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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에 빠지고 자태에 반하고 향에 취하다    
글쓴이 : 김요영    12-05-14 17:06    조회 : 3,632
색에 빠지고 자태에 반하고 향에 취하다
김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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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투명하고 붉은 색은 시야를 차단하고 허리를 살짝 비튼 날렵한자태는 요염함을 자아냈다. 그 속에 감춰진 향은 코를 지나 정수리까지 황홀함을 전달했다. 이렇게 환상적인 열정으로 첫 대면은 이뤄졌다.
그들과의 조우는 아주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됐다. 그 날도 온라인의 세계에 빠져 사이트를 바꿔가며 넘나들던 중 유난히 눈길을 끄는 게 있었다. 첫눈에 반해버려 주저 없이 덜컥 주문했고 그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여전히 품위 있는 모습으로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신비스런 색깔과 용기에 유혹되어 처음 시작한 게 두어 해 전이고 그렇게 하나씩 사들인 것이 스무 개가 넘어 장식장을 현란하게 장식하고 있다. 그리고 가끔씩 뚜껑을 열어 갖가지 향기에 취해 보는 게 나만의 즐거움이 되었다.
향수가 등장한 것은 4,0005,000년 전부터이다. 제사를 지낼 때 신에 대한 숭배의 의미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데 몸을 청결히 하기 위해 향이 나는 식물을 태우거나 즙을 내어 사용했다. 쉽게 재료들을 구할 수 있었던 파미르 고원의 힌두교도인 인도가 발상지로 알려졌다. 이집트에서는 태양열 때문에 미용 목적으로, 그리스에서는 질병예방 목적으로 향수를 사용했다. 비위생적인 주거환경과 전염병에 대해 뚜렷한 대책이 없었던 옛사람들은 늘 악취를 동반 했기에 필요에 의해 향을 찾았고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쥐스킨트의 소설향수를 보면 18세기 파리의 풍경과 향수제조가 발전하게 된 경위가 자세히 묘사 되어 있다. 주인공 그르누이는 각종 오물과 뜨거운 날씨로 인한 부패는 물론이고, 땀에 절은 사람들의 냄새까지 모두 맡을 수 있는 천혜의 능력을 지녔으나 정작 자신의 체취는 없었다. 그것을 깨닫고는 세상 사람들을 모두 굴복 시킬 수 있는 향수를 만드려는 욕심에 사로잡힌다. 우연히 맡게 된 잊을 수 없는 향기, 그는 체취를 따라 결국 한 소녀를 죽이게 되고 그 후 계속 어린 소녀들을 살해해서 향수를 만들어 내지만 결국 그 향수로 인해 생을 마감한다. 목적을 위해 만들어 졌으나 때로는 쾌락과 파멸의 원인이 되기도 했으니 어떤 것이든 양면성이 있듯 향수도 그 예외는 아니었나 보다.
향은 지속되는 시간에 따라 보통 세 가지로 분류한다. 뚜껑을 열어 처음 뿌릴 때 맡는 향을 탑노트, 뿌린 지 1시간 후에 남은 향을 미들노트, 그 이후 3시간 이상 지속되는 향을 베이스 노트라 부른다. 대개는 미들노트의 향을 맡고 구입하는 것이 실패 할 확률이 적다. 무엇이든지 첫 번째 경험은 강하므로 탑노트는 조금 위험 할 듯싶고 베이스는 가장 중요하지만 그 흔적을 맡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손목이나 귓불, 무릎 안쪽등 태양광이 직접 닿지 않는 곳에 뿌려주면 움직임에 따라 향이 퍼져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조향의 역사가 길고 현재도 생산량에서 최고인 프랑스는 끊임없이 새로운 향수를 만들어 전 세계의 시장을 주도 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 비춰볼 때 역설적으로 그들은 과거에 매우 지저분했었다고 말하면 실례가 되려나.
동양에서는 사향을 최고로 여겼다. 모두들 갖고 싶어 했으나 워낙 귀한데다 값도 비싸 신분이 높은 소수의 부인들만이 지닐 수 있었다. 그것이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도구로 쓰였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나폴레옹의 황후였던 조세핀도 사향을 좋아해서 기거 했던 방에서는 사후 백년이 지나도록 냄새가 배어 있었다고 하니 그 향이 얼마나 진하고 은은 했을까?
향수(perfume)는 훈증법으로 시작됐다. 중세를 거치며 압착이나 건조 등 단순한 방법에서 증류법을 생각해 냈고, 알콜을 이용하여 고농도의 화장수가 만들어 졌다. 꽃이나 잎에서 향을 얻었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인공적으로 몇 가지 향을 조합하여 자연에는 없는 독특한 향수를 만들기도 한다. 게다가 섞는 재료가 몇 방울만 차이가 나도 전혀 다른 향수가 만들어 진다니까 나만의 향수를 갖고 싶은 욕구를 쉽게 충족시킬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향은 달아나지 않도록 뚜껑을 열어 놓아서는 절대 안 되고 햇빛에 약하므로 서늘하고 그늘진 곳에 보관해야 한다. 우리 집에 그런 곳을 한군데 만들었다. 거실 한 켠에 햇빛이 넘보지 못하는 곳, 사방이 유리로 된 작은 장식장. 비록 향수를 모으지만 즐겨 뿌리지 않는 까닭으로 자주 열지는 않는다. 간혹 보라, 노랑, 빨강, 초록, 남색 등등의 색깔들이 그라데이션 되며 나를 유혹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의자를 끌어다 놓고 무한한 색의 세계에 빠져 버린다. 색만으로도 황홀경에 이르러 어지러운데 그 각각의 용기 또한 우아하여 흡사 요염한 여인의 나신을 연상케 한다. 거기에 반하여 넋을 놓으면 부드러운 살결을 음미하듯 향기에 취하고픈 충동을 억누르지 못한다. 그럴 때 신중하게 하나를 선택하여 향기에 취하면 무엇이 부러울까.
그러나 그 향은 반나절을 머무르지 못하니 아쉬움이 크다. 하여 언제나 내 곁을 싸안고 도는 또 다른 향기가 절실히 필요하니 평생을 부끄럼 없이 살아온 사람에게서 풍기는 그 냄새. 나도 인생의 후반기에 온 정기를 끌어내 마지막 한 방울의 향을 얻어낼 수 있으면 이 세상 살다간 보람이 있을 텐데
 
(20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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