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사는 괴물

                                                                                                    - 채식주의자 -

                                                                                                 이 영 희

   한강, 이 작가가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했다 개인적인 것에서 세계인이 공감하는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는 일, 글 쓰는 이들이 꾸준하게 노력하는 중이며 욕심내는 작업이다. 한강이라는 대한민국 수도의 큰 물줄기. 그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작가는 ≪채식주의자≫에서 여자가 꿈을 꾸었다는 것으로 시작해서 결말은 일어난 모든 일들이 어쩌면 꿈인지 모른다고 했다. 왜, 누구로 인해, 무의식 속에 어떤 분노가 있었기에 평범했던 가족이 해체되며 한 여자가 시들어가는 이야기를 꿈으로부터 시작하는지. 프로이트를 흉내 내는 거창한 심리학까지 들춰내고 싶지는 않다.

   육식을 피하는 것이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닌데, 작가는 소설 안에서 그저 소신 있는 채식주의자가 아닌 끝내 여자를 거식증으로, 기아상태로 나무가되려 물구나무서기를 하며 미쳐 죽어가는 모습으로 그려 놓았다.

   이야기는 남편이 보는 아내인 영혜〈채식주의자〉, 형부가 보는 처제인 영혜〈몽고반점〉 그리고 언니가 보는 동생 영혜〈나무 불꽃〉로 맞물려있다. 정작 죽음으로 향해가는 그녀가 보는 남편이나 형부, 그리고 가족과 언니에 대한 이야기는 적은 분량이다. 작가가 이미 주인공을 사람이 아닌 식물로 분류해 놓은 것 같다. 아니면 정신 이상자인 그녀의 생각이나 말보다는 여자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스스로 정상인들이라고 믿고 살아가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구성된 그들의 판단이 과연 옳은 것인지, 고민해보라는 의도가 깔려있는 것 같다.

    먼저 ‘채식주의자’에서 남편이 설명하는 아내의 모습은 자신이 편하고자 선택한 여자일 뿐이다. 영혜가 왜 이 남자를 결혼상대로 선택했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여자는 계속 가슴이 답답하다고 한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거나, 반복되는 더럽고 끔직한 꿈이 주는 강박에서 벗어나고자 채식으로 식단을 바꾼다. 차츰 영양의 불균형만 오는 게 아니라 삶의 균형도 무너져 간다. 친정 쪽 가족 모임이 있던 날, 고기를 억지로 먹이려는 아버지의 강압적인 태도에 영혜는 과도로 자신의 손목을 긋는 극단으로 치닫는다. 이 사고로 병원 출입이 시작된다, 여기서 아버지의 성격 묘사에 집중하게 한다. 나중에 언니는 어린 날을 회상하며 자신보다는 동생인 영혜를 더 많이 때린 아버지였다고 진술한다. 영혜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늘 피하고 싶은 크고 거친 괴물 같은 육식동물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키우던 개를 처참하게 죽인 아버지. 그 개고기 요리를 함께 먹었던 잠재된 기억이 어느 날부터 구역질나는 꿈으로 여자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무의식이 착란으로 이어진다.

   형부가 보는 처제인 영혜는 어떠한가. 두 번째 이야기인 ‘몽고반점’은 정신이 온전치 않은 처제를 범하는 남자의 정체성을 다루고 있다. 이런 문제가 새삼스런 사건사고는 아니다.  너무나 많은 소설과 영화로 다뤄지는 부분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성경에 이미 금기를 깬 근친상간은 나와 있다. 아버지와 딸이 잠자리를 하는 이야기. 딸을 범했던 아버지든 하늘의 뜻이라며 협조했던 딸이든 만약 성경 속 이야기를 그대로 믿는다면 이미 그 때부터 온전한 세상이나 제정신들이 아니었다. 여전히 혼돈이다.

   오로지 영혜의 엉덩이에 남아 있는 몽고반점에만 꽂혀 처제를 작품 재료로만 생각하는 남자. 여기서도 아버지 못지않게 추잡한 욕망에 찌든 괴물인 남자.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작품을 위해서라면 한 번의 이탈은 아무도 모르게 감쪽같이 해치울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하지만 몽고반점의 쾌락을 맛본 형부라는 괴물이 아내에게 현장을 들키지 않았다면 딱 한 번만으로 처제와의 관계를 끝낼 수 있었을까. 두 사람이 온 몸을 꽃과 줄기로 바디페인팅한 후에 나누는 정사. 이후로 영혜는 아예 사람의 껍질을 벗으려 한다. 식물이나 나무로 변하고자 하는 환상이 점점 심해진다.

   마지막으로 언니가 들려주는 ‘나무불꽃’ 이야기. 영혜는 정신병동에 갇혀 바싹 마른 몸으로 그야말로 마지막 남은 힘을 모두 끌어 모아 나무가 되려한다. 이것만이 그녀가 생각하는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최후의 욕망이다. 늘 그렇듯 영혜의 주변세계는 그녀에게 협조해주지 않는다. 나무로 변하고 싶은 소망이 강할수록 따라서 지옥 같은 병원의 처치 강도만 높아진다. 어쨌든 죽음이라는 뜻조차 모른 채 죽어가는 동생을 제정신으로 돌아오게 하고 싶다는 간절함. 잘못된 일들에 대해 미리 막을 수 없었음에, 불행으로 가기 전으로 되돌릴 수도 없는 막다른 골목을 마주한 언니는 동생을 잘 보살 펴 주지 못했다는 후회만 남아있을 뿐이다.

   작가 한강은, 결말에서 동생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언니의 입을 빌려 이 소설을 끝까지 읽어낸 독자에게 시치미를 떼며 이렇게 뒤통수를 친다.

    “이건 말이야... 어쩌면 꿈인지 몰라... 꿈속에선 꿈이 전부인 것 같잖아. 하지만 깨고 나면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알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이건 말이야, 그냥 소설인거야. 깊이 생각하지 마. 아무 뜻 없이 그런 꿈이 꾸어지는 것이 아니라며 무의식이며, 융과 프로이트를 파고들어 과거사를 들춰내며 그럴 듯하게 판을 짜, 사실과 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소설 안의 영혜처럼 되고 말지. 내가 소설로 꾸며낸 꿈 이야기와 당신들이 꿈꿔 온 이야기는 같을 수 없음을 알지’

   ≪채식주의자≫는 우울하고 칙칙한 이야기다. 하지만 감정과 의식을 기꺼이 내맡기는 몰입은 흔히 맛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언어와 생김새가 각각인 세계인들에게 감정이입할 수 있는 소설을 훌륭하게 번역한 분에게, 그리고 원작자가 대한민국에서 나왔음에 박수를 친다.

                                                                                      2016, 여름. 예술비평지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