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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된장국과 모차르트    
글쓴이 : 이영희    18-02-07 13:00    조회 : 5,640


                                     된장국과 모차르트

                                                                      이 영 희

 

   “사람들은 각자 의지하고 사는 세상이 있습니다, 술을 낙으로 삼는 자는 술을 자기 생명처럼, 여색을 즐기는 자는 여색을 목숨처럼 여길 것이니, 이처럼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참으로 다양해서 혹자는 놀음이고, 누구는 처자식이며, 누구는 공훈과 업적이고, 누구는 잘 지은 문장이며 어떤 이는 부귀를 꼽기도 합니다. 각자 한 가지씩 목표를 좇으며 모두 하루하루를 넘기고 있지요... .... . ”

                                                                                 李贄 (이지). 焚書분서

  

   내 어린 날의 아침은 늘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시작됐었다. 그 소리는 때때로 달콤한 잠에서 짜증과 함께 뒤척이게 했다. 모차르트의 선율이 아침밥상까지 이어졌다. 그렇다고 발랄한 클래식 소품을 들으며 먹는 밥맛이 더 좋다거나 괜찮은 하루를 열고 있다는 기분은 아주 가끔씩만 들었다. 아버지께서 퇴근해 집에 오시면 다시 시작되는 멘델스존과 차이코프스키. 내가 결혼하는 전날까지 이어졌다.

   늘 음악과 함께 책을 가까이 하셨지만 퇴직하고는 매일 새벽 4시면 아버지는 책상 앞에서 불경을 영어와 독어로 번역하고 필사하기를 거르지 않았다. 한글자도 흐트러짐 없는 필체의 많은 노트가 지금은 내 책장을 장식하고 있다. 온통 한문과 영어로 된 페이지를 넘겨보노라면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글자 하나하나에서 아버지의 고독을 보았다.

   머리가 여물지 못했던 시절엔, 아버지를 이해하는 것은 생각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왜 다른 집 아이들처럼 재잘대며 거침없이 활달하게 키워주지 않았을까.

  내 얕은 생각은 삶의 여러 굴곡을 넘기고 나서야 아버지의 정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안다. 고요하고 혼란함속에서도 제 모습을 잃지 않게 해 주신 것을.

   아버지의 그 새벽 시간에 어머니는 안방 침대에 엎드려 어제의 일기를 쓰곤 했다. 삐뚤빼뚤 써 내린 글을 요즘도 친정에 가면 훔쳐보곤 한다. 어머니의 생각을 읽어 내리며 그래, 바로 이런 글이 진짜지하며 절로 미소가 번진다.

   일제시대에 학교를 다녔던 어머니는 맞춤법은 서툴지만 뜻을 소화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어느 날의 일기를 보니 이러했다.

   “종일 이 사람과 같이 시간을 보내려니 속에서 불이 난다. 줄이라는 담배연기를 풀풀 날려대니 내 가슴까지 뿌옇다. 저 사람이 매일 듣는 베토벤이니 모차르트 그리고 공자니 노자니 모두가 부질없는 일이다. 저들도 저승 갈 땐 주변사람을 힘들게 했을 것이다. 눈물 콧물에 누운 자리가 형편없었을 게다. 성질 별난 저 사람과 이런 고비 저런 고비 다 넘겨 왔다. 이제 마지막 죽는 고비만 잘 넘기면 된다. 소원은 영감이 먼저 저세상에 가는 것이다. 그래야 자식들이 고생을 덜 할 것인데......”

   성격도 취미도 맞지 않는 두 분은 그래도 늘 한 방에서 주무셨고 밥상을 마주했으며 나란히 한 곳을 바라보셨다. 거실에는 모차르트의 협주곡이 흐르고, 안방에서는 가수 나훈아의 고장난 벽시계가 새어나오곤 했다. 한 분은 화엄경,육조단경, 또 한 분은 그날그날의 기분을 가감 없이 써 내린다.

    아버지는 제 작년에 저세상으로 가셨다. 팔순 생신까지 잘 지내고 여행도 하며 건강하게 잘 계셨다. 그때까지도 왼쪽 귀에 통증은 없다고 했다. 그저 가벼운 염증이려니 생각하고 동네 병원만 믿고 열심히 치료했지만 호전되는 기미는 없었다. 큰 병원에서의 정밀검사 결과는 뜻밖이었다. 설마 귀안에 암이 생기리라곤 생각해본 적 없었다. 다행히 머리 쪽이나 다른 장기로 전이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치아를 다 뽑고 왼쪽 귀부터 뺨 전체를 도려내고 허벅지 살을 떼어내 이식해야 한다고 의사는 말했다,

   날짜가 다가오자 담당의사에게 수술부위에 대해 설명을 듣고 아버지는 이렇게 요구했다. 귀를 없애고 막아버리더라도 있던 자리 위쪽에 작은 살점은 붙여 놓으라고. 그렇게 부탁하고 들어간 곳에서 이비인후과, 성형외과, 정형외과, 피부과까지. 열아홉 시간 동안의 수술은 잘 되었다지만 중환자실에서 한 달 반을 고생하셨다. 약해진 폐로 인해 폐렴이 두 번이나 찾아 왔으며 호흡곤란으로 24시간 예의주시해야만 했다, 그래도 등창이 심해지기 전, 겨우 침대에 비스듬히 앉아있을 수 있어 가족들은 안도했다.

   일반병실로 옮겨진 후, 다시 아버지를 찾아뵈었다. 여전히 많은 호스가 아버지 몸과 연결 되어 있었으며 붕대를 풀어낸 왼쪽 얼굴은 밀가루 반죽으로 덮이어 있는 듯 했다, 그리고 귀가 있던 자리엔 손톱만한 살점이 아버지가 원하던 대로 남겨져 있었다. 꽉 막혀 들을 수도 없는데 그 흔적이 무슨 소용이 될까,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수술실에서 무사히 나올 수 있다면, 이 나이에 운이 좋아 암을 이겨 낼 수 있다면 여력으로 책을 볼 수 있게 안경을 걸 수 있어야한다는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여 담당의사는 흔적을 남겨 놓았던 것이다. 만약 내게 똑같은 시련이 온다면 의사에게 어떤 당부를 할 수 있을까.

   퇴원해서 6개월은 그런대로 잘 지내셨다. 찾아가 뵐 때마다 작은 살점위에 안경을 걸고 읽기와 쓰기에 시간을 더 할애하셨다. 조급함이 엿보였다. 내일까지 꼭 끝내야 할 숙제가 있는 학생처럼. 온전한 오른쪽 귀로는 베토벤, 바하, 헨델 등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일 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이쪽에서 저쪽세상으로 건너 가셨다.

   기력이 조금 남아 있을 때, 병원으로 찾아뵈었다. 아버지의 핏기 없는 손을 잡았다. 무슨 말을 해드려야 할까. 내 두 눈은 뜨거워지고 메인 목을 가다듬어 나온 말은 아버지, 집에 있는 노트는 나중에 제가 다 가져가고 싶어요.”

   아버지는 숨을 몰아쉬며  말씀하셨다.

   “영희야, 잘 살아야 한다. 잘 산다는 것은 재물도 있지만 네가 무슨 일을 하던 많은 보리쌀 중에 한 톨의 쌀알이 되어 골라내어지는 게 아니라 쌀 중에 쌀, 특미 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책장의 노트들을 네가 가지고 싶다니 그 마음이 고맙다. 하지만 그러지 마라. 다 태워버려라.”

   돌아가시기 며칠 전, 나는 병실에서 어머니께서 이렇게 말하는 걸 엿들었다.

   “마음을 편안히 가지이소. 여기 병원에서도 해볼 거 다 해 보더이다. 옛날의 이병철이 돈이 없어 죽었을까. 진시황이 약이 없어 죽었을까, 그렇게 병을 잘 아는 의사도 죽고 천하에 명의로 소문난 의사의 아들이 몹쓸 병에 걸리면 그 아비도 어쩔 수 없더이다. 당신은 이제껏 하고 싶은 대로 다 했소. 당신은 누구에게나 맞추기 어렵고 힘든 사람이었소. 이만하면 당신 뜻대로 한세상 ... ... .”

   지금, 오디오에서는 아버지께서 즐겨들으시던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이 작게 흐르고 창문 밖은 서서히 밝아지고 있다, 오늘 아침밥상엔 어머니가 보내주신 된장을 풀어 시래기 국을 끓여야겠다,


                                                                       한국산문 2017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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