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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자와 고문진보(古文眞寶)    
글쓴이 : 이영희    17-01-02 07:29    조회 : 5,384



                                      노자와 고문진보(古文眞寶)

                                                                                                   이 영 희

 

   공부는 무식하게 해야 한다고 들었다. 책장에는 들춰보지 않고 장식만 되어 있는 책이 쌓여 있다. 그야말로 구슬만 한바구니 가지고 있는 꼴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것을. 나의 뇌 속 뉴런회로, 그 기억 고리에 미처 꿰어지지 못한 현대 작가의 햇 문장과 묵은 지 같은 옛 말씀이 내 눈길과 손길을 기다린다.

   마음먹고 늘 책장 저 뒤 칸에서 함부로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오래 오래 기다려 준 고전에 도전해 보았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 한다는 오묘하면서도 깊고 깊은 그 사유의 끝자락이라도 밟을 수 있을지.

   ≪도덕경은 석 달 만에, 고문진보는 두 달 만에 필사를 한 번씩 마쳤다. 한 번의 베끼기로 하늘과 땅, 그 중간에 서 있는 사람과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이해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좁은 안목을 조금씩 넓혀 주는 시간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경전과 고전의 문장 안에서 그들이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손에 쥐어진 펜 끝으로 열심히 따라 갔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찔끔거리는 단편적인 지식만으로 고개 들고 아는 척 했던 지난날이 부끄러움에 머리가 절로 숙여졌다.

    도덕경은 모두 81장으로 짧고 간결하다. 하루, 아니 한 나절이면 텍스트를 다 읽어낼 수 있다. 그러나 누구의 풀이냐에 따라 수백 페이지를 넘기기도 한다. 그 중에 오강남의 해설과 김가원이 풀이해 놓은 두 사람의 글을 비교하며 베껴내었다

  오강남, 이 분은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 종교학 교수로 도덕경안에 성경을 접목하여 깊이를 더했다, 다른 한 분은 해인사 승가대학 교수로 불교의 가르침과 고전을 인용하여 지식의 폭을 넓혀주었다.

   매일 이른 아침에 주방 식탁에 앉아 노트에 한 자 한 자씩 옮기면서 새벽 기도에 나가는 독실한 신자처럼, 어느 날은 오래된 산사를 찾아 오솔길을 걷는 호젓한 기분에 휩싸이기도 했다. 해설자의 설명을 참고하지만 노자의 암시적인 문장들을 충분하게 내 것으로 소화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단락 단락마다 잠시 펜을 멈추고 부모님을 생각하고, 순간순간 나와 인연 지어진 이웃이나 가족과의 연결 고리를 노자와의 대화로 각색해보곤 했다. 살아오며 불편하고 껄끄러웠던 상황을 재현해 묻고, 좀 더 유연하게 상황에 맞게 대처 할 수 있는 슬기로움을 필사 안에서 얻으려 했다.

   이런 질문과 답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남자와 여자의 생김이 다르며 타고난 본질 또한 제각각인 것을 모르는 바 아니나, 대체로 꼼꼼한 사람이 고집도 세듯이 남편의 지나친 아집으로 인해 참는 날이 많습니다. 때때로 뜻이 엇갈려 혼란과 당혹감 속에서 인내심이 거의 바닥을 드러낼 때마다 지금까지의 생활을 다 때려치우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노자는 말한다. ‘이것이 정확한 답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내 이야기 중 제 28장을 다시 설명을 보겠네. 자네가 수컷의 강함을 알고 암컷의 유순함을 잘 지키면 모든 물이 모여드는 계곡과 같이 되니, 세상의 계곡이 되면 덕을 잃지 않게 되고 순수한 어린아이 같은 몸으로 돌아가게 된다. 흰 것을 알고 검은 것을 지키면 세상의 법도가 된다. 세상의 법도가 되면 항상 덕에 어긋나지 않게 되어 무극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지금의 영화로움을 알고 욕됨을 지킨다면... ... .’

   그렇다. 세상이 변하고 변하여도 남자는 남자만의 본성이 있으며 여자는 여자의 길이 있음을 알게 한다. 요즘의 세태는 참는 자는 바보 취급하는 경향이 만연되어 있다. 상대방에게 자신을 제대로 각인시키려면 일단 목소리를 높여야 뜻을 제대로 전달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순간순간을 참지 않고 어떻게 자식을 훈육하며, 가정을 바로 세우며 관계를 오래 유지 할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나는 주로 소소한 능력을 암시하는 것에만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남편은 당장 보기엔 치밀하여 답답할 때가 있으나 벌어지는 상황 상황마다 근원까지 짚어내어 아직까지 큰일을 그르치는 적이 없었다. 만족하자.

   ≪고문진보는 촘촘하며 육백 페이지에 달하는 상당히 두툼한 책이다. 굴 원의 이소경離騷經부터 이 백, 도연명, 이화, 두목, 범중엄, 유종원, 구양수, 한유, 소식 등. 그 가운데서도 이백의 춘야도리원서, 이화의 조고전장문, 두목의 아방궁부, 범중엄의 악양루기, 소식의 적벽부등은 명작으로 읽고 또 읽어도 싫증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마지막 장을 장식한 여대림의 극기명克己銘까지. 그야말로 무식하게 베껴냈다.

   문맥마다 한자(漢子)와 한글이 병행되어 모르는 한자가 나오면 건너뛰기보다는 열심히 그려 넣었다. 그래야만 뜻과 의미가 고스란히 전해지며 우리의 상용어의 어원을 터득하게 해 주었다. 사람은 가고 없어도 죽지 않고 썩지 않는 명문과 스승은 내가 앞으로 잘할 수 있는 일과 한 눈 팔지 않고 가야 할 길을 밝혀준다.

   예를 든다면 지금까지 수필이란 장르에 마음을 쏟으며 어떻게 하면 좀 더 사람들에게 감흥과 함께 실속 있게 읽힐 수 있을까, 고민하는 내게 유종원의 답위중립서긴 문장 안에 있는 이 단락은 몇 번이고 반복하여 새겨도 모자람이 없다. 다시 옮겨 본다.

   “매번 문장을 지을 적마다 감히 가벼운 마음으로 짓지 않았으니 글이 경박하여 남지 않게 될까 두려워한 때문이며, 감히 태만한 마음으로 쉽게 여기지 않았으니 글이 허술하여 엄숙하지 않음을 두려워한 때문이며, 감히 혼미한 정신으로 짓지 않았으니 글이 애매모호하여 번잡해지는 것을 두려워한 때문이며, 감히 오만한 자세로 짓지 않았으니 글이 교만하여 제멋대로인 것을 두려워한 때문입니다. 또 억누르는 것은 글을 보다 심오하게 하려 함이고, 발양(發揚)하는 것은 글을 명백하게 하려 함이며, 소통케 하는 것은 글을 통창(通暢)하게 하려 함이며, 살펴서 짓는 것은 글을 절제 있게 하려 함이며, 자극하여 분발시키는 것은 글을 맑게 하려 함이며, 단단함을 보존하는 것은 글을 중후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 .”

 

   방대한 중국고전에서 도덕경고문진보를 겨우 한 번씩만 필사 해 보았지만 그 안에서 맑음과 뜨거움을 보았다.

  나 또한 정돈된 맑은 정신을 따라가고파 거르지 않고 새벽을 열었다. 자칫 흐트러지려는 기운을 매번 다잡았다. 이렇게 꼼꼼하게 옮겨 적는다고 해서 내 인생이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 때때로 오늘은 피곤하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핑계로 필사에서 멀어지려 했으며 내일 또 내일로 미루고 싶은 날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책 안의 스승들은 이렇게 나무라는 것 같았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이 책은 그저 베껴내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너의 좁은 사고력과 상상력을 적으나마 세련되게 해 줄 것이며 깊이를 더하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일생에 걸쳐 배우고 경험하고 생각한 것을 기록해 둔 문장들을 허투루 다루어서는 안 된다. 고답적인 내용들에 물론 지루하겠지만 네가 어느 상황에서도 담담하게 대처할 수 있게 이끌어 줄 것이니 좀 더 힘을 내 보거라. 인생이 덧없다고 함부로 살아낼 일이 아니며 그렇게 정신이 나약해서는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삶을 제대로 발견하지 못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구슬을 꿰어보니 목걸이가 되기에는 아직 읽을거리가 바구니에 가득하다, 짧은 대로 팔찌를 만들어 보았다. 다음엔 우리 고전과 서양 고전을 꿰어 또 하나의 팔찌를 만들어 균형을 맞추고 싶다.

                                                                                                                                             

                                                                                                                                              <현대수필,100호, 북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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