고 올라온다고 허풍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야말로 자연이 그대로 살아 숨 쉬고 건강한 생태계룰 유지하고 있다. 산소가 풍부해서인지 하룻밤 자고 나면 몸이 한결 가볍고 정신이 맑아졌다. 이 마을이 자리한 라쁠라따 강 하구에는 하굿둑이 없다. 있을 수도 없었다. 생태학적 가치를 함몰시킬 필요를 아무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하구역(河口域:Estuary). 강물이 바다로 들어가 바닷물과 서로 섞이는 곳이다. 기수역(汽水域, Brackish water zone)이라고도 한다, 이곳에서는 육지와 바다의 어느 한쪽에서도 볼 수 없는 거룩한 특성을 보이며 계절이나 강수량 등에 따라 광범위한 염분농도의 불규칙성을 나타내 보인다. 변화가 심하다. 하구역 개펄은 농경지에 비해 그 생산성이 10배에서 300배까지 경제적 가치가 높은 지역이며 동식물의 생산과 좋은 서식지로서 기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오염정화기능, 홍수. 태풍 조절기능, 생명력 있는 친수 및 심미적 휴식공간으로의 공익적 기능. 그 역할은 실로 다기다양하다.
 
우리나라는 4대강 중 유일하게 휴전선 지역인 한강 하구역을 제외하고는 모두 하굿둑을 만들어 생태계의 엄청난 변화가 계속 진행 중에 있다. 강 하구의 생명들은 항변 한번 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쓰러진지 오래다. 비무장지대와 마찬가지로 휴전선이 오히려 한강 하구의 자연에는 득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었다. 하굿둑은 해수의 역류를 막음으로서 농지는 물론 농공업 용수 확보와 홍수 예방이 목적이었다. 경제개발을 우선정책으로 하던 시대가 요구하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지만 바닷물과 강물 교류를 차단해 천혜자원을 매장시켰다. 그뿐이랴. 자연은 용서치 않는 재앙으로 나타났다.
 
현재는 수질마저 퇴적토 등 오니(汚泥)로 인해 농공업 용수로도 부적격한 상태로 전락하여 당초 취지를 무색하게 하였다. 지사(地史)적으로 생성된 하구역을 우리는 너무도 교만하게 빠르고 손쉽게 하굿둑을 쌓았다. 무한한 가치인 생명의 물길을 사람의 손으로 망가뜨려 자연과 인간의 대화를 차단해버렸다. 한세대도 못 돼 지금까지도 지루하고 의미 없는 공과를 다투는 중이다. 후손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남겨야 했었는지 자성할 대목이다. 어부들은 몇 번이고 절규한다. "물은 우리한테 늘 하늘이었어. 하늘의 법을 그렇게 무시하고 물길을 막아놨으니 생명의 탯줄을 끊은 것이여. 어서 하굿둑을 시원하게 터버렸으면 좋겠어." 라고
 
얼마 전 "아빠, 아르헨티나 있을 때 제가 광어 한 마리 잡았던 곳이 어디예요?" 딸이 물었다. 자기소개서에 소재로 넣겠다는 거다. 십 수 년 전 일이 추억이 되는 모양이다. 타임머신을 돌려서, 썰물이 일어나서 담수화가 될 때 동료 어른들은 아침 일찍 잡은 조기를 구이로, 포를 떠서 생선전으로, 매운탕 등 점심준비로 각자 바쁘게 손질과 간질을 하던 시절로 돌아갔다.
메디아루나(달 모양을 한 그물 뜰채)로 수면을 왔다갔다 반복하면 고기가 들어오게 된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때 초등생이었던 딸이 "아빠, 큰 고기가 잡혔어" 흥분하며 나를 불렸다. 미처 바다에 가지 못한 광어 한 마리가 꼬마 소녀의 뜰채에 잡힌 것이다. 횟감이 부족했던 터라 동료들은 하던 동작을 멈추고 환호성을 질렀고 광어를 잡은 딸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내줬다. 무언가를 했다는 체험은 성취욕의 뿌듯함이었다.
 
당시 체감하고 가슴이 뛰는 정서의 가치는 얼마였을까. 갖가지 새들이 날아들었다. 갈대밭 풀잎 사이로 보금자리 둥지를 틀었다. 작은 게와 크고 작은 물고기들은 그곳이 천국이었다. 먹이그물이 있었다. 개펄에서 옆걸음으로 '솨아솨아'하는 게소리와 생태계를 유지하려고 들리는 개펄의 ‘찌이지직’거리는 숨소리는 새벽 저잣거리보다 훨씬 생동적이었다.
하구역은 산란을 위해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어류와 역시 산란을 목적으로 바다로 나가는 어류가 통과하는 곳이다. 주변을 둘러싼 습지는 생명의 신비한 에너지를 간직하고 있었다. 강물에 떠밀러 온 흙은 억겁으로 쌓였다. 생명을 잔뜩 머금은 흙은 동식물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토대가 되었고 퇴적층은 삶의 터전이 되었다.
 
자연에 대한 하늘의 법으로 우리도 자연의 한 부분으로 살아간다면 품어 줄 것이다. 바닷가에 와서 자연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치유한 가치는 또 얼마로 환산할 수 있을까. 바다는 땅보다 더 큰 용서가 있는 곳이다. 훗날 딸의 딸을, 혹은 아들을 데리고 편안하고 풍요롭고 아름다운 강 하구 마을을 찾아 그물이 아닌 뜰채로 광어를 잡았으면 한다. 자연이 아프면 우리도 아프다. 부디 개펄 게소리가 개소리가 아니기를.
 
 
<<문예바다>> 2014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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