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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의 게르    
글쓴이 : 김정희    15-03-23 23:23    조회 : 5,095
 
엄마의 게르
 
                                                                                           김정희
 
 

  
 
엄마의 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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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울란바토르의 스카이라인은 거대한 크레인과 대규모 신축 아파트들로 삭막하다.
몽고의 전통가옥 게르를 보기위해 징기스칸 공항에 도착해서 목도한 첫 풍경이다.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광활한 초원을 향해 내달리기만 하던 그들이 이제는 드높은 고공으로 치솟고 있다. 징기스칸의 후예들이 세간 살이 빼곡한 아파트의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것을 상상한다.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해야하는 유목민에게 붙박이장이 꽉 들어 찬 요지부동의 콘크리트 아파트라니. 불현듯 그 많은 몽고 전통의 천막집들이 박물관의 모형으로 박제되어 버린 건 아닌지 불안해진다. 시 외곽으로 접어들면서 초원에 하얀 목화 꽃처럼 올망졸망 모여 있는 게르들을 보고 난 후에야 비로소 안도한다.
 
 숙소로 묵을 게르의 문짝을 당기는 순간 무두질한 지 오래된 가죽 냄새가 나를 포박한다. 아니다. 감아 묶는 행위는 힘이 있어야만 가능하기에 포박이란 표현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 이즈음의 나는 낡고 빛바랜 것들만 보면 포박은커녕 수저 들 힘조차 없는 엄마를 떠올린다.
세간이라곤 달랑 침대뿐인 바닥에 나의 슈트케이스를 열어 펼친다. 한 계절도 채 못살고 천막을 접어야만 할 것 같은 게르의 실내에는 모국을 떠나온 이민자의 짐짝처럼 덩치 큰 내 가방이 생경스럽다. ‘입은 거지는 얻어먹어도 벗은 거지는 못 얻어먹는다며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 옷을 사 입혀주던 엄마. 덕분에 나는 가까운 마트에 갈 때조차 습관적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갖춰 입어야 문밖을 나선다. 먼 길을 여행할 때 엄마의 그 잠언 같은 말은 집요한 이념이 되어 나를 통치한다.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세상 밖을 주유하는 자유로운 유랑 혼을 동경하면서도, 몇날 며칠을 꼬질꼬질하게 같은 옷을 입고 길 위에 서 있는 나를 견딜 수 없기에 지퍼가 미어터질 것 같은 가방을 끌고 집을 나선다.
 
 다음 날 입을 옷과 신발, 스카프 등을 꺼내 둘 곳이 없어 침대 머리에 걸쳐두고 카메라와 핸드폰의 배터리를 충전할 콘센트를 찾는다. 전기기구라곤 30와트 백열등과 함께 전선줄에 매달린 1구의 콘센트뿐이다. 그 난감함이란 옷걸이의 부재에 비할 바가 아니다. 두고 온 세상과의 단절을 선택하고 핸드폰 대신 카메라 충전기를 꽂았다. 모닝콜 서비스가 없는 게르에서는 배터리가 떨어져 알람기능을 상실한 내 LTE 스마트폰이나 충전할 줄 몰라 수시로 전원이 꺼져 있는 엄마의 2G폰이나 매 한가지다. 잠을 청하기 위해 핸드폰에 잔뜩 저장해온 음악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무용지물이다. 대신에 책을 들었지만 둥근 천정 꼭대기에 매달린 전구의 희미한 불빛은 지면에 채 도달하기 전에 스러진다. 차라리 누워서 세간 살이 하나 없이 텅 빈 벽을 읽는 게 나을 것 같다. 속이 비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게르의 벽을 유랑의 시간들이 모여 둥근 스크럼을 짜고 바람으로부터 간신히 지켜내고 있다. 세월의 횡포에 기억들이 유실되어 황량해진 엄마의 머릿속을 닮아있다. 도대체 엄마에게 가장 좋은 시간은 언제 오는 걸까.
 
 천정으로 나 있는 둥근 창틀과 수 십 개의 창살에는 붉은 바탕에 형형색색의 단청(丹靑)문양이 장엄하게 그려져 있다. 비록 배설의 욕구를 해결할 공간 하나 없어 문밖의 풀밭을 헤매야할지라도 누워서 바라 본 그 곳은 차라리 화엄(華嚴)이다.
우리들에게 입은 거지의 식복(食福)’을 설파하던 엄마의 침대 머리맡에는 종이 기저귀가 쌓여있다. 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복식유형인 기저귀도 엄연히 의복일진데 식욕을 상실한 그녀에겐 이미 무의미한 사물이 되어버린 걸까. 서랍을 열 기력이 없을까봐 손만 뻗으면 닿는 침대머리맡에 두었지만 기저귀 수량은 좀처럼 줄지 않고 그대로다. 아까워서 쓰지 않는 게 아니라 그것이 거기에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엄마의 기억력을 참지 못해 타박한다.
사시장철 젖은 바지 입고 찝찝하지도 않수? 저 많은 기저귀는 뒀다 뭐 할 거냐고! 엄마 수발하느라 힘든 올케 생각도 좀 하시지! ” 나의 이런 지청구에도 초점 잃은 엄마의 눈동자는 졸음으로 가득하다. 변의를 느끼면 어설픈 걸음으로나마 화장실로 향하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 만족해야한다.
 
 층층시하(層層侍下) 종갓집 맏며느리로 이른 나이에 남편의 제사상까지 차려야했던 엄마에게 이제 남은 세간이라곤 낡은 제기(祭器)와 족보가 빼곡하게 기록된 병풍이 전부다.
엄마를 닮아 그릇 욕심도 많고 최신형 전자제품이나 주방 기구도 남보다 먼저 사들여야 직성이 풀리는 나의 신용 카드 결제 대금은 여전한데 엄마의 기억 지출 명세서는 백지다. 혹독한 시집살이에 대한 회한도, 다섯 남매의 짐을 남편 없이 홀로 져야만 했던 신산한 세월의 기억도, 노심초사로 뒤척이며 한숨짓던 오랜 불면의 밤들도 남김없이 소진되어 버렸다.
언젠가는 이 게르처럼 살림살이는커녕 변기조차 없는 곳도 엄마에겐 화엄천지(華嚴天地)가 될 것이다. 무엇 하나 바라는 게 없어 아무것도 두려울 것 없는 화엄열반(華嚴涅槃)의 시간으로 엄마는 그렇게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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