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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이불    
글쓴이 : 이우중    15-12-20 20:38    조회 : 4,868
어머니 이불
                                                                                      이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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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을 찾아 어머니 산소에 들렀다. 어머니가 잠들어 계신지 벌써 10년 노란 잔디 이불을 덮고 주무시고 계셨다. 주위에 밤나무와 참나무가 많아서 그런지 아직은 바람이 세지는 않았다. 산소 주변과 봉분 잔디가 없는 여러 곳에 붉은 황토가 보였다.
황토 위에 떨어지기 시작한 밤 나뭇잎과 까칠한 밤송이 껍질이 나뒹굴고 있었다. 노란 이불이 낡아 헌 이불이 된 모양새여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릴 때 어머니는 밤에 잠을 자지 않는줄 알았다. 내가 저녁에 잠을 잘 때 어머니는 항상 집안이나 논밭에서 일하였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들이나 광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잠을 자는 것과 어머니가 잠을 자는 것은 분명히 달랐다. 나는 겨울에도 두꺼운 솜이불을 덮고 오랫동안 잠을 잤지만, 어머니는 무엇을 덥고 어떻게 자는지 알 수 없었다.
어머니는 캄캄한 밤중에도 밭에서 일하였는데 내 눈에는 어둠에 가려서 밭이 보이지 않아도 어머니는 밭에 씨를 뿌리고 풀을 뽑았다. 그 뿐만이 아니라 달과 별이 뜨지 않은 흐린 날에도 어머니는 옥수수를 따고 감자에 흙을 북돋워 주었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한낮에 졸거나 한가하게 낮잠 자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어머니는 잠을 안자도 살 수 있거나 아니면 서너 시간 잠을 자고 일만 해도 살아갈 수 있는 초인간적인 힘을 가진 것으로. 나는 어머니의 잠과 이불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사실 나의 머릿속 어머니는 일을 하기 위해 분주 하게 움직이는 어머니였지 식사를 여유 있게 하거나 마을 아주머니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수다를 떠는 어머니가 아니었다. 그러기에 이불을 덮고 편히 잠을 자는 어머니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어머니는 항상 바빴다. 식구들이 모두 모이는 식사 시간에도 식사를 차리고 없어지거나 큰 누님이 있으면 아예 식사도 차리지 않고 밭에 나가서 일했다. 식구들은 어머니가 식사 시간에 없어도 찾으려 하지 않았다. 그것은 어머니가 보이지 않으면 늘 먼 곳의 밭이나 논 또는 일산시장에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간혹 어머니가 식사 시간에 집 근처에 있으면 식구들에게 맡길 일을 만들고 있었다. 예를 들면 밭고랑을 호미로 만들기 시작하거나 옥수수를 따와서 펼쳐놓고 한 두개의 겉껍질을 벗겨 놓고 나머지 일은 할머니와 우리형제들에게 하라고 했다.
어머니 식사는 주로 부엌에 서서 급하게 한술 떠서 간단히 하였는데 그 식사는 맛있게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음 일을 위한 최소한의 생명유지 수단에 가까웠다. 그래서 어머니 하면 떠오르는 것은 언제나 서서 움직이거나 앉아 있더라도 그것은 많은 일을 하기 위해서였으며, 잠시였다.
 
 
세월이 흘러 어머니 나이 칠순 가까이 되었을 때 자식들은 어머니를 편안하게 모시려고 일산에 새로 지은 상가 주택 2층으로 이사를 서둘렀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사 생각이 없었는지 계속 미루다가 성화에 못이겨 이사를 하였다. 이사할 때 우리 자식들은 기원했다. 그것은 어머니가 이제는 편안한 잠과 여유 있는 식사를 하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사 후 얼마 못가 어머니는 10리밖에 두고 온 시골 밭에 대한 향수병에 걸렸다. 심각한 것을 알게된 것은 일산 경찰서에서 나를 호출했을 때였다. 호출 이유는 어머니가 상가 뒤에서 불을 자주 놓는다고 주위 사람들이 신고 한다는 것이었는데, 경찰의 설명은 어머니가 아침 일찍 일어나 도시로 변한 일산에서 휴지와 신문지 또는 비닐봉지 까지 주워 와서 어머니 집과 옆집의 경계 담벼락 아래 울타리에서 불을 붙이고 재를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재를 비닐봉지 수십 개에 넣어 서울에 있는 자식들이 차를 가지고 갈 때까지 기다리거나 택시나 버스로 시골에 운반, 밤늦게 까지 일을 하였다.
나는 그때 일산에서 처음 어머니 옆에서 잠을 자면서 어머니가 포근한 이불을 덮고 편안하고 길게 잠을 자는 것을 한동안 신기한 듯 지켜보았다. 어머니는 10리 논밭에 가서 늦게 까지 일하고 온 날은 정말 근심 없는 듯 잠을 잤다.
 
나는 지금도 어머니가 산소에 잠들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때가 많다. 일과 시간에 쫒기지 않고 영원히 잠을 자고 있다는 것은 더욱더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어머니는 잠과는 무관한 세계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잠과 이불 이런 단어와는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인생은 일과 그 일을 하기 위한 시간과 치열하게 맞섰던 삶이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모든 일을 끝낸 듯 끊임없이 흐르는 수많은 시간을 내버려 두고 무상(無常)하게 누워 있다니 참으로 허망(虛妄)하고 슬프다.
그러나 나는 안도했다. 어머니가 편하게 누워 주무시는 것은 자식들을 키우기 위한 여러 가지 일을 모두 성공적으로 마친 것이고 시간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것이라고 확신되었기 때문이며, 그게 아니라면 다음 생에서 시간과의 또 다른 대결을 준비하느라 기나긴 휴식에 들어갔을 것이라고.
올봄 형님과 같이 산소에 풀을 뽑다가 잡풀이 너무 많아 강력한 제초제 3통을 주었다. 그 후 여름 벌초에 가보니 무성한 풀들은 다 죽고 대신 붉은 황토가 삐죽삐죽 보였다. 나는 그 황토가 마치 어머니 이불이 오래되어 낡고 뚫어진 모습처럼 보여 가슴이 아팠다.
노란 잔디이불을 덮고 추운 겨울을 나야 하는데 걱정이 되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갈아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형님은 산소에 손을 보는 것은 해와 달과 날을 잡아야 하며 함부로 손댈 수 없는 것이라 했다. 그것은 아마 어머니의 긴 잠을 방해 할까봐 그런 것 같았다.
어머니, 내년 봄 한식날에 좋은 이불로 갈아 드릴테니 올해까지만 헌이불 덮고 계세요 그립습니다. 어머니! 불효자식 올림.”
 
책과인생(범우사) 2016년신년 1월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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